조애리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시는 필연적으로 언어에 갇히지만 동시에 언어 너머를 지향한다. 사물, 심정, 상황 모두 언어에 의해 규정되지만, 시는 기존의 언어에 구멍을 내고 새로운 사유를 드러낸다. 이 새로운 사유는 구체적인 순간을 통해서만 전달된다. 말라르메는 예술을 창에 비유하면서, 환자가 “돌 위에 떨어지는 햇빛을 보려고” 창으로 다가간 순간을 포착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이 순간 시인은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그려낼 수 있게 된다.


올해에 투고된 많은 시가 새로운 사유를 빚어내려 애쓴 데 대해 그 노고를 치하하고 큰 박수를 보낸다. 더구나 당선작인 <상한 통조림 따기>에서 기존의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해낸 시인의 탁월한 솜씨를 발견하게 되어 더욱더 기쁘다. “상한 통조림”과 “녹슬어 가는 기억”을 겹치게 하고 “쉰내”와 “낭자한 그리움”을 경쾌하게 병치시킨 것은 형식 면에서도 탁월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단지 능란한 수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립다고 수천 번 말해도 그리움은 포착되지 않는다. 냉장고 속의 상한 통조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그 그리움을 포착하고 있다. 그 그리움은 녹슬었고, 상했고, 심지어 쉰내까지 나지만 마지막의 “낭자한”이라는 표현으로 이 모두가 다시 자리 매김되고 절절한 그리움이 뚜렷이 드러난다. 당선작은 아니지만, 김예은의 <기억마저 취한다>의 앞 두 연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순간을 포착해낸 점을 칭찬하고 싶다. 맹수연의 시는 형식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고 특히 <슈퍼맨의 비애>의 두 번째 연은 빼어나다. 다만, 조금 더 자신을 연루시켜 생생한 순간을 드러낸다면 더 좋은 시가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구자인의 시는 덜 다듬어졌지만, 시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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