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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다
<페미니즘 2부작> - 2부: 한국의 여성학
[416호] 2016년 03월 02일 (수)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운동은 가정 문제부터 성매매까지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여권 신장을 위해 애썼다. 여성운동가들은 감춰진 문제를 들춰내며 가부장적 가치에 도전해왔다. 하지만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페미니스트는 남성에게 반감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여성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인식도 있다. 여성의 지위가 충분히 향상되었다며 페미니즘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근래 불거지는 여성 혐오 현상은 여전히 가정과 사회에서 위태로운 여성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가정과 일의 양립을 꿈꾸다

국내 여성학은 80년대에는 노동운동을, 9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의 정치참여, 성폭력, 가정폭력 등을 중심으로 연구했다. 80~90년대를 지나며 고학력 여성이 증가하면서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 수가 증가했다. 산업화가 초래한 급속한 핵가족화는 가정의 형태를 바꾸었다. 이에 따라 가정의 변화에 발맞추어 새로운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여성학의 몫이 되었다.


뒤틀린 모성 이데올로기

우리나라 미디어에서는 뚜렷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찾아볼 수 있다. ‘어머니’는 대개 현모양처라는 특정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자식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모성은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굳은 믿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러한 이상적인 모성상은 기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IMF 경제 위기 이후, 어머니의 역할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는 가부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부장의 위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업무에 바빠 가정에서 소외되고, 어머니가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경우가 늘었다. 또한, 80~90년대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어머니의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사회적 압박으로 직업활동을 하지 못하거나, 결혼 이후 중단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경제활동 대신 아이의 학업과 진학에 매진하며 가계를 책임졌다.

가부장제가 옅어지며 어머니의 역할이 변화했지만, 모성 이데올로기가 깨어진 것은 아니다. 현대 모성 이데올로기는 중산층 전업주부를 대상으로 세워진다. 현대 직장 여성은 직장에서 남성과 동일한 성과를 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많은 가사노동을 담당한다. 집안일과 아이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면 ‘나쁜 엄마’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젊은 어머니들은 가정과 일에 모두 충실한 ‘슈퍼맘’, 혹은 ‘프로 엄마’가 되기를 꿈꾼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안에서, 한국에는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급격한 사회 변화가 저출산을 불러와

우리나라는 1983년 이후 저출산 사회에 진입했다. 이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더욱 심화되어 2001년 이후 ‘초저출산’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저출산 문제가 공론화되었으며, 2006년부터 출산장려정책이 시행되었다.

교육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여성의 출산 행태는 크게 변했다. 80~90년대에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향상되며 고학력 여성 수가 증가했다. 교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성의 미혼 기간, 미출산 기간이 연장되었고, 초혼 및 초산연령이 상승했다. 여성의 고학력화는 경제활동참가율에도 반영되었다. 제한적인 노동시장 및 남성과의 임금 격차에도 불구하고,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졌다. 경제활동 주체인 고학력 여성들의 결혼 시기가 점점 늦어진 것도 눈에 띈다.

반면, 당시 저학력 여성은 전업주부로 살아가거나, 생산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혼여성노동시장이 학력에 따라 위계적으로 분화된 것이다. 저소득 기혼여성들은 노동시장과 가정에서 이중부담을 받았다. 일, 가족 양립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사회 구조의 변화는 우리나라에 저출산을 불러왔다. 저학력, 저소득층의 경제적 빈곤과 제조업 생산직의 인력수요 증가, 여성의 고학력화가 확대되며 소자녀 핵가족 형태가 빠르게 자리잡았다. 핵가족화가 가속되며 전통적 대가족에서 가능했던 육아와 가사부담의 공유가 어려워진 것도 저출산 요인 중 하나다. 저출산의 심각성이 알려져 2006년부터 출산장려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있다. 직장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육아휴직제도의 개선도 필요하다.

 

개선 필요한 육아휴직제도

육아휴직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법적으론 부부가 각각 1년씩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육아휴직 기간엔 임금의 40%에 해당하는 육아휴직급여가 지급된다.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일 가정 양립제도 2015년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전년보다 42.4% 증가했다. 전체 육아휴직자가 전년 대비 13.7%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꽤 큰 폭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체 육아휴직자의 5.5%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육아휴직 안정화를 위해 남녀 고용평등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기존의 육아휴직제도는 회사에서 허가하지 않으면 무단결근으로 처리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해 11월에 발의된 개정안에서는 고용부장관이 임신이나 출산 중인 여성 근로자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육아휴직 신청에 불이익이 있으면, 해당 근로자의 신고 없이도 추적이 가능해졌다. 또한,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 기간만큼 근로시간을 추가로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발의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있지만, 육아휴직제도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가정의 변화에 발맞추다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남성의 권위가 축소되었으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90년대를 지나며, 부부와 자녀가 한 가정을 이루는 핵가족의 형태가 구축되었다.

최근들어 핵가족의 형태도 변화하고 있다. 1인 가구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이른바 ‘싱글족’을 겨냥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미혼 남녀 수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을 피하고 동거로 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많다. 이혼의 증가도 눈에 띈다. 가족은 이제 혈연과 거주의 틀 내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여성학은 이렇듯 변화하는 가정에 발맞추어 제도 확립에 힘쓰고 있다.
 


위태로운 여성의 몸

젠더의 구별은 신체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여성학과 몸은 떼어서 생각하기 어렵다. 현대 페미니즘의 큰 화두는 ‘미(美)’ 와 ‘성적 대상화’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게 ‘미’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나오미 울프(Naomi Wolf, 1962~)는 1990년에 출간된 <미의 신화>에서 ‘미의 신화’를 여성이 절대적 미를 구현해야 하며, 남성은 미의 이상을 구현한 여성을 욕망해야 하는 믿음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남자들이 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자를 침묵시키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매력적인 사람이 사회적 혜택을 받는 문화가 미의 신화를 강화하며, 여성을 종속적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미의 신화가 세워놓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여성은 심리적인 불안감에 시달린다. 성형 중독, 거식증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성형의 위험성이 대중에게 잘 알려졌지만, 많은 이가 아름다워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대에 오른다. 여성학자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불만을 품게 되는 것은 미디어와 대중문화에 나타나는 미의 이미지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70~8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제2의 물결’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미를 추구하는 것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인 선발대회에 반발했고, 패션에 순응하길 거부했다. (관련기사 본지 415호, <여성해방과 젠더 평등을 위하여>)

하지만 ‘제3의 물결’로 논의가 진행되면서, 미의 추구가 새로운 여성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등장했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미의 추구가 여성억압의 1차적 도구만은 아니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여성에게 권력을 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양성평등을 위해 여성이 여성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미의 추구를 여성이 자신감을 느끼는 수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성의 정치학적 측면에서 미의 추구는 여성이 성적 권력을 확보하는 방법이라 말하기도 한다. 자신을 가꾸는 남성이 증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된다. 남성과 여성의 미에 대한 관점 격차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성적 대상화의 문제가 남성에게까지 넓어지면서 남성의 몸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여성의 몸은 도구가 아니다

많은 미디어에서 페미니즘 논쟁이 불붙으면서 ‘성적 대상화’는 더는 낯선 표현이 아니다. ‘성적 대상화’는 인간을 인격이 있는 존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할 수 있는 성적 사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외모, 몸매 등의 육체적 특성으로 판단해 성적 도구화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여성의 몸은 종종 성적 대상화되어 표현되며, 남성의 몸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적 대상화는 종종 성적 자기결정권과 맞물려져 설명된다. 성과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권리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인격과 행복추구권에 전제된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을 근거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간통죄가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결정을 받았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포함하는 성매매 특별법 또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편, 성매매와는 구별되는 여성의 인신매매 형태로, 돈으로 신부를 구하는 결혼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아시아권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한국의 농촌과 빈곤층에선 동남아시아에서 신붓감을 들여오고, 북한 이탈여성들은 중국 농촌의 조선족이나 한족에게 넘겨진다. 이러한 국제결혼은 생식요소 및 기능의 상품화라고 볼 수 있다.

 

남성과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혐오

페미니즘 운동은 흔히 여성해방운동으로 혼용되지만, 이제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의 목표에는 모든 사람에게 채워진 성 규범의 족쇄를 느슨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이들이 말하는 성 평등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다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은 일제강점기에 YWCA(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를 주축으로 하는 여성 계몽운동으로 시작했다. 60~70년대에는 여성 노동 운동을 진행하며 민주화 운동과 맥락을 함께했다. 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은 반(反)성폭력, 반(反)성매매 운동으로 나아갔으며, 성매매 방지 특별법을 제정하고, 호주제를 폐지하는 등 제도 개선에 힘썼다.

국내 여성 운동은 여성과 남성을 이분화해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당시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운동의 주체는 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운동이 남성과 양립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2000년대 이후 군가산점제 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면서 여성운동이 여성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퍼졌다.

한편, 젠더에 대한 논의와 함께 사회적 성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혐오주의에서 ‘여성’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뜻한다. ‘여성 혐오’가 실재한다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기를 든다. 또한 기존의 여성학이 여성에만 치중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과 함께 걷는 페미니즘

지난 2014년 유엔 여성(UN Wo-men)의 친선대사로 위촉된 엠마 왓슨은 성평등을 위해 여성과 남성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히포쉬(HeForShe)’ 캠페인을 이끌어왔다. 히포쉬 캠페인은 성차별과 여성 폭력의 심각성을 알린다. 또한, 그동안 여성운동가가 주축이 되었던 여권신장운동과 양성평등운동에 전 세계의 남성이 지지자로 나서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도 히포쉬 운동이 조금씩 퍼지고 있다. 유명인사들의 캠페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으며, 일반인의 서명도 늘어나고 있다. ‘HeForShe’는 여성을 위한 남성으로 직역할 수 있지만, 캠페인에 참여한 남성들은 이를 ‘여성과 함께하는 남성’이라고 말한다. 남성 페미니스트 수도 조금씩 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며 사회에 팽배해있는 ‘여성 혐오’를 걷어낼 수 있는 좋은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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