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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죽음 곁에서 삶을 태우다
이유 - <소각의 여왕>
[416호] 2016년 03월 02일 (수) 김혜령 기자 alastina@kaist.ac.kr

제21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소각의 여왕>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성실하게 고물상을 운영하는 주인공 지창 씨의 순수한 희망과 갈망은 죽음과 함께 무너진다. 그의 딸이자 유품정리사인 해미의 이야기는 멀게만 여겼던 죽음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해미는 고물상의 ‘여왕’이다. 가끔은 소름 끼치게 현실적인 해미는 가장보다 더 가장다운 대담함과 용기의 소유자다. 이렇게 당차고 속 깊은 소녀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가난과 죽음으로 곪아간다. 해미는 바보같이 착한 아버지 지창 씨와 함께 산다. 부녀는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고물상의 찰떡궁합 콤비지만 많은 것을 나누면서도 정작 중요한 비밀은 나누지 못한다. 해미는 어린 소녀임에도 똑 부러지게 고물상 일을 잘 헤쳐 나가지만,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지창 씨는 늘 사기를 당한다. 해미는 그런 지창 씨가 답답하다.

고물상 돈벌이가 바닥을 칠 때쯤, 해미는 우연히 지창 씨 몰래 유품 정리 일을 해보게 된다. 그 이후로 해미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마주한다. 유기견, 아기, 국밥 할매의 죽음 그리고 청년의 자살에 이은 아버지의 죽음까지. 그렇지만 해미는 이 모든 죽음을 받아들인다.

해미에게 죽음의 의미는 남들과 조금 다르다. 책에는 “여러 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묵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해미는 사람들의 죽음을 동의하고 묵인한다. 아픈 엄마를 보며 자란 해미는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죽음이 간절히 꿈꾸던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죽은 이의 마지막 삶의 흔적을 세상에서 영원히 지우는 해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늘 현실에 질 수밖에 없는 지창 씨와 여러 죽음을 덤덤히 받아들이다가 전환장애까지 갖게 된 해미는 우리 사회의 약자를 나타낸다.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와 늘 한 발자국 거리에 있는 그들은 죽음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희망의 출구라고 생각한다. 운도 지지리 없는 가난한 이들의 피난처 없는 삶은 죽음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희망을 마음에 담아볼 여유조차 없는 그들의 삶의 무게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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