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나 인류에게 신비의 대상이었다. 그 신비를 분석하고 표현하며,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인류는 자신들의 모습을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인간’을 주제로 한 대영박물관의 소장품 176점을 선보이는 <대영박물관-영원한 인간(Human Image) 展>이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이상적 아름다움 ▲개인의 초상 ▲신의 모습 ▲권력자의 형상 ▲변신 ▲관계와 사랑 등 소주제 6개로 분류된 박물관의 핵심 소장품들을 통해 인간을 향한 예술가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미(美)를 향한 다양한 시선
‘아름다움’만큼 모호하면서도 명쾌한 단어는 드물다. 18세기에 그려진 요한 야코베의 <오마이>와 19세기 시에라리온에서 만들어진 <아프리카 여인상>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야코베는 1774년, 런던에 도착한 우아하고 잘생긴 폴리네시아 주민 오마이에게서 그가 꿈꾸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오마이의 이국적인 모습이 당시 유럽인들이 동경하던, 문명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운 ‘자연 그대로’의 인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에라리온 멘데족은 서양의 의복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미와 도덕을 구현한 <아프리카 여인상>은 유럽풍 부츠를 신고 있는데, 이는 여인의 높은 지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변형된 신체로 현실을 넘다
왜곡과 변형은 때로는 인체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예로부터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인체를 변형시켜 초월적 존재를 표현하거나, 숨겨진 내면의 모습을 끄집어내고자 했다. 가면은 변신하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였다. 북부 이라크에서 출토된 2세기경의 금빛 <장례 마스크>는 삶에서 죽음으로의 변신에 대한 고대인들의 관념을 나타낸다. 옆에 전시된 화려한 원색으로 칠해진 <두개골 모델> 역시 이러한 전통의 일부다. 멕시코에서 매년 열리는 ‘죽은 자의 날’ 축제를 위해 1980년대에 만들어진 이 기괴한 작품은, 커다란 두개골 위에 자라난 과실수의 형상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생명을 형상화한다.

뒤틀린 신체는 시대의 톱니바퀴에 짓눌린 인간사를 드러내기도 한다. 납작하게 찌그러진 반쪽 얼굴, 거북이 등처럼 각진 흉부, 한쪽 다리 대신 짚고 있는 목발. 하마다 치메이의 자그마한 <목발을 짚고있는 일본 군인> 동상은 전쟁에 참전했던 제작자의 경험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쑤이젠궈의 <원반 던지는 마오>는 색다른 방식으로 시대상을 표현한다. 그리스 조각가 미론의 유명한 작품 <원반 던지는 사람>에 중산복(인민복)을 입힌 쑤이젠궈의 작품은, 중국과 서양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계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예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도 피어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사랑에 대한 묘사다. 라파엘로가 그린 목탄화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나 기원전 600년경 이집트의 조각 <아들에게 젖 먹이는 이시스 여신>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모성애를 느끼게 한다. 한편 다누타 솔로비아이-베더부른이 런던의 게이 바에서 착상한 <키스하는 두 소년>은 단순한 선으로 동성애의 순간을 담아낸다. 1990년 초 당시, 영국에서 성소수자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했지만, 두 소년의 키스는 순수하고도 아름다워 보인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 역시 자주 묘사된다. 아프리카의 마을 풍경을 묘사한 헤임 앤서니 조나스의 <마을 풍경> 속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원색적인 빨강과 녹색이 넘쳐나는 그림 속 마을은 언뜻 활기차 보이지만, 사회상을 반영하듯 에이즈 문제를 앓고 있다. 왼쪽 아래 구석 오두막에는 “나는 엠강가(치유사 겸 주술사)다. 치명적인 에이즈만 빼고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다”라고 적힌 글귀를 볼 수 있다.
 
6가지 소주제로 분류된 전시품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 국가를 넘어 다양한 소장품들이 모인 전시인 만큼, 상이하게 표현된 인간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 역시 큰 즐거움이다. 인간을 바라보는 역사 속 예술가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자신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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