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경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7편의 소설을 읽었다. 응모기간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응모편수가 좀 줄었지만 읽는 맛을 주는 작품들이 있어 즐거웠다. <나는 열려 있고 닫혀 있다>(공선우)는 어떤 작품의 서장 정도이고, <탈출>(이동규)과 <찬란한 귀거래사>(권준민)는 성공한 일상에서의 벗어남이라는 평범한 주제를 너무 상투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구성뿐만이 아니라 문장이나 묘사의 적실성에서 훈련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수상 대상에서 우선 제외했다. <유서>(박정수)는 상당한 수준의 수사법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란한 비유에 비해 거기에 담고자 하는 ‘사유’가 너무 막연했다. 좀 더 정돈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역시 이번의 수상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나의 첫 룸메이트>(이경미)와 <동행>(윤수현)은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진행되는 일상을 소재로, 미숙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표현과 소통이라고 하는 글쓰기의 원초적인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류의 독자에게도 공감의 재미를 주는 글쓰기의 전형일 것이다. 모두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카이스트의 특성상, 룸메이트와의 갈등은 학생들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며(<나의 첫 룸메이트>), 또한 20대의 청춘남녀가 모여 있는 곳이니 성생활 역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까?(<동행>) 하고 싶은 이야기, 잘 아는 이야기를 쓸 때 독자와의 소통도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다만, 두 작품 모두 문제 제기의 진솔함에 비하면 그 결말은 너무 상투적이다. 깔끔한 정리 벽을 가진 나와 그런 것을 속박으로 느끼는 룸메이트 사이의 갈등은 ‘배려와 인내’로 해결되고, 모범생으로 자처하는 ‘나'가 친구의 남성 편력과 임신 소동을 지켜보고 나서 입 밖에 낸 최선의 충고는 ‘하더라도 조심해서 해라'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두 작품은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했는데, <동행>이 가진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는 말 걸기’를 좀 더 높이 사서 가작으로 올렸다. 
 

<도라와요 도라사네>(양성호)는 소설이 갖추어야 할 것을 웬만큼 갖춘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로 설정된 혜령은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일본인 남자 히로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히로의 할아버지가 죽으면서 갑자기 한국계의 핏줄을 확인하게 되자 그 이전 둘 사이에서 한국인/일본인 사이의 차이로 느껴지던 것을 다르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는데 히로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면서 그런 ‘피’의 다름이 무화되고 서로의 진솔한 모습에 마주 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제의 시의성, 개인의 정체성 모색과 사회화의 과정을 병치시켜서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 등이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래서 당선작으로 올리는 것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다만 ‘자이니치’라고 하는 역사와 현실이 모두 만만치 않은 덩어리를 소재로 취할 때는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가령 처음으로 한국의 도라산을 방문하니 거기에 히로의 할아버지가 손자와 그의 여자 친구 혜령을 모델로 한 조각상을 기증해 놓았더라는 이야기 자체는 너무 작위적이다. 또한, 역시 피의 문제의 부딪혔을 히로의 아버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소화했는지 독자가 당연히 가질 만한 의문에 대해 작가는 아무런 대답을 마련하지 않았고 혜령이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겪어야 했던 정체성 확립의 어려운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어 역시 좀 갑갑한 느낌이었다. 이런 여러 아쉬움에도 개인의 정체성 모색이라는, 응모작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를 ‘자이니치’라고 하는 역사적, 현실적 문제에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높이 샀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