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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방과 젠더 평등을 위하여
<페미니즘 2부작> - 1부: 페미니즘의 발전사
[415호] 2016년 02월 16일 (화)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19세기 중반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시작된 페미니즘은 제 1의 물결, 제 2의 물결 등의 큰 흐름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페미니즘은 인종, 계급, 민족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었으며 새롭게 제기되는 여성문제에 맞춰 발돋움했다. 여성해방운동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은, 현대에 와서는 LGBT, 소수인종,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주목한다. 본 기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페미니즘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여성인권운동가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본다.

 

작년 상반기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이 SNS에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여성 억압의 현장을 공유했다. 페미니즘은 현대 사회의 첨예한 이슈다. 페미니스트는 ‘드센 여자’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으며,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셀러브리티들은 지속적인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페미니즘은 욕이다(Feminism is an ‘F-word’)”라는 말은 이러한 사회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혁명가는 아니며,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도 각양각색이다. 때문에 페미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페미니즘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이 빠진 반쪽짜리 혁명

18세기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였다. 왕과 귀족에게 침탈당한 인권을 되찾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계몽사상가들은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가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고 말하며 새로운 사회질서를 꿈꿨다. 하지만 이들은 종속과 불평등에 대한 비판을 남녀관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까지 확대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문은 여성의 권리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장 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곧 자연법’이라고 말했다.

1789년 8월, 프랑스의 여류작가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1748~1793)는 프랑스 혁명이 내건 평등의 권리가 남성에게만 주어진 데 분노하며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의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벽보를 붙이던 중 체포되었다. 그녀는 단두대에서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처형당했다. 올랭프 드 구즈의 죽음을 기점으로 프랑스에서는 모든 여성단체가 해체되었고, 여성의 집회금지법이 발표되었다. 

 

제 1의 물결: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달라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의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는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루소에게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녀는 여성에게도 이성과 인권이 있으며 여성이 남성과 같은 교육의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존 여성교육이 순종을 강요해 여성이 자립할 수 없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결혼하면 남자에게 모든 것이 종속되는 당시의 결혼제도에 의문을 품었으며,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자신의 동생을 구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스턴크래프트의 책은 다른 남성 지식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어떤 사회 평론가는 그녀를 ‘사색하는 뱀’,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라고 비웃었다. 

 

제도 개혁에 힘쓴 자유주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성적 불평등을 설명한다. 제1 페미니즘 운동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기존 제도가 여성이 남성과 경쟁할 기회를 제한하기 때문에 불평등이 생긴다고 말한다. 불평등한 제도가 사라진다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점차 유사해진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켜야 하며, 이는 제도 개혁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평등권을 쟁취하기 위해 남성과 동일한 경쟁 기회를 보장하는 기본권을 얻어내려 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같으므로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지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교육권 ▲재산권 ▲투표권 ▲직업을 가질 권리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얻기 위해 애썼다. 

 

참정권을 위해 거리로 나서다

책과 이론으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여성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에 참여했다. 1912년 3월, WSPU(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 여성사회정치동맹)에서 활동하는 200여 명의 여성이 런던 거리의 유리창을 박살 냈다. 그들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불태우고, 건물에 불을 지르며 참정권에 대한 여성들의 요구를 알리려 애썼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시위는 1913년, 경마장에서 일인시위를 하던 에밀리 데이비슨이 말에 뛰어들어 숨지며 더욱 거세졌다. 에머린 팬크허스트 등의 여성들은 단식 투쟁을 지속했다. 그들은 호스로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조치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많은 여성이 체포되었고, 가정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은 1918년, 미국 1920년, 프랑스에서는 1946년에 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했다.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한 것은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제 2의 물결: 여성 해방을 위한 페미니즘 혁명 

페미니즘의 개념은 1960~70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넓어졌다. 제 1차 페미니즘운동이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제 2차 페미니즘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주목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되는 사회적 이유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또한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제도 개선에만 초점을 둔 것을 비판하며, 일상에서 여성 억압이 발생하는 현 체제 그 자체에 반발한다. 체제 개선을 위해 성 억압의 원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으며, ‘여성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가부장제의 잘못을 꼬집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1986)는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여성과 남성 사이 존재하는 직접적인 권력 관계를 ‘성 계급’이라고 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적 지배구조가 성 계급을 만들고 있으며, 남성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다고 본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제도 개선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하나, 급진적 페미니즘은 사회구조, 즉 가부장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가부장제가 폭력을 낳는다고 말한다. 낙태, 강간 같은 육체적, 성적인 측면에서 남성의 지배문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수잔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 1935~)는 여성이 권력관계의 약자이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케이트 밀렛(Kate Millett, 1934~)은 남성은 여성과의 권력관계를 성행위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목표는 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해체다. 이들은 남성이 여성에 대한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남성의 지배는 혁명으로만 끝날 수 있다는 혁명주의 노선을 취한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1945~2012)는 <성의 변증법>에서 성 해방을 통한 인간 해방을 역설한다. 그녀는 성 평등을 위해 가족의 해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공수정으로 번식하면 여성과 아이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분리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가부장제에서 분리되어 남성과 무관한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 억압을 설명하는 이론의 등장

급진적 페미니즘 내에서도 성의 계급화를 설명하는 방식과 체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에 따라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가 성의 계급화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회적 억압과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억압도 자본주의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 는 가부장제의 근원을 사유재산제도라고 봤다. 그는 인류가 사유재산을 추구하면서 남성이 여성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재생산(reproduction)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의 재생산 기능을 소유하려 하면서 가부장제도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계급투쟁을 통해 억압의 근원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성 억압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이 등장했다. 에코 페미니즘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여성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억압적인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사회주의도 산업화를 바탕에 두기 때문에, 진정한 해방을 이룰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정신분석적 페미니즘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기초해 여성과 남성의 해부학적 차이가 여성 억압을 낳는다고 설명한다. 남근의 유무가 여성과 남성의 심리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었고, 남성은 여성의 재생산 기능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금기시되었던 여성 성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제 3의 물결: 페미니즘의 다각화

백인 중심적 논리에서 탈피하다

흑인 여성, 혹은 유색 인종 여성은 백인 여성과 다른 양상의 성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한다. 때문에 흑인 페미니즘은 이전 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백인 중심적 전제를 비판한다. 흑인 페미니즘은 1960년대 후반에 전개된 흑인인권운동과 ‘제2의 물결’ 페미니즘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와 제3세계의 유색인종 여성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둔다. 흑인 페미니즘은 나아가서 ▲인종적 소수자 ▲성소수자 ▲장애 여성에 대한 논의도 페미니즘의 범주로 포함했다. 

이들은 기존의 ‘페미니스트(Fe-minist)’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우머니스트(Womanist)’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단순한 남녀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해 인종, 민족, 계층, 성 정체성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고려해야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80~90년대에 등장한 포스트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이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 체제를 강화시켜 여성들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각자의 사회와 환경에 따라 페미니즘은 변화해야 하며, 여성에서 벗어나 ‘젠더’의 논의로 나아간다. 

 

페미니즘은 이론과 운동을 동시에 포함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랜 기간에 거쳐 여성의 권리를 주장했다. 또한, 젠더를 이해하고, 불합리한 사회 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여성학이 발달했다. 어떤 사회운동이든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에 따라 의도와 뜻이 변화한다. 페미니즘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각각의 시대상과 이론을 이해하는 것과 일치한다. 페미니즘은 이제 특정한 이론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모든 이들의 인권을 추구한다. 현대 페미니즘은 포르노그라피와 성형, 성매매 등의 문제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대상화에 대한 논의를 계속한다. 다음 기사에서 한국의 페미니즘과 현대 페미니즘이 다루는 다양한 문제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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