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영 소설가

소설 부문 응모작 5편을 읽었다. 창작을 한다는 것은 삶에 피난처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고, 해방구를 내는 일이기도 하다.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기도 하고, 질문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5편의 소설에 대한 대략의 줄거리와 인물 소개, 질문 거리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심사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이 모든 시도들, 상상의 숲과 거리에 이런저런 길을 내보는 일과 물음표를 띄우는 일을 가능하게 한 다섯 작가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


강승체, <꼬있다, 꼬있서!>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한 남자가 다음 날 눈의 시신경이 엄지발가락 부근으로 옮겨가 버린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남자는 발가락 이야기는 비밀에 부친 채 두 살 된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고 거기서 난처한 일들을 겪는다.
발상이 기발한 점이 좋았다. 충격적인 일을 겪으면 우리는 비유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런데 갑자기 발가락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능력이 생길 수도 있고, 전에는 못 느꼈던 방식으로 세상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될 수도 있고, 연구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비밀을 안고 고향으로 가는 편을 택했다. 왜일까?
모험의 세계(주인공의 고향, 과거와 내면세계까지 포함하여)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러니 질문을 안고 더 걸어 들어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오지연, <눈이 내린다>

겨울이 길고 고립된 마을에서 아이들은 신령한 바위의 선택을 받아 자신이 ‘눈의 아이’가 되길 꿈꾸고 경쟁한다. 하지만 바위에는 신성이 없고, 전설은 조작된 것이다. 주인공은 엄마와의 갈등의 고리를 끊고, 허상의 세계를 떠나고자 숲으로 나선다. 선택받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방향을 튼다.
<눈이 내린다>는 감정과 관계 묘사가 섬세한 글이다. 잘 아는 감정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는 점, 버려진 미술실에서 일어난 전학생과의 대면 장면 같은 것들이 인상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야기의 틀은 참신하지 않은 편이고, 마을 이야기의 세부 정보를 엮는 데 있어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 아쉬웠다. 실제 주변의 이야기 속에서 감정과 갈등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한 번 써볼 것을 권한다. 더불어 글로 표현해내고 싶은 무언가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란 말도 꼭 전하고 싶다.


박다원, <박복자와 씨유 편의점>

거침없는 경쾌한 묘사로 시골 풍경과 인물들을 그려냈다.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썼다는 것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이었다. 하지만 박복자란 인물은 외딴 데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대를 사는 스무 살의 여성이다. 조금 모자라 보일 만큼 천진하고 푼수 같은 점은 캐릭터가 될 수 있겠지만, 편의점 주인의 허튼 수작을 아무런 불쾌감 없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이 글이 만일 세태 풍자가 되려면 실제로 어느 지방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스무 살이 보아도 이야기로서 납득할 만하고 상처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이 부분을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고종완 <24>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이 어느 날 질문들에 휩싸인다. 어항 속의 물고기도, 거리의 비둘기도 ‘넌 누구냐?’고 질문하고, 여자친구는 왜 자기를 좋아 하느냐며 꼬치꼬치 묻는다. 수업은 흥미롭지 않고, 대학친구는 학업을 접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주인공은 무작정 정동진행 기차에 오른다.
이 글의 장점은 먼 데가 아닌, 우리 가까운 데서 이야기를 찾았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갈피도 못 잡겠고, 현실에 빠르게 적응하기도 어려워 방황하는 청춘의 이야기는 얼마나 공감대가 큰가. 그러니 언제가 되건 더 써보기를 권하고 싶다. 전반적으로 쫓기듯 빠르게 써나간 느낌이다. 서술 시점이 혼재되어 있고 결말에 여운이 없는 점은 그 때문이다. 절박한 마음으로 바다까지 갔으니 바다를 보며 소리 높여 자신을 부르는 행위라도 해보았다면 어땠을까?

김수지, <모쉬트>

<모쉬트>라는 술집의 화장실 통로에 앉아 화장실을 이용하는 취객들에게 돈을 받는 덩치 큰 여인 카탈린 젤러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 여인은 어느 날 자기가 일하는 곳 화장실 변기 위에서 우연히도 아름다운 한 문장이 적힌 종이가 든 보석함을 발견한다. 그로부터 보석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라슬로 칼만을 찾아 가는 여정이 시작된다.
 <모쉬트>는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이야기이다. 취객들이 비틀대는 이국의 술집으로부터 화려한 거리들과 강가, 골목들을 거쳐 거대한 책장이 있는 낯선 이의 방으로까지 읽는 이를 안내하는 솜씨도 돋보인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인물의 숨겨진 인생을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고민들도 느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여정과 아름다운 발견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질문이 남는다. 이 소설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다 지워내고 난 뒤에도 남는 가장 큰 울림은 무엇일까? 왜 카탈린 젤러는 라슬로 칼만의 비화를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간직하게 되는가? 비애, 분노는 전혀 느끼지 않았을까? 왜 이 소설의 제목은 ‘지금’이라는 의미의 <모쉬트>일까? 나는 이 모든 여정과 감정을 가능케 하는 카탈린 젤러의 개인적인 생의 이야기가 조금 더 궁금했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니 시간을 두고 들여다보면 어떨까 하는 의미에서 <모쉬트>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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