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상 - 중성미자 진동
지난달 6일,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은 퀸즈대학교 아서 B. 맥도널드(Arthur B. McDonald) 명예 교수와 도쿄대학교 타카아키 카지카(Takaaki Kajita) 교수에게 돌아갔다. 중성미자 진동 현상을 발견해 중성미자도 질량을 가진다는 사실을 증명한 성과를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현대 물리학의 표준 모형의 결함이 발견되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이론을 재정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감수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김수봉 교수
파울리가 예고한 중성미자의 존재
중성미자(neutrino)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1950년대지만,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가 처음 중성미자의 존재를 예측한 것은 1930년이다. 당시 학계에서는 방사성 원소가 베타 붕괴를 통해 전자를 방출할 때 총 에너지와 운동량이 보존되지 않는 현상이 포착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에 파울리는 베타 붕괴가 일어나면 전자뿐만 아니라, 당시엔 알려지지 않았던 또 다른 입자가 방출됨으로써 두 보존 법칙이 무너지지 않으리라 예측했다. 또한, 파울리는 미지의 입자가 전기적 중성이며 질량이 매우 작아 관측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중성미자는 관측하기 어려워
파울리의 예측대로, 베타 붕괴 후에는 전자와 함께 매우 가볍고 중성인 입자가 방출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입자는 반응성이 낮고 중성이라는 점에서 중성미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러한 중성미자의 특성상 일반적인 장비와 방법으로는 검출하기가 힘들다. 특히 세 종류의 중성미자(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 타우중성미자)는 각각 질량이 다르며 그 수치가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로 정보가 많지 않다. 표준 모형에서는 중성미자의 질량이 0이라고 가정하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증거도 없다. 이처럼 중성미자 연구가 난항을 겪자, 과학자들은 탐지 장치의 오차를 최대한 줄이고 관측 확률을 높이기 위해 외부 공간과 격리된 지하에 중성미자 관측소를 마련했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
중성미자 관측소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태양에서 지구로 향하는 중성미자를 조사하는 것이다. 태양에서는 핵융합이 일어나 전자중성미자가 방출되며, 상당수가 지구를 향해 날아온다. 1950년대 학자들은 SSM(Standard Solar Model)을 통해 태양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중성미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1968년 관측한 태양으로부터 온 전자중성미자 선속(flux)은 예상보다 훨씬 낮았으며, 이러한 결과는 1990년대까지 계속 보고되었다. 모든 관측소에서 비슷한 결과를 내놓자, 학계에서는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 또는 타우중성미자로 변하는 이른바 중성미자 진동(neutrino oscillation)이 일어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표준 모형 속 중성미자는 질량이 없어
중성미자 진동의 가능성은 1950년대 말에 처음 제기되었다. 중성미자의 종류가 중성미자의 질량에 대한 고유 상태(eigenstate)들이 중첩(quantum superposition)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하면 중성미자 진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대 물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표준 모형은 중성미자의 질량이 0이라고 가정한다. 이때 양자역학에 따르면 표준 모형에서 중성미자 진동이 일어날 확률이 0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성미자 진동이 일어난다는 것은 표준 모형이 중성미자를 이해하는 방식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중성미자 진동 밝힌 SNO
SNO(Sudbury Neutrino Observatory)는 아서 B. 맥도널드가 첫 관측소장을 맡아 1999년부터 운영된 중성미자 관측소다. SNO는 중수(D₂O)를 사용해 태양 전자중성미자의 중성미자 진동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했다. CC와 NC라는 두 반응을 관측한 것이다. CC(Charged Current reaction)는 전자중성미자가 중수소와 반응해 양성자 2개와 전자 1개를 형성하는 반응, NC(Neutral Current reaction)는 중성미자가 중수소와 반응해 같은 종류의 중성미자, 양성자, 중성자를 1개씩 형성하는 반응을 말한다. 중수 속에서는 CC와 NC가 동시에 일어나므로, 반응의 빈도를 측정해 전자중성미자의 비율을 구할 수 있다.
2001년, SNO는 여전히 전자중성미자 선속은 이론상으로 얻은 값에 못 미치나, 전체 중성미자 선속은 SSM에서 구한 전자중성미자 선속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1년 후 KamLAND(Kamioka Liquid scintillator AntiNeutrino Detector)에서도 유사한 결과를 거두어 전자중성미자가 뮤온중성미자 혹은 타우중성미자로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을 확고히 했다.
대기 중에서 중성미자가 발생해
우주 공간에는 수많은 우주 입자(cosmic ray)가 날아다니며, 그중 대부분은 양성자다. 물론 지구도 그 영향권 내에 있어, 지구는 수많은 우주 입자에 노출되어 있다. 이때 우주 입자가 대기 근처에 접근해 지구 대기 중 원소와 반응하면 파이온(pion)과 케이온(kaon)을 방출한다. 파이온과 케이온은 뮤온(muon)과 뮤온중성미자로 붕괴하며, 뮤온은 전자, 전자중성미자, 뮤온중성미자로 또다시 붕괴한다. 즉, 지구 대기에는 우주 입자에 의해 전자중성미자와 뮤온중성미자가 생성된다. 이들의 비율은 붕괴 직전 뮤온의 에너지에 따라 다르나, 그 에너지가 작으면 뮤온중성미자가 전자중성미자보다 약 2배 많다는 결과를 이론적으로 도출할 수 있다.
그런데 IMB(Irvine Michigan Brookhaven detector)와 Kamiokande에서 대기 중 뮤온중성미자 선속의 비율이 예상값보다 낮다는 관측 결과를 발표했으며,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학계에는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중성미자 진동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CC 통해 관측한 뮤온중성미자
타카아키 카지타는 Kamiokande에서 대기 중성미자 문제를 발견한 뒤, 중성미자 관측소 SK(Super-Kamiokande)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규모가 Kamiokande보다 약 20배 큰 SK는 2년간 자료를 수집해 중성미자 진동과 직결되는 현상을 포착했다. 뮤온중성미자의 날아온 거리에 따른 선속 변화가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SK가 탐지하는 것은 CC의 생성물이다. 전자중성미자와 뮤온중성미자가 CC를 일으키면 각각 전자와 뮤온을 방출하므로, 이때 생성된 전자와 뮤온의 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CC에서 생성된 전자와 뮤온의 속도를 측정하면 반응을 일으킨 중성미자가 날아온 방향을 계산할 수 있다. 그 방향에 따라 대기에서 검출 장치까지의 거리를 계산한 뒤 선속을 측정하자, 검출 장치 바로 위 대기에서 날아온 뮤온중성미자가 지구 반대쪽 대기에서 날아온 뮤온중성미자보다 많았다. 반면 전자중성미자의 수는 위로 이동하는 입자와 아래로 이동하는 입자의 수가 비슷했다.
한편 대기 중성미자는 고도 20~30km에서 생성되며 지구 표면에서 생성 빈도는 균일하므로, 지구 표면에서 중성미자 선속은 균일하다. 또한, 중성미자는 물질과 반응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지구 반대쪽 대기에서 생성된 중성미자가 지구를 관통해 날아올 수 있다. 따라서 한 지점에서 위로 운동하는 중성미자와 아래로 운동하는 중성미자의 비율은 같다. 그런데 위로 운동하는, 즉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뮤온중성미자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관측되어, 뮤온중성미자가 날아오는 도중 타우중성미자로 변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 아서 B. 맥도널드와 타카아키 카지타는 각각 태양 중성미자와 대기 중성미자를 연구해 중성미자 진동의 증거를 포착하여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성과는 표준 모형이 가진 명백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현대 이론 중 우리 우주를 가장 잘 설명한다는 표준 모형의 결함이 드러난 만큼, 우리가 우주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우리 우주의 비밀을 밝혀 나가는 과정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물리학계에서는 표준 모형의 결함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기존 이론의 결함을 조금씩 개선해 가면, 언젠가 우리 우주를 제대로 이해할 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