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상 - 앵거스 디턴

노벨 경제학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이다. 이는 다른 5개 부문의 노벨상과는 달리,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9년에 새롭게 제정된 상이다. 매년 왕립 스웨덴 과학 아카데미의 경제학상 심사위원회에서 그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는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앵거스 디턴은 영국과 미국 국적을 가진 미시경제학자로 현재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그는 주로 소비와 빈곤, 복지에 관해 연구했다. 노벨 경제학상 심사위원회는 경제학상 수상자로 앵거스 디턴을 선정한 이유로 그의 세 가지 업적 ▲수요 체계 ▲총수요 ▲빈곤에 대한 연구를 꼽았다.

 

지출 방식 알려주는 수요 체계
그의 업적 중 첫 번째는 그가 수요 체계를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수요 체계(demand system)란 물품의 수요량과 가격, 소비자의 지출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어떻게 지출을 결정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어, 여태 수요 체계는 경제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 중 하나였다.
경제학자들은 소비자가 부를 합리적으로 소비할 것으로 생각했다. 즉, 지출 방식이 합리성을 만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합리성(rationality)이란 소비자의 효용(utility), 즉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해 얻는 이득의 합이 최대가 되도록 지출 방식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지출 방식이 합리성을 만족하기 위해선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균질성(homogeneity)을 가져야 한다. 즉, 모든 상품의 가격과 소비자의 총지출을 같은 비율로 늘렸을 때, 상품 지출 분배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대칭성(symmetry)을 가져야 한다. 대칭성이란 상품 a의 가격 변화가 상품 b 수요량에 미치는 영향이 상품 b의 가격 변화가 상품 a 수요량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 상품의 가격이 높아질 때 그 상품의 수요량이 증가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수요 체계 제안해
수요 체계를 잘 설계하면 실제 소비자의 지출 방식을 반영한다. 따라서 소비자의 지출 방식이 합리적이라면, 지출 방식도 이러한 합리성의 조건을 만족할 것이다. 디턴의 연구 이전에 알려진 수요 체계는 그 가정 자체에 합리성의 성질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의 합리성을 만족했다. 하지만 수요 체계에 어떤 값을 대입하더라도 그 자체로 합리성을 만족하기 때문에 실제로 측정한 사람들의 지출 방식이 합리적인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디턴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5년 전 존 뮬바우어와 함께 준 이상 수요 체계(Almost Ideal Demand System)를 발표했다. 두 학자는 합리성이 수요 체계의 가정으로써 포함되지 않도록 준 이상 수요 체계에 PIGLOG 선호 체계(Price-Independent Generalized Logarithmic preference system)를 도입했다. 따라서 준 이상 수요 체계를 이용하면 실제 측정값이 합리성을 갖는지 알아볼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심사위원회에서는 디턴의 연구가 수요 체계를 더 정교하고 일반적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준 이상 수요 체계는 현재 학계와 실무에 이용되고 있다.

수요 연구 방향 전환한 디턴
한 사람의 소비를 결정할 때는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소득 중 어느 정도를 지출할지 결정하고, 다음으로 결정된 지출을 어떻게 분배할지 정하는 것이다. 디턴의 첫 번째 업적인 수요 체계에 관한 연구가 두 번째 단계인 지출 분배를 정하는 것에 대한 연구라면, 두 번째 업적은 소득 중 지출의 비율을 결정하는 단계에 관련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출은 소득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이전에는 PIH/LC(Permanent Income Hypothesis/Life Cycle) 이론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PIH/LC 이론은 개인의 지출과 소득의 관계에 대한 모델이었지만, 다수의 소득과 지출의 관계를 알아보는 데에도 이용되었다. 디턴은 PIH/LC 이론이 개인이 아닌 다수의 소득과 지출 간 관계를 알아보는 데 이용될 경우 실제 측정된 관계와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PIH/LC 이론에 따르면 다수의 소득이 변화하면 지출은 그보다 더 많이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측정한 결과 소득 변화 폭보다 지출의 변화 폭이 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다수를 다룰 때 생겨나는 오류를 ‘디턴 역설(Deaton paradox)’이라고 한다.
디턴의 연구는 소비에 대해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의 시선을 전체에서 개인으로 돌려놓는 역할을 했다. 디턴은 소득과 지출, 저축의 관계를 다룰 때는 전체를 해석하기보다는 개인 수준에서 분석하고 이를 합산하여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곤 연구 발전에 이바지해
마지막으로 디턴은 가난과 복지에 대한 연구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디턴은 소득 변화에 따른 소비량 변화를 나타내는 엥겔 곡선(Engel curve)을 이용해 가난한 나라에서의 소득과 영양 상태의 관계를 조사했다. 이 조사는 여러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먼저, 가난과 영양 상태는 밀접한 관계가 있고, 영양 상태는 가정 조사를 통해 쉽게 평가할 수 있으므로, 가난한 정도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또한, 소득에 따른 영양 상태를 아는 것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설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소득 변화에 따른 영양 상태의 변화가 크다면 빠른 경제 성장을 통해 소득을 상승시키는 정책을, 변화가 작다면 경제 성장보다는 복지를 발전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디턴은 소비에 대한 자료를 빈곤 정도 측정에 이용했다. 이는 저소득 국가의 성장을 연구하는 개발경제학 분야에 변화를 불러왔다. 이론적 영역을 기반으로 연구하던 기존의 방식을 실제로 조사한 자료를 활용하는 실증적인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처럼 앵거스 디턴은 소비와 빈곤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켰다. 디턴은 수요 체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론과 실제 측정 결과를 연결했다. 또한, 학계에 다수가 아닌 개인의 행동에 주목하는 방식과 실제 조사 자료를 이용해 빈곤을 측정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었다. 이 세 가지 연구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디턴은 거시 경제 지표에 관심을 두던 경제학자들의 시선을 실증적 영역으로 돌리는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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