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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전쟁터의 소녀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전쟁은 여자의 모습을 하지 않았다>
[412호] 2015년 11월 03일 (화)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매년 가을은 노벨상의 열기로 뜨겁다. 화학, 물리학, 생리의학, 문학, 경제학, 그리고 평화상까지, 누가, 어떤 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을 것인지에 세계의 관심이 주목된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벨라루스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였다.

 

알렉시예비치는 구소련 연방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일어난 여러 폭력적 사건과 재앙을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준다.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널리즘과 에세이를 접목한 일명 ‘목소리 소설’로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다. 수백 명의 사람로부터 모은 이야기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으로 다가온다. 국내에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출간되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는 여자의 목소리를 빌려 전쟁을 말한다. 전쟁터에는 남자만 있던 것이 아니다. 백만 명 이상의 소련 여성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빨치산으로, 지하공작원으로 나치에게 맞서 싸웠다. 남자와 함께 총을 들었고, 때로는 전선의 뒤에서 부상병을 간호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여성 200여 명의 목소리를 전한다.

 

   
 일러스트 최지은 기자

그들에게 전쟁은 모두 다른 의미였다. 어떤 여인에게는 솥이 전쟁터였다. 커다란 솥 한가득 밥을 해놓아도 전투에서 돌아와 밥을 먹을 사람이 없어 눈물을 흘렸다. 통신병이었던 한 소녀는 오빠의 전사 소식에 전화기를 내려놓고 총을 들었다. 소녀 저격병들은 먼 발치에서 적을 쏘아 넘어뜨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나간 한 소녀는 전쟁 중에 키가 10센티미터나 자랐다. 21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소녀가 있었고, 아직도 붉은색을 볼 수 없어서 꽃집에 가지 못하는 소녀가 있다. 딸의 전사통지서를 받았음에도 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계속해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던 소녀는 ‘용감한 병사’ 메달을 달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집으로 돌아왔다. 전쟁은 그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소녀 병사는 모든 장병의 ‘누이’이자 전장에서 부상병을 구해낸 전우였다. 길게 땋았던 머리를 자르며 눈물을 흘렸고 구두 대신 군화를 신었다. 원피스를 입는 법조차 잊어버렸다. 살아남기 위해 여성임을 잠시 잊었던 그들은 적에게 포로로 잡혔을 경우를 대비해 항상 자신을 위한 총알을 남겨두었다.

전쟁터에도 사랑은 있었다. 죽음이 맴도는 곳에서의 사랑은 더욱 애절하고 안타까웠다. 그녀들은 전쟁터에서도 철없는 소녀였고, 사랑을 꿈꾸는 여인이었으며, 자식을 품은 어머니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소녀 병사들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이 되어있었다. 돌아온 상이군인은 영웅이 되었지만, 부상당한 소녀 병사는 삶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4년의 전쟁은 여자의 삶을 망가뜨렸다. 모진 굶주림과 고된 생활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여자들은 그녀들이 남편감을 찾아 전쟁에 나간 것이라며 모욕했고, 함께 참전한 군인들조차 그들을 외면했다. 여자들의 전쟁은 점차 잊혀졌다.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그녀의 나라 벨라루스에서 출판 보류되거나, 아니면 재판에 회부되곤 했다. 여자가 목격했고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 전쟁은 너무 감정적이고 잔인한 묘사라고 비난 받았다. 원고는 출판사에서 거부당한 채 2년 동안 쌓여있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을 원하는 군중은 사실을 거부했고 전쟁의 목격자들을 질타했다. 나이 든 소녀 병사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전쟁을 말하지 못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100만 명이 넘는 소련 여성이 참전했지만, 누구의 이름도 기억되지 않는다. “전쟁에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일을 저지르고 때론 지독히 인간적인 사람들만 있었다”라고 알렉시예비치는 말한다. 전쟁의 참상 앞에서 작가는 아무것도 첨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전쟁에서 돌아온 소녀 병사 200여 명의 이야기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1948년에 태어난 벨라루스의 여성 작가. 그녀의 작품은 전쟁과 재해의 위협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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