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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역사를 딛고서,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410호] 2015년 09월 07일 (월)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성 소수자를 향한 편향된 시각과 그에 따른 불이익은 암암리에 존재해왔다. 때문에 이전까지는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소극적인 보호가 논의되었다. 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 9명 중 5명이 동성결혼에 찬성을 던지며, 동성 간의 결혼이 미국의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로 미국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21번째 국가가 되었다.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번 판결은 성 소수자의 인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오랜 차별의 역사를 살펴보며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다

동성애에 대한 시각은 시대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왔다. 14세기까지 유럽은 동성애에 관용적인 편이었다. 여성의 동성애는 여성이 남성을 모방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때문에 일종의 유희로 여겨져 귀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남성 간의 동성애는 ‘자연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여겨져 질타의 대상이 되었지만, 비난의 대상은 수동적 역할을 하는 남성에게 한정되어 있었다. 동성애자는 중세 베네치아에서는 흑사병의 원인으로 여겨져 공개 처형당하기도 했고, 계몽주의 시대에는 ‘공중위생론’에 따라 국가에 의해 감시 당하는 등 차별을 겪었다. 이러한 차별에도 동성애는 18세기 말까지 다양한 은유와 풍자 예술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말, 제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젊은이들이 주목 받으면서 남성의 ‘동지애’가 화두로 떠올랐다. 청년들은 육체에 대한 숭배와 자연으로의 회귀를 이야기하며 전쟁을 일으킨 기존 세대와의 차별성을 추구했다. 이 시기에 문학과 영화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등장했다. 그러나 전례가 없던 동성애 소재의 노출은 대중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대에 ‘범죄적 동성애자’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며 경찰이 동성애자 단속을 시작했고, 1930년부터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성애 소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동성애자에 대한 무조건적 차별의 신호탄이었다. 특히 나치는 동성애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초기에는 나치당에서도 동성애에 부정적이지 않았다. 나치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돌격대의 참모장인 에른스트 룀 역시 공공연한 동성애자였다. 또한, 돌격대 내부에서도 동성애를 ‘동지애’와 가깝게 보며 남성 간의 우정을 찬양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른스토 룀과 히틀러의 정치 노선이 달라지며 히틀러가 그를 숙청했고, 나치는 동성애에 부정적이었던 시대의 분위기에 동조하며 동성애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동성애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잔혹한 치료법이 연구되었다.

 

사랑하고 저항하라, 퀴어 퍼레이드의 시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혼란을 잠재우고자 미국은 보수적인 가치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특히 1950년대에 동성애는 AIDS의 원인이며, 청소년에게 범죄와 불건전한 성문화를 퍼트린다고 생각되었다. 보수적 가치와 어긋나는 동성애는 사회의 표적이 되었고, 연방수사국과 주 경찰이 동성애자들을 관리했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1969년 6월 28일, 미국의 동성애자 집단이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데모를 시작했다. 뉴욕의 작은 바 ‘스톤월 인’에서 모욕적인 검문을 하는 경찰에 저항하며 시작한 시위는 군중이 가세하며 규모가 커졌다. 천여 명의 성 소수자가 모인 ‘스톤월 항쟁’은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끌며 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표면으로 드러냈다. 이를 기점으로 동성애자들은 사회와의 융화를 시도했다.

스톤월 항쟁의 1년 후인 1970년 6월 28일, 세계 최초의 퀴어 퍼레이드가 개최되었다.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 퀴어 퍼레이드는 대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성 소수자들 자신도 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후에도 스톤월 항쟁을 기념해 매년 6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0년부터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Culture Festival)를 매년 6월에서 9월 사이 서울에서 개최하고 있다.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영화제인 퀴어영화제(Korea Queer Film Festival)도 퀴어문화축제와 함께 열리며 성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성결혼이 인정받기까지

이번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은 기존의 판례가 중요한 불문 법원을 따른다. 즉, 이번 판결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판결이 차곡차곡 모여 빚어낸 결과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인 로렌스 대 텍사스(Lawrence vs Texas) 사건은 동성애자 인권 향상과 동성결혼 합법화,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의 초석으로 평가된다. 1998년 9월 17일 텍사스 경찰은 무장 소란이 있다는 허위 신고를 받고 존 게데스 로렌스와 타이론 가너의 아파트에 침입했다. 경찰은 총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무단 침입에 항의하는 두 남성을 동성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텍사스 주의 ‘소도미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했다. 수 년에 걸친 항소 끝에 2003년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텍사스 주 ‘소도미법’이 특정 집단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03년 11월 18일, 매사추세츠 주 법원은 위 로린스 대 텍사스 사건의 판례에 따라 동성 간 결혼의 금지를 위헌으로 판결했고, 매사추세츠 주에서 동성결혼이 처음으로 합법화되었다. 매사추세츠 주를 시작으로 코네티컷 주(2008), 버몬트 주 (2009), 캘리포니아 주(2013) 등이 그 뒤를 이었고, 올해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워싱턴 D.C와 36개 주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되었다.

1996년 연방정부가 제정한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 규정하는 결혼보호법(the Defense of Marriage Act, 이하 약칭 DOMA) 때문에 동성결혼 부부는 배우자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배우자가 죽어도 재산 분할 등에 관여하지 못하고, 아이를 입양해도 실질적인 친부모가 되지 못했다.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결혼보호법 DOMA를 위헌으로 판결하며 동성 부부는 이성 부부와 마찬가지로 사회보장 급여와 세금감면, 연방 공무원 배우자의 건강보험 등 연방제도의 혜택과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결혼보호법 위헌 판결 이후 대법원은 주의 동성결혼 금지법 위헌 소송의 판결을 유보하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2014년, 미시간 등의 네 주에서 항소한 동성결혼 금지법 심리에서 결국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올해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주법은 위헌이며 동성결혼이 가능한 주에서 공증된 동성결혼을 모든 주에서 인정해야 한다고 결정하며 미국 전역에서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 되었다.

 

여전한 반대 여론... 앞으로의 이야기는

미국에서 법률적으로 동성결혼이 가능해졌지만, 동성애자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용인되고 있지는 않다. 대법원 최종 결정에서 9명의 대법관이 찬성 5명, 반대 4명으로 엇갈리기도 했다. 지난 3일, 켄터키 주의 법원서기가 동성커플에게 결혼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법정 구속되었다. 자신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옹호론이 만만치 않은 것을 고려하면, 아직 미국 내부에서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번 판결을 동성결혼을 지지해온 민주당과 보수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공화당의 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의 결정을 비판하는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보수의 결집을 유도해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것인지, 혹은 동성결혼 지지자들의 표를 얻은 민주당이 승리할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올해 미국의 결정이 성 소수자의 인권 역사에 어떤 서술을 남길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글 |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일러스트 | 김하경 기자

자료제공 | 배덕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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