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표식 Y, 퇴화의 기로에 서다

남성만이 가지고 있는 염색체, Y. Y 염색체는 성 결정 염색체라는 점과 더불어 유난히 작은 크기와 적은 유전자 수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한, 학계의 기존 예상과 달리 Y 염색체가 퇴화한 X 염색체임이 알려지며 Y 염색체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Y 염색체가 퇴화를 거듭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Y 염색체는 퇴화 중인가? Y 염색체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Y, 3억 년에 달하는 퇴화의 역사
Y 염색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대략 3억 년 전이다. 이 시기는 조류와 포유류의 분리가 일어나던 시기로, SRY 유전자를 비롯한 몇몇 주요 유전자는 이때부터 Y 염색체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자 수수무 오노의 진화 모델에 따르면 X 염색체 위의 유전자 중 남성을 결정하는 유전자 일부가 따로 떨어져 나와 Y 염색체가 탄생했다. 이 Y 염색체가 X 염색체와 짝을 이루며 재조합 없이 후손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상염색체에 있는 염색체 일부가 새로 유입되기도 했지만, 남성화와 관련 없는 유전자들이 사라지고 급격한 변화가 축적되며 Y 염색체는 빠르게 퇴화했다. 지금처럼 작은 크기가 아니었던 Y 염색체는 퇴화를 거치며 처음 가지고 있던 유전자의 3%만 남기고 극단적으로 짧은 모양이 되었다.

유전자를 잃을 수밖에 없는 Y 염색체
Y 염색체 퇴화에 동일한 염색체의 부재와 유전적 편승 현상이 큰 영향을 미친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X 염색체와 짝을 이루는 Y 염색체에서는 감수분열 시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나기 어렵다. 다른 Y 염색체와 유전자를 교환할 수 없으므로 오류 보완이 어렵다. 이로 인해 Y 염색체 위에 변형이 일어나면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해로운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경우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것밖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 그로 인해 Y 염색체는 유전자에 발생한 오류를 축적하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Y 염색체가 계속해서 유전자를 잃는 이유다.

Y 염색체에는 해로운 유전자의 편승이 쉬워
생물에게 이로운 유전자일수록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이로운 유전자 근처에 있는 유전자들이 함께 전달된다. 이런 현상을 유전적 편승(hitchhiking)이라 한다. 이 과정에서 해로운 유전자가 이로운 유전자에 편승해 해로운 유전자의 축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크기가 작은 Y 염색체에서는 이로운 유전자 근처에 해로운 돌연변이가 생겨 편승하기 쉽다. 즉, Y 염색체 위에는 해로운 유전자가 쌓이기 쉽다. 이로운 유전자와 해로운 유전자가 가까이 있는 경우 이로운 유전자의 확산과 해로운 유전자의 제거가 함께 억제되거나, 해로운 유전자와 함께 이로운 유전자까지 제거되기도 한다. 유전적 편승은 Y 염색체의 생존을 불리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두 성의 대립, 진화에 불리한 Y 염색체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이 대립하며 진화해왔다는 관점에서 Y 염색체 퇴화를 분석할 수도 있다. 각 개체는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유전자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는 이로우나 다른 개체 또는 염색체에는 해로운 유전자가 선택되기도 한다. 두 성 간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크다. 특히 X와 Y 염색체에는 한쪽 성에서는 유리하지만 다른쪽 성에서는 불리한 유전자가 선택되기 쉽다. 이런 현상을 성적 적대성이라 부른다. 성적 적대성에 의한 진화는 Y 염색체에 불리하다. 전체 유전자풀에서 Y 염색체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암컷은 XX, 수컷은 XY 염색체를 가지므로 유전자풀에서 X와 Y 염색체의 비율은 대략 3:1이다. 따라서 Y 염색체에 불리한 유전자의 수가 훨씬 많아진다.


인류 Y 염색체는 1000만년 후 사라진다는 주장 나와
이렇듯 Y 염색체의 역사가 퇴화의 역사임이 밝혀진 후 Y 염색체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설이 등장했다. Y 염색체는 지금도 계속해서 퇴화 중이며 머지않은 미래에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이른바 Y 염색체 퇴화론이다. 2002년 유전학자 제니퍼 그레이브스가 제기한 이 주장은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제니퍼 그레이브스는 지금까지 Y 염색체가 유전자를 잃어버린 속도를 계산해 Y 염색체 퇴화 시기를 예측했다. 계산에 의하면 인간의 Y 염색체는 대략 1000만 년 후 사라진다.
Y 염색체 퇴화론이 등장한 이후 Y 염색체의 퇴화에 대해 여러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퇴화론을 지지하는 연구결과와 부정하는 연구결과 모두 존재해, Y 염색체 퇴화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Y 염색체, 사라져도 큰 문제 없을 것으로 보여
Y 염색체 퇴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Y 염색체가 퇴화해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한다. X 염색체는 포유류 전반에 걸쳐 잘 보존되어 있다. 이에 비해 Y 염색체는 종에 따라, 가끔은 같은 종에서도 매우 다르다. 유대류의 경우, Y 염색체는 현미경으로 거의 관찰되지 않을 만큼 작다. 배아 성장 중 Y 염색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종도 있다.
또한, Y 염색체 위의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로 이동해 Y 염색체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Y 염색체 진화 과정을 고려해보면 가능성이 없는 주장은 아니다. 많은 유전자가 Y 염색체에서 다른 염색체로 옮겨간 것으로 보이기 때분이다. Y 염색체의 활성 유전자가 적다는 점도 이 주장의 가능성을 높인다. 퇴화론 지지자들은 Y 염색체의 주요 유전자가 다른 상염색체로 이동한다면 Y 염색체가 퇴화해도 상염색체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정상적인 정자 생성에 필요한 두 개의 유전자
지난해 1월 사이언스지에는 유전자 두 개만으로도 정상적인 정자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하와이주립대에서 발표한 이 연구는 Y 염색체 퇴화론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연구자들은 생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Y 염색체에 있는 두 유전자인 SRY와 EIF2S3Y 만으로도 정상적인 생쥐를 만드는 정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SRY 유전자는 성 결정에, EIF2S3Y 유전자는 정자 초기 생산에 관여한다고 알려졌다.(관련기사 본지 407호, <Y 염색체 퇴화론 1부: Y, X가 만들어낸 남성의 표식>)  인간은 EIF2S3Y와 매우 유사한 EIF1AY 유전자를 가진다. 기능 역시 비슷해,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Y 염색체가 두 개인 정자가 만들어지거나 무정자증이 나타난다. 이 연구결과는 SRY와 EIF2S3Y(또는 EIF1AY) 두 유전자만 다른 염색체로 이동한다면 Y 염색체 없이도 종이 정상적으로 번식하고 생존할 수 있음을 보인다.

이미 Y 염색체가 사라진 동물도 있어
실제로 Y 염색체가 퇴화해 사라진 동물이 있다는 점도 Y 염색체 퇴화론의 가능성을 높인다. 동유럽 두더지와 일본 쥐를 비롯한 몇몇 설치류의 수컷은 Y 염색체가 퇴화해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설치류들의 성 결정 과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종들은 Y 염색체 없이도 암수가 정상적인 생식을 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 Y 염색체가 사라진 동물의 예시는 Y 염색체 퇴화가 일부에서 우려하는 남성 멸종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퇴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이 예시를 바탕으로 앞으로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에서 Y 염색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생물 종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것이라 주장한다. 퇴화론 지지측은 Y 염색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성별의 사라짐이나 생식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성별이 생겨나는 과정이라 말한다.
 

2500만년 전 퇴화를 멈춘 Y 염색체
앞서 언급된 연구결과만으로 지구 상에서 Y 염색체가 사라질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Y 염색체 퇴화론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많기 때문이다. Y 염색체 퇴화론을 부정하는 많은 과학자에 의하면 Y 염색체는 앞으로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작년 4월에는 매사추세츠공대 화이트헤드 생명의학연구소 연구팀에서 Y 염색체의 퇴화가 2500만 년 전 이미 중단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Y 염색체가 탄생 이래 퇴화를 거듭해온 것은 사실이나, 현재는 퇴화가 멈추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포유류 8종의 Y 염색체 염기서열을 비교해 Y 염색체가 퇴화한 역사를 연구했다. 연구팀은 성을 결정하는 Y 염색체는 태반포유류와 유대류가 분리되기 직전인 약 1억 8000만 년 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Y 염색체의 첫 등장은 포유류와 조류가 분리된 3억 년 전이라는 기존의 주장과 대립하는 결과다. 연구에 의하면 첫 등장 이후 Y 염색체는 9000만 년 전까지 급속한 퇴화를 겪었다. 하지만 9000만 년 전 설치류와 영장류가 분리된 이래 영장류 Y 염색체 퇴화 속도는 급감했으며, 2500만 년 전부터 Y 염색체에서 사라진 유전자는 단 하나뿐이다. 퇴화론을 부정하는 연구자들은 이전의 퇴화속도와 비교했을 때 Y 염색체의 퇴화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또한, 앞으로 인간의 Y 염색체는 이 상태로 보존되리라 예측한다.

Y 염색체 위의 유전자, 생존에 꼭 필요해
일부 과학자는Y 염색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가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퇴화론을 부정하기도 한다. 아직 Y 염색체에 있는 모든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성 결정 유전자를 비롯해 종양 억제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뇌와 혈관에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 등이 Y 염색체 위에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연구자들은 정자의 생성 및 성숙, 수정 과정에서 정자의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역시 Y 염색체 위에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퇴화론 반대측에서는 이러한 유전자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라도 Y 염색체가 완전히 퇴화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또한, Y 염색체 위에 있는 유전자 중 12개는 X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와 상동 관계로, 짝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12개의 유전자는 감수분열 과정에서 Y 염색체가 X 염색체와 쌍을 이루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유전자를 통해 Y 염색체는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특히나 이 유전자들은 심장, 폐, 혈관에 중요한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로, 생존에도 중요하다.

X 염색체를 보완하는 Y 염색체
Y 염색체가 X 염색체를 보완하는 역할로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성의 두 X 염색체 중 하나는 불활성화된다. 이처럼 불활성화된 X 염색체를 바소체라 한다. 활성화된 X 염색체는 하나뿐이라는 점에서 언뜻 보기에 X 염색체 하나만으로도 생명이 유지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X 염색체를 하나만 가진 사람은 터너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앓는다. 터너증후군 환자는 신체적으로는 여성이나 발육부진 및 성 기능 상실 등의 장애를 겪는다.
터너증후군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소체에 있는 모든 유전자가 불활성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소체 유전자의 15~25%는 활성화되어 있다. 이에 X 염색체가 하나인 남성은 Y 염색체가 그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타났다. 실제 Y 염색체의 유전자 중 36개는 바소체에서 불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유전자와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경우 Y 염색체가 퇴화하면 정상적인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므로 Y 염색체가 완전히 퇴화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퇴화는 진화 과정의 일부일 뿐
데이비드 페이지를 비롯한 몇몇 유전학자들은 Y 염색체가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는 주장이 지나치게 과장된 시각이라 말한다. Y 염색체는 이미 자체적으로 퇴화를 막기 위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수분열 시 재조합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Y 염색체가 X 염색체라는 맞지 않는 짝을 가지고도 그 기능과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데이비드 페이지의 주장에 따르면 Y 염색체에서 퇴화는 유전자의 획득 및 보존과 마찬가지로 그저 염색체 변화 과정의 일부다.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Y 염색체 퇴화
앞서 이야기한 Y 염색체 퇴화론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Y 염색체의 미래에 관한 예측이다. 한편, 이와는 별개로 같은 종 안에서도 각각의 개체마다 Y 염색체의 보존 정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부계를 따라 그대로 전달되는 Y 염색체의 특성상 손실이 많이 일어난 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의 자손은 모두 손실이 심한 Y 염색체를 가지게 된다. 개체 수준에서 Y 염색체의 퇴화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Y 염색체가 소실이 일어나면 성의 결정이나 정자 생성, 종양 억제 등 Y 염색체가 가지는 중요한 유전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노화와 흡연이 Y 염색체 퇴화 가속시켜
Y 염색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개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Y 염색체의 변형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 인간 남성의 Y 염색체 퇴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스웨덴 웁살라대 연구팀이 6,014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노화와 흡연이 Y 염색체 소실(Loss of Chromosome Y, 이하 LOY)을 촉진한다.

연구 결과 70세 이하 남성의 LOY는 4.1%에 지나지 않지만 70세 이상 남성의 LOY는 15.4%에 달했으며, 나이가 많을수록 LOY 속도가 빨랐다. 즉, 노화가 진행될수록 세포 내 Y 염색체가 퇴화하는 것이다. 흡연 역시 LOY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흡연자의 LOY 속도는 비흡연자의 2.4~4.3배에 이르며, 흡연량이 많을수록 LOY가 촉진되었다. 또한, 연구자들은 담배를 끊은 사람의 LOY 속도가 다시 비흡연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흡연이 남성에게 더 위험한 이유, Y 염색체
그외에도 연구팀은 과체중, 고혈압, 당뇨, 운동습관 등 여러 요인을 살펴보았으나, 직접적으로 Y 염색체 퇴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명과 흡연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Y 염색체에는 수명과 암에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라며 이 연구는 흡연이 왜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위험한지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Y 염색체는 탄생 이래 진화 과정을 거치며 많은 유전자를 잃어버렸지만, 필수적인 유전자는 안전하게 보존했다. Y 염색체의 역사가 소멸로 마무리될지, 혹은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일반적인 염색체와 비교했을 때 특이하고 특별한 염색체인 만큼, 여전히 Y 염색체의 많은 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Y 염색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Y 염색체 퇴화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Y 염색체의 비밀이 밝혀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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