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노 가이거 - <유배중인 나의 왕>

병에 걸린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지만, 직접 겪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다만, 그 일을 이미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심정을 유추할 수는 있다. <유배중인 나의 왕>은 저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한 날들을 서술한 책으로, 치매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알츠하이머병을 바라보았다.
흔히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을 아이에 비유한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를 종종 일으키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행동을 바로잡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아이는 사회에서 사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배우며 성장하는 반면, 치매 환자는 이러한 능력을 잃으며 퇴보한다는 점이다. 치매를 앓으며 저자의 아버지는 자신이 지은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호소하는 등, 스스로도 이해 못 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처럼 치매 환자가 기억력 감퇴, 판단력 저하와 같은 증상을 앓아도 그의 가족은 환자를 돕고 곁에서 바라보는 일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저자는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았다고 회고한다. 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힘겨웠지만,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여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책에서 저자는 치매라는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아버지의 삶을 정리하고 기록하고자 했다. 사람의 일생은 수십 년의 시간에 걸쳐 쌓이기에, 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삶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분석하며 그의 성격, 가치관, 행동방식을 풀어 놓았다. 아버지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묘사에서, 아버지를 기억하고자 한 저자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고령화 시대에 들어서며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증가하고 있지만, 효과적인 치료법은 아직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책은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고마움과 위기의식을 동시에 일깨운다. <유배중인 나의 왕>은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만이 아니라 앞으로 고령화 시대에서 살아갈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또한, 원제 ‘유배중인 늙은 왕’에서 잘 드러나듯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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