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만화는 어린이에게 해롭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아이들은 만화를 통해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 또한, 만화의 새로운 포맷 ‘웹툰’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만화를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40년 동안 215개의 작품을 그린 한국 만화의 거장, 허영만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1970년대의 <독고탁>, 80년대의 <까치>, 최근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되었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까지 부모 세대부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그의 작품에서 한국 만화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컷에서 빠져나온 만화
만화는 컷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컷 안에서 인물이 행동하고 배경이 바뀌며 감정을 표현한다. 대형 캔버스에 확대된 원화에서 허영만의 만화적 표현과 속도감 있는 선, 세밀한 인물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허영만은 “만화는 소리 없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만화가는 감독이자 연출가의 역할을 맡아 액션, 속도, 감정 등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영만의 만화는 특히 의성어와 의태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현장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으며 역동적인 움직임과 냄새, 촉각까지 묘사되어있다. 그의 만화는 영화 콘티로 그대로 사용 가능할 정도로 연출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잡지 ‘영챔프’에 연재된 만화 <비트>는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국내 대중문화를 소재로 했다. 허영만은 <비트>의 속도감 있는 컷을 위해 감정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연출을 시도했고, 주인공의 반항심과 갈등을 오토바이와 삐삐를 통해 표현했다.

 

방대한 취재, 엄격한 고증
허영만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엄격한 취재와 고증이다. 칭기즈칸을 다룬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그리기 위해 허영만은 10여 년의 사전조사와 현장고증을 거쳤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식객>은 지역별 음식을 다루며 밥과 김치, 나물, 해산물 등 한식의 주메뉴를 하나씩 소개한다. 전시관에는 만화에 등장한 다양한 나물과 반찬이 전시되어있다. 허영만은 <식객>을 그리기 위해 전국 곳곳의 요리를 찾아가며 그 지역의 사람들을 만났다. 덕분에 <식객>은 음식에 대한 만화이자 사람에 대한 만화로 탄생할 수 있었다.

 

치밀한 스토리로 독자를 사로잡다
허영만은 종종 스토리 작가와 함께 만화를 그렸다. 80년대 후반부터 <오! 한강>, <미스터Q>, <타짜> 등 허영만의 히트작을 함께 만든 김세영 작가는 만화가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스토리 작가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또한, 국내의 대표적인 스토리 작가 노진수 작가와 <담배 한 개비>, <대머리 감독님>을, 무협으로 유명한 박하 작가와 <비트>를, 이호준 작가와 <식객>,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등의 작품을 낳았다. 스토리 작가와 협업으로 만들어진 그의 만화는 흡입력이 뛰어나다.
김세영 작가와 함께한 <오! 한강>은 1985년 말 국가안전기획부의 지시로 일종의 반공 만화로 시작했다. 하지만 허영만은 이념이나 정치적 색채보다 현실을 표현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해방 전후에서부터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지게 된 1987년 6월 항쟁까지 가난한 민중의 입장에서 한국 현대사를 다룬 이 작품은 80년대 대학생의 필독서가 되었다. 이렇듯 허영만은 오락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허영만의 만화’가 아니라 그가 만화를 창작하는 과정을 펼쳐 놓았다. 치밀한 취재에서 감정 연출까지 과정을 엿보며 진정한 거장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낸 허영만의 만화는 따뜻한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비춘다.

 

▲ 비트, 1994~1997년, 대원문화사 출판

 

▲ 미스터 손, 1989~1990년 만화왕국 연재, 요요코믹스 출판

 

 

 

사진 | 허영만전 사무국 제공
글 | 우윤지 기자

 

장소 | 한가람디자인미술관
기간 | 2015.04.29.~2015.07.19.
요금 | 12,000원
시간 | 11:00 ~ 20:00
문의 | 070) 7533-8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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