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X가 만들어낸 남성의 표식

스물세 쌍의 인간 염색체 중, 특이한 염색체 한 쌍이 있다. 바로 성염색체 X와 Y다. 한 쌍이라 보기에 그 크기와 모양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두 염색체는 생물의 성 결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익히 알려졌듯, Y 염색체는 남성만이 가지고 있는 염색체다. 일반적으로 성염색체라고 하면 X와 Y 염색체를 떠올리지만, 이 두 염색체가 성염색체 전부는 아니다. X와 Y 염색체는 포유류와 같이 성 결정이 수컷에 의해 이루어지는 생물의 성염색체를 일컫는다. 이와 반대로 조류나 일부 파충류, 양서류 등 암컷에 의해 성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 성염색체는 Z와 W라고 불린다.

Y 염색체는 미국의 과학자 네티 스티븐스가 1905년에 처음으로 발견했다. Y 염색체를 발견하기 전까지 생물학자들은 성별이 생물의 수정 당시나 배아 발달 초기의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다. 실제로 일부 거북이나 악어가 부화 당시 온도 등 환경에 의해 성별이 좌우됨이 밝혀져 그러한 가설이 더욱 힘을 얻었다.
염색체가 성 결정 및 유전적 물질 전달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말에서야 등장했다. 1891년 헤르만 헤킹은 곤충의 정자 형성 시 세포분열을 관찰하던 중 만들어지는 정자의 절반 정도에만 전달되는 특별한 염색체를 발견했다. 그는 이 염색체에 미지의 부분이라는 의미로 ‘X’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후로 많은 과학자가 X 염색체가 남성을 결정하는 추가적인 염색체라고 믿으며 다른 생명체에서도 수컷을 결정하는 X 염색체를 찾기 시작했다.
네티 스티븐스는 풍뎅이의 염색체 연구를 통해 이전의 잘못된 추론을 바로잡았다. 네티 스티븐스는 암컷 풍뎅이에는 큰 염색체 스무 개, 수컷 풍뎅이에는 큰 염색체 열아홉 개와 작은 염색체 한 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크기가 작아 이전까지 발견하지 못한 염색체였다. 네티 스티븐스는 이어진 연구를 통해 그 작은 염색체가 남성을 결정하는 염색체였으며, 헤르만 헤킹이 발견한 염색체 X는 오히려 여성을 결정하는 인자임을 밝혀냈다. 새로 발견된 작은 염색체는 알파벳 순서에 따라 Y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인간의 성 역시 같은 염색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더 지나서야 밝혀졌다.

사람의 Y 염색체는 사람 염색체 중 세 번째로 작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개수 역시 78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 실제로 활성화되는 유전자는 겨우 40여 개다. 이러한 Y 염색체가 어떻게 전체 염색체 중 7번째로 클뿐더러 지니고 있는 유전자는 2,000여 개에 달하는 X 염색체와 쌍을 이루게 된 것일까?
Y 염색체는 X 염색체가 퇴화한 형태라고 여겨진다. 이는 1960년대 일본 생물학자 수수무 오노가 처음 제기했다. 수수무 오노는 암컷 포유류의 세포 감수분열을 관찰했다. 그는 감수분열 시 암컷에게 있는 두 개의 X 염색체가 교차를 일으키는 등 다른 상염색체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컷의 경우 감수분열에서 작은 Y 염색체는 따로 떨어져 있다. 원시적인 동물의 성염색체를 관찰한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수수무 오노는 진화의 초기 단계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성염색체의 차이가 작아짐을 발견했다. 염색체의 크기가 비슷해졌을 뿐만 아니라 두 성염색체가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X와 Y 염색체는 공통 조상에서 비롯되었으나 X 염색체가 원형을 거의 보존한 데 비해 Y 염색체는 남성 결정에 특화된 형태로 퇴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Y 염색체상의 유전자 중에는 아직 그 역할이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남성에게만 존재하는 염색체인 만큼, 성 결정이나 성 분화, 정자의 성숙이나 행동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세기 동안 동물류 전반에서 Y 염색체가 남성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과학자들은 모든 포유류의 Y 염색체 위에 똑같은 남성 결정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현재까지 그 기능이 밝혀진 Y 염색체 위의 유전자 중 생물의 성 결정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SRY 유전자(Sex-determining Region Y)다. 포유류의 경우 배 발생 과정에서 배아는 기본적으로 암컷의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Y 염색체에서 SRY 유전자가 발현되면 배아가 수컷의 형태로 바뀐다. 호주의 여성 과학자 제니 그레이브스는 SRY와 아주 흡사한 유전자가 포유류의 X 염색체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Sox3이라 명명된 이 유전자는 중추 신경계 및 뇌하수체 발달에 관여한다. 2010년에는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SRY 유전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는 Y 염색체가 X 염색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지지하는 또 다른 증거다.

Y 염색체는 남성을 통해 전달된다. 따라서 아들이 가진 Y 염색체는 아버지의 것과 완전히 같다. 또한, Y 염색체는 다른 염색체와 달리 상동염색체가 없다. X 염색체와 짝을 이루고는 있지만 같은 종류의 염색체가 아닐뿐더러 두 염색체 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감수분열 과정에서 유전자 재조합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발생한 변이가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의 것과 교환되지 않고 계속 축적된다. 즉, 어떤 사람의 Y 염색체 위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면 그 후손은 모두 같은 돌연변이를 가진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인류 최초의 남성, 아담을 찾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아담은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류이자 남성이다. 아담이 실존한다면 현재 남성 인류가 가진 모든 Y 염색체는 그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즉, 아담의 Y 염색체가 가졌던 변이를 세계 모든 남성들이 갖고 있다. 2005년, 스펜서 웰스 박사는 부계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Y 염색체를 분석해 인간 Y 염색체의 기원을 찾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집단의 Y 염색체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 변이의 발생 시점을 찾아냄으로써 Y 염색체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갔다. 염색체의 변이를 측정해 인류의 기원을 찾는 이 연구를 제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라고 한다. 연구팀은 5년간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담이 6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던 한 남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성과 여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수수께끼였다. 성경 속 아담과 이브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에서 비롯되었으며, 남성은 여성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Y 염색체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관련된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지며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이 믿어온 것과 달리, 아담은 이브로부터 탄생했다. 남성을 결정하는 Y 염색체는 거대한 X 염색체가 퇴화해 꼭 필요한 부분만 남은 결과물이었다. X에서 분리된 Y 염색체는 어떤 과정을 거쳐 퇴화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Y 염색체는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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