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헌장 800주년 : 인권은 진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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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헌장 800주년 : 인권은 진보한다
  • 박지현 기자
  • 승인 2015.03.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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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大憲章)’이 제정된 지 800년을 맞이했다. 대헌장은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이 귀족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며 서명한 문서로 민주주의의 시초가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왕 역시 법 아래에 있다는 대헌장의 정신을 이후 영국의 권리청원, 권리장전이 계승해 의회정치의 토대를 닦았고 영국은 세계 최초로 근대국가의 반열에 들어선다. 이는 다시 프랑스 등 주변 국가와 미국에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인권’은 현재의 개념에 가깝게 점차 세부 형태를 잡기 시작한다. 13세기 대헌장에서 시작하여,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20세기 세계인권선언까지 인류사에 격동을 불러일으킨 사건과 그 결과에 대해 알아보자.


‘귀족’을 위한 문서, 대헌장
의회정치와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대헌장은 사실 당시에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1199년부터 1216년까지 잉글랜드를 통치한 존 왕은 프랑스와 영토 분쟁을 위해 귀족과 도시에 많은 세금을 매긴다. 하지만 존 왕은 프랑스와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노르망디 영토 대부분을 빼앗기고 만다. 이에 귀족들은 ‘충성 포기 선언’을 하며 존 왕은 궁지에 몰고, 존 왕은 귀족 대표들을 만나 요구하는 바를 따르겠다고 약조한다.
1215년 존 왕과 귀족들이 템스 강 유역 러니미드 초원에서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구두 합의를 맺는다. 이때 귀족들의 요구를 문서화 한 것이 바로 ‘대헌장’이다. 최초 귀족들의 요구에서 수정을 거쳐 존 왕의 아들 헨리 3세의 집권기인 1217년에 정식 제정된다. 대헌장은 1217년에 실제로 제정되었지만, 기초가 세워진 1215년에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헌장, 인권의 초석이 되다
대헌장에서 정의하는 자유민은 봉건 계층과 거주 및 이주의 자유가 있는 일부 평민을 뜻한다. 전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농노와는 관련이 없었다. 또한, 조항에 명시된 귀족의 권리 역시 대헌장 전후로 확대되었다기보다 이전까지 누리던 관습적인 권리를 재확인한 것에 가깝다. 대헌장은 원래 성직자와 귀족, 봉건 제후를 상대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한 칙허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대헌장의 가치를 낮추지는 않는다. 우리 학교 인문사회과학과 박현석 교수는 “대헌장은 본래 봉건 영주가 누리는 권한을 보장하는 문서였다”라며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왕의 권한을 약화하고 의회의 성립과 인권 신장에 영향을 미쳤다”라고 대헌장의 의의를 설명했다.
후대 사람들의 해석을 거쳐, 대헌장은 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한 문서로 취급받고 있다. 현재, 의회의 승인 없이는 세금을 걷지 못한다고 규정한 대헌장의 제12조는 징세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유민은 재판이나 국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체포, 구금할 수 없다고 명시한 제39조 역시 중요하다. 당시의 자유민은 제한된 계층이었지만 이 조항은 이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규정한 법전들에 영향을 끼쳤다. 인권선언으로서 대헌장의 가치를 잘 나타내는 조항이다.


권리장전 위에 세워진 입헌군주제
대헌장에서 시작한 인권의 태동은 유럽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근대부터 영국의 권리장전, 프랑스 인권선언, 미국의 권리장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등이 차례로 발표된다.
영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대헌장, 권리 청원(Petition of Rights)과 더불어 영국 헌법의 토대로 여겨진다.
17세기의 잉글랜드 왕, 제임스 2세는 상비군을 모집해 반란 진압에 이용하기도 하고 가톨릭 신자를 중용해 영국 국교를 탄압하며 의회의 반발을 산다. 이에 의회는 제임스 2세를 축출한다. 그리고 1689년, 의회는 윌리엄 3세와 제임스 2세의 딸 메리 여왕에게 왕위를 잇는 조건으로 권리장전을 승인케 한다. 권리장전은 서두에 제임스 2세의 위법 행위를 제시하고 13개 항에 걸쳐 국왕은 절대 권력이 아니며, 의회의 승인 없이 법의 정지, 군대의 징집 등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권리장전은 의회가 요구한 사항을 성문화해 ‘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입헌군주제 시작의 경종을 울렸다.


프랑스 혁명, 기본권을 선언하다
18세기 후반까지 프랑스는 절대왕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귀족, 성직자와 같은 특권 계층은 넓은 토지를 독차지하고 면세의 혜택까지 누렸다. 이들의 횡포에 참지 못한 프랑스 시민들은 1789년, 자유와 평등을 내세우며 혁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1789년 8월 26일 헌법 제정 국민의회에 의해 프랑스 인권선언인 인간 및 시민의 권리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이 채택된다. 프랑스 인권 선언의 제1조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내용을, 제2조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는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억압에 맞설 권리 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선언은 인간의 기본권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데 큰 가치가 있다. 세계사에서 인권의 개념이 프랑스 혁명의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주변 국가와 이후 인권 신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권을 보장하고, 그를 위한 권력 규정이 헌법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상이 확립되며 이후 많은 국가의 헌법에 인권선언이 들어가게 되었다.


국가의 간섭을 축소한 미국의 권리장전
미국은 대헌장을 자유와 권리의 주춧돌로 여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과 권리장전도 대헌장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원래 권리장전이란 인간의 권리를 천명한 헌장 혹은 법률을 가리킨다. 미국의 권리장전은 미국 헌법 최초 10개의 수정 조안을 의미하는데, 정부의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미국의 권리장전은 1791년 12월 25일 헌법에 보장되지 않은 세부적인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제임스 매디슨의 주도하에 제정되었다. 수정 헌법 제1조는 미국인이 자주 인용하는 조항으로 종교의 자유, 언론 및 출판의 자유, 집회 및 청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수정 제2조에는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수정 제9조는 ‘헌법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권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수정 제10조는 헌법에서 금지되지 않은 권한은 주 정부에 위임한다는 내용으로 연방 정부의 간섭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의 권리장전은 미국인들의 실제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인권을 국제적으로 명시하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나치즘 경험 이후, 세계가 인정하는 인권선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졌다. 그리하여 인권에 관한 세계 선언문인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다. 세계인권선언은 사실상 조약이 아니어서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인권을 국제적으로 보장한 권위 있는 문서로 여겨지며 규범적 효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세계 여러 국가의 헌법 제정에 표준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비록 대헌장은 소수 계층의 권리 보호를 위해 제정되었지만, 훗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확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또한, 권리 보호의 대상은 귀족에서 국가의 모든 구성원으로 확대되었다. 대헌장은 영국 헌법, 프랑스 인권선언, 세계인권선언 등에서 명시하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의 뿌리로 오늘날에도 생생히 숨 쉬고 있다.
한편으로 기억할 것은, 분명 과거보다는 진보했지만, 세계의 인권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는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이기 때문에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대헌장의 정신을 인권의 햇볕이 들지 않는 변두리 지역까지 퍼뜨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박지현 기자

pajihu311@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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