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랑]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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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랑] 자화상
  • 김하정 기자
  • 승인 2015.03.1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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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의도적 나열, 자전소설의 틀을 깨다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말로 내뱉기도 하고, 독창적인 글로 남기기도 하며 가끔은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는 나만의 생각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사진작가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에두아르 르베가 내뱉은, 혹은 내뱉지 않은 생각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놓은 책이다. 자전적 소설이자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충격을 준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조금 당황스럽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문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문장들은 내러티브 없이 그저 흘러간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고, 문장을 의식의 흐름을 따라 그저 나열했다. 그래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연관성이 없어서 자유롭다는 느낌도 든다.
평범한 자서전은 사람을 세밀하게 그린 캐리커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남들에게 말하고 싶은 부분을 길고 자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수천 개의 점이 모여 사람을 표현한 점묘화다. 의도적으로 구성하지 않았지만, 에두아르 르베의 생각이 담긴 문장이 모이자 그를 표현하는 책이 되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우리 머릿속에 에두아르 르베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책을 덮을 때면 그를 전혀 만난 적 없더라도 그와 어느새 친해진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에두아르 르베는 4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자전적 소설 <자화상>에서 우리는 에두아르 르베의 기억을 더듬고, 그의 생각을 읽으며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에두아르 르베와 공유한 시간과 공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주석을 보더라도 그의 문장을 완벽히 이해하고 뉘앙스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의 생각을 읽으며 우리는 나름의 기억을 떠올리고, 화자를 재구성하며, 새로운 생각의 싹을 틔운다. 멋진 문장, 거대한 서사구조가 필요하지 않다. 당신도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처럼 당신의 기억과 인생을 글로 남겨보는 것은 어떨까.


김하정 기자

hajung0206@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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