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5.17 수 16:23
시작페이지로 설정즐겨찾기 추가
 
> 뉴스 > 사람
     
우리 학교 1호 박사 기계과 양동열 교수
[402호] 2015년 03월 03일 (화) 박건희 기자 toonivas@kaist.ac.kr

지난달 진행된 학위수여식에서 우리 학교 출신 10,000번째 박사가 배출되었다. 우리 학교 출신 만여 명의 박사들은 세계 곳곳에서 이공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44년간 배출되어온 박사들의 시작은 바로 우리 학교 기계공학전공양동열 교수이다. 우리 학교 1호 박사 양동열 교수를 만나 44년 전 우리 학교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 양동열 교수/양동열 교수 제공
주변의 기대가 컸을텐데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해외로나가 학위를 따는 체계적인 인프라가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희가 우리나라만의 새 시스템으로 배출된 첫 박사였지요. 자연스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저 스스로 박차를 가하는데 도움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명이 넘는 후배가 우리나라곳곳에서 많은 역할을 잘수행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당시의 부담감이 모두 보상받는기분입니다.

당시의 대학원은 지금과 어떻게 달랐는지
실험 장치가 제대로 구비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장비를 미국에서 수입하거나, 저와 동료들이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실험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은제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밟을 시기까지 이어졌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반면에 지금의 대학원은 설비가 모두 갖추어져 있어서 이러한 노력을 들일필요가 없습니다.

당시 학교의 모습은
저는 홍릉 캠퍼스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습니다. 제 동기들도 정원이 100여 명이 채 되지 않아 서로 모두 알고 지냈습니다. 또, 건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강의실이 없어서KIST의 시설을 빌려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기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당시에는 우리나라 이공계의 교육 시스템이 부실했기 때문에, 이를해소하고자 대부분의 동기들이 교수가 되었습니다. 저희 기수 이후로도몇 년간 대부분의 졸업생이 산업체가아닌 교수로 진로를 향했습니다.

선배가 없어서 불편했던 점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설비를 처음설치해야한다는 점도 불편했지만, 무엇보다도 진로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점이 불편했습니다. 때문에 스스로 문헌을 찾아보거나, 다른 기관을 방문해 조사를 하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그러한 노력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해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도움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여 명의 후배들을 보고있는 심경은 어떤지
우리나라 이공계에서 우리 학교졸업생들을 빼고는 이야기가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후배가 곳곳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자부심을 가지고 정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연구 능력은매우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요즘은 융복합 학문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는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면 좋겠습니다.
박건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카이스트신문(http://times.kaist.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대전 유성구 대학로 291 KAIST 교양분관 1층 카이스트신문사 | Tel 042-350-2243
발행인 신성철 | 주간 김동주 | 편집장 이상현
Copyright 2010-2016 카이스트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kaisttim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