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책] 이다 - 의도적인 여백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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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책] 이다 - 의도적인 여백의 미학
  • 우윤지 기자
  • 승인 2015.03.0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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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뿌리’는 인생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올해 오스카상을 받은 폴란드 감독 파벨포리코브스키의 흑백영화 <이다>는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란 ‘안나’는 수녀가 되기 직전, 유일한 혈육인 이모 ‘완다’의 존재를 알고 이모를 찾아간다. 하지만 이모는 ‘안나’가 사실은 유대인이며 본명은 ‘이다’라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녀는 혼란에 빠진다.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진 이다는 완다와 함께 부모의 시신을 찾으러 나선다. 영화는 장소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일종의 로드무비로 전개된다.
완다는 공산정권이었던 폴란드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였던 자신의 과거를 잊기 위해 쾌락만을 갈구하는 삶을 살아왔다. 자신을 창녀로, 이다를 성녀로 비유하는 완다와 무뚝뚝한 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가족이 만나 교감하는 내용은 조금 흔한 소재지만, <이다>는 2차 세계대전으로 가족을 잃은 유대인이라는 상실감으로 두 사람을 엮어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다의 부모와 완다의 아들이 단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오랜 시간 외면해왔던 진실이 밝혀진 순간, 그들은 오열하기보다 묵묵히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의 캐릭터가 다소 방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의 특징인 ‘여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행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이다가 고민하는 사이, 완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완다의 장례를 치르고, 이다는 수녀복을 벗고 머리를 풀어내리며 완다의 하이힐을 신는다. 여행 중에 만난 남자와 사랑을 나눈 이다는 평범한 삶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리고 그 후에는?’이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윽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이다가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이다>에서는 손으로 들고 촬영하는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카메라를 세워놓은 채로 장면을 진행한다. 그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프레임의 중심에 서지 않으며 좌, 우로 치우치기 일쑤다. 이러한 관점은 캐릭터들을 화면 밖에서 관찰하는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지 못하고,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다와 완다를 암시하기도 한다. 단 한 번, 에필로그에서 이다가 중심에서 걸어 나오며 자신의 결정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어떤 삶을 선택할지를 감독은 말해주지 않지만, 관객은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투명한 눈빛의 이다와 비애 어린 카리스마의 완다가 인상적인 영화 <이다>는 여백이 가득하다. 여행에서 이다는 자신이 수녀원에서 쌓아 올린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받는다. 그 과정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보여주며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흔히 생각하는 불친절한 예술영화는 아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민족적 측면에서 영화 <이다>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윤지 기자

snailhorn@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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