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밝혀지고 있는 미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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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밝혀지고 있는 미지의 세계
  • 심혜린 기자
  • 승인 2015.03.03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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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솔 기자

기억이란 무엇일까? 최근, 오랜 기간 논쟁거리로 남아 있던 기억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뇌 속에서 장소와 관련된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인 장소세포와 격자세포의 발견자들에게 돌아갔다. 뇌의 많은 영역이 기억과 연관되어 있으며, 특히 해마가 기억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이 지니는 중요성에 비해 기억에 대해 밝혀져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저장될까?

 

▲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우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다가 그에 반하는 상황을 발견했을 때 인지한다 / ⓒ 신진솔 기자

기억이 갖는 여러 가지 의미
유전자 수준의 기억은 유전물질에서 정보가 수집되어 저장되는 과정이다. 세포 수준의 기억은 세포의 분열 제한 횟수를 결정하는 DNA 서열인 텔로미어의 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기억은 개체 수준의 기억을 뜻하며,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에서 의미하는 개체 수준의 기억은 운동능력과 같은 무의식적 기억 역시 포함한다.

여러 단계를 거쳐 기억을 저장해
개체 수준의 기억은 부호화, 응고, 인출 세 단계로 나뉜다. 부호화란 주의, 관심, 반복 등을 통해 사건, 대상, 감각 등 특정 정보를 저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은 먼저 정보의 부호화를 거쳐 저장된다. 저장된 기억은 응고화 과정을 통해 확고하게 형성된다. 마지막으로 저장된 기억을 상기해내는 과정이 인출이다. 기억 인출 방법에는 회상(recall)과 재인(recognition)이 있다. 원하는 내용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을 회상, 주어진 자극이 이전에 받은 자극과 같은지 판단하는 것을 재인이라고 한다.

기억의 핵심은 시냅스 간 연결
응고화의 가장 중요한 단계는 시냅스 응고화다. 시냅스 응고화는 단백질의 합성과 장기증강현상(Long-term potentiation, LTP)을 거친다. 장기증강현상은 시냅스 간 연결이 강해져 신경 전달 효율이 향상하는 현상이다. 장기증강현상이 일어나면 특정 경로에서 전기적 활동이 활발해져 몇 시간에서 몇 주 동안 시냅스의 효율이 오른다. 특히 뇌 안의 해마에서 일어나는 장기증강은 장기기억을 처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기증강현상에 문제가 생긴 동물은 학습할 때 장애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장기증강과는 반대로 장기간 시냅스의 효율성을 낮추는 현상을 장기억압현상(Long-term depression, LTD)이라고 부른다. 장기증강과 장기억압은 기억의 유지와 소실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억마다 처리되는 장소가 달라
‘기억’이 저장되고, 보존되며, 잊히고 떠오르는 작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 기억상실증 환자나 뇌 절제술을 받은 환자를 연구한 결과 많은 것이 밝혀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간질 치료로 양측 측두엽 절제 시술을 받았던 환자 H. M.에 대한 연구다. 시술 이후 H. M.은 새로운 사실을 기억하거나 서로 다른 일 사이의 관련성을 찾아내는 일을 할 수 없었지만, 기술이나 운동은 배울 수 있었다. 기억상실증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과학자들은 기억이 종류나 과정에 따라 다양한 장소에서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세포에 저장된 기억
뇌에서 정보 전달은 신경세포가 서로 전기 신호를 전달해 일어난다. 따라서 외부에서 전기적 자극을 가해 세포를 활성화할 수 있고, 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관찰해 세포의 반응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 한 예로 특정 뇌세포에 전기 자극을 주면 기억이 떠오르게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간질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 밝혀졌다. 뇌세포에 전기 자극을 가하자 환자들은 특정 기억과 당시 자신이 느낀 감각까지 떠올렸다. 그 외에도 특정 자극이나 기억에만 반응한다는 세포가 존재한다는 것도 밝혀졌다. 그렇지만 그 세포를 없앴을 때 관련 기억이 제거되지는 않았다. 이는 기억이 오직 세포 하나에만 저장된 것은 아니며, 같은 기억이 여러 곳에 동시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마와 내비피질이 공간을 기억해
해마에는 특정 장소에서 활성화되는 장소세포가 있다. 장소세포는 우리가 겪은 장소마다 전기신호를 만들어 정보를 기록한다. 또한, 여러 장소세포가 협력해 넓은 장소를 인식하기도 한다. 격자세포는 장소세포보다 좀더 넓은 공간에 대한 기억을 처리하는 세포다. 즉, 장소세포가 창의학습관, 대강당, 교양분관 등 작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처리한다면 격자세포는 KAIST처럼 넓은 공간에 대한 정보를 처리한다. 해마 옆의 내비피질(entorhinal cortex)에 있는 격자세포는 해마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현재 학계는 격자세포가 인식한 공간의 좌표를 해마로 보내면 장소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기억의 본질은 뇌세포 간 전기 신호
기억이 세포에 저장된다고 해서, 벽돌이 쌓이듯 세포 안에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신경세포들이 전기 신호를 조절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이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기억을 저장하거나 인출하려면 뇌세포가 전기 신호의 세기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쥐의 뇌세포를 자극해 공포기억을 생성하고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즉, 기억은 뇌세포가 주고받는 전기 신호다.

기억에 관한 연구가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기억의 형성, 장소, 회상 등 많은 부분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기억의 핵심적 장소인 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기억에 대한 연구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기억의 비밀이 밝혀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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