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카이스트 문학상] 시나리오 부문 당선작 / 무너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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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카이스트 문학상] 시나리오 부문 당선작 / 무너짐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5.02.1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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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짐>

지식서비스공학과 권호창


Prologue
진석의 클로즈업된 얼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다.
오토바이에 타고 있는 진석. 뒤에는 유미가 타고 있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폐허 같은 용산 거리로 들어선다. 오토바이를 타고 진눈깨비가 내리는 스산한 용산 거리를 배회하는 두 사람.
철거가 진행 중인 흉물스러운 건물들 너머 고층 고급 아파트가 보인다. 어딘가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덮으며 타이틀 <무너짐>.


S#01. 용산 거리, 낮
‘공사 중 출입금지’ 철판으로 둘러쳐진 어지러운 골목 사이를 진석과 유미가 걷고 있다.
유미 : 우와~ 죽이는데? 여기가 오빠 살던 데야?
진석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신기한 듯 둘러보는 유미. 짙은 화장을 했지만 한눈에도 진석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인다. 진석은 유미를 신경 쓰지 않고 어딘가로 빠르게 걸어간다.
유미 : 오빠, 같이 가~~
낡은 아파트로 들어서는 진석과 유미. 아파트 외벽에는 곳곳에 붉은 색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철거’가 적혀 있다.
유미 : 여기가 오빠 집이야? 나도 이런 데 살았었는데...


S#02. 아파트 안, 낮
난장판이 된 반지하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는 진석, 뭐가 신났는지 유미는 장난을 치며 뒤따라 들어온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진석, 안방 문을 열어보니 휑한 모습이다. 작은방을 열어보려 하지만 방문은 열리지 않는다.

유미 : 왜? 안 열려?
거실 한 구석에 서서 진석은 핸드폰을 꺼내든다. 망설이는 듯 번호를 누르는 진석.
진석 : 어, 나야...
진수 : 야 이 새끼야, 너 어디서 뭐하다 이제 나타난 거야?
진석 : 어... 어... 그게 아니고,
진수 : 넌 뭔 생각하고 사는 새끼야,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진석 : 아, 좀 소리 좀 지르지 마.
진수 : 너 이 새끼야,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나 한 거야?
진석 : 아 진짜, 소리 좀 지르지 말라고, 나도 말 좀 하자.
진수 : 야 이 새끼야, 언제 사람 될 거야? 어?
짜증난 진석은 진수의 말을 듣다 말고 핸드폰을 확 접는다.
진석 : 이 새끼는 사람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해. 지 밖에 모르는 새끼가...
유미 : 오빠 형? 원래 그래?
유미가 난장판인 거실 바닥에서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묻는다. 유미의 손에는 오른쪽 날개가 부러진 금박의 새 모형이 들려있다. 물끄러미 새 모형을 바라보던 진석은 뭔가가 떠오른듯하지만 이내 머리가 아파온다.
유미 : (새 모형을 휙 집어던지며) 배고프다. 나가서 맛있는 거 먹자.

S#03. 용산 거리, 낮
아파트를 나오는 진석과 유미.
걸어가는 두 사람 뒤로 괴이한 가면을 쓴 꼬마 둘이 따른다. 한 녀석은 해머를 바닥에 끌고 가고 있고, 또 다른 녀석은 부탄가스를 들고 있다.

S#04. 철거민 대책위 사무실 앞, 낮
진석과 유미, 철대위 사무실 앞을 지나친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무실에 있다가 지나가는 두 사람을 발견한다.
아줌마1 : 저기, 저, 진석이 아냐? 맞지?
아저씨1 : 누구? 위원장 둘째아들?
아저씨2 : 어? 저 새끼 또 왔네, 저 새끼가 왜 자꾸 여길...
아저씨1 : 어이, 이 새끼야, 여좀봐.

돌아보는 진석과 유미
유미 : 누구야? 오빠 아는 사람들이야?
아저씨1 : 여긴 왜 다시 기어들어 온 거야?
진석, 아저씨들 앞으로 엉기적거리며 다가가 건성으로 인사하며,
진석 : 혹시, 우리 집이...
아저씨2 : 야 이 호로새끼야, 한 몫 잡았다더니, 살 만하냐?
진석 : 예??
아줌마2 : 그 때, 저 새끼가 그런 거 맞지? 그 때 진수엄마가...,
아줌마1 : 근데 혹시 그날 이후로 위원장 소식 들은 사람은 있는가?
아저씨3 : 여 주위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고, 들리는 소문이야 많지.
진석은 ‘엄마 애긴가?’ 하며,
진석 : 혹시 우리 엄마...
아저씨1 : 꺼져, 이 새끼야, 여가 어디라고 자꾸 돌아다녀? 너 이 동네에서 또 보이면 죽을 줄 알아.
분위기가 험악해지려고 하는데, 저만치 있던 유미가 소리친다.
유미 : 오빠!! (갑작스러운 소리에 모두가 유미를 돌아본다) 나 배고프다고! 밥 안 먹을 거야?

S#05. 정화식당, 낮
공사가 진행 중인 폐허 한 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정화식당. 진석은 철망을 넘어 정화식당으로 들어가는데 뒤따르던 유미가 투덜거린다.
유미 : (짜증을 내며) 여기 갈 거야? 나 와퍼 먹고 싶은데.
정화식당으로 들어선 진석과 유미. 을씨년스러운 외관과 다르게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남루하고 무표정한 노가다 아저씨들 예닐곱이 두 개의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다.
진석 : (카운터 쪽을 둘러보며) 정화 아줌마! 정화 아줌마!
식당 여자 : 네... 네! 앉으세요. 뭐 드릴까?
진석 : (당황한 듯) 여기 주인아줌마 안 계세요?
식당 여자 : 예? 내가 몇 달 전에 인수했는데... 뭐? 식사 하실 라고?

테이블에 앉아 건성으로 설렁탕을 먹는 진석과 유미. 진석의 목걸이가 국에 빠지려 하자,
유미 : (목걸이를 옷 안으로 넣어주며) 오빠, 빠지겠다. 조심해서 먹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식당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창수 : 아줌마, 여기 우리 애들 밥 좀 먹입시다.
식당 여자 : 아이, 부장님~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오셨네.
창수 : 아, 이제 여기도 디자인 서울 중심인데 인테리어가 이게 뭐야. 이래갖고 돈이 되겠어?
식당 여자 : 금방 빠질 건데요, 뭐.
진석이 소란스러운 쪽을 보는데, 창수다. 창수도 진석을 발견하고 테이블로 다가온다.
창수 : 아, 이게 누구야? 진석이네. 저쪽에 안보이던 바이크가 있다 했더니만 너였냐?
진석 : 그러게, 오랜만이네. 재내는 니가 데리고 다니는 애들이냐?
창수 :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식구가 느니까 이래저래 애로사항이 많다. 돈 들어가는데도 많고. 얘들아, 인사해라. 형 친구~

저쪽에서 밥을 먹던 용역들이 엉거주춤 인사한다.
진석 : 창수 많이 컸네.
창수 : 이게 다 니 덕분 아니겠냐.
진석 : (무슨 말인가 싶어) 뭐??
창수 : 근데, 너 여긴 웬일이냐?
진석 : 아니, 난 그냥... 아니, 너 혹시 우리 엄마 소식 들은 거 있냐?
창수 : 니네 엄마? 어... 글쎄? 난 모르지.
창수는 갑자기 좋지 않은 기억이 스치는 듯 양미간을 좁힌다.
창수 : 니네 엄마도 참 그래? 왜 일을 그렇게 만들었냐고. 니네 엄마가 진석이 니 반만큼만 똑똑했어도... 그림이 참 아름답지 않았겠어? 그 때 니가 잘 해서 너도 지금 저렇게 스타일 쫙 빠진 오토바이도 몰 수 있고, 얼마나 아름다워?
진석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진석 : 뭔 소리야?
창수 : 왜 이래, 갑자기? 하긴, 그 땐 나도 깜짝 놀랬다, 입만 열면 의리, 의리 하던 놈이...
진석 : 내가 뭘? 그리고, 니가 의리를 알아? 양아치 새끼가...

창수 : 이 새끼가..,
창수, 욱하다가 이내 실실거리며,
창수 : 내 이쪽 업계에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모진 일도 하고 다니지만, 난 그래도 쪽팔린 건 안다, (표정을 싹 바꾸며) 이 개새끼야. (용역들 쪽을 바라보며) 얘들아 밥 다 먹었으면, 나가자.
낄낄거리며 나가는 창수와 마저 다 먹지 못한 용역 무리들의 아쉬운 얼굴.


S#06. 정화식당 앞 공터, 낮
식당에서 나온 진석과 유미. 진석에게 갑자기 이상한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다. 주저앉아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는 진석.
유미 : 오빠 또 그래?
유미는 얼른 주저앉은 진석 뒤로 다가가 양 손으로 진석의 귀 막은 손을 덮어준다.
유미 : (진석을 다독이며) 이제 괜찮아질 거야.
황량한 폐허 한 가운데 진석과 유미가 쪼그려 앉아있다.
유미 : 괜찮아~ 괜찮아~~


S#07. 용산거리, 낮
걸어가고 있는 진석과 유미.
유미 : 오빠,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진석 : 가만 있어봐, 뭐 좀 확인해 볼 게 있어.
유미 : 뭐? 뭐? 뭐가 있는데? 응?
대답 없는 진석의 뒤에서 유미가 뭘 봤는지,
유미 : 오빠, 저기 저거 좀 봐, 졸라 무서워.
진석이 돌아보니, 무너진 건물 앞에서 바닥에 앉아 도라지를 까고 있는 화석 같은 노파가 보인다.

유미 : 오빠, 졸라 무섭다, 그치?
노파에게 다가가는 진석.
노파 : 진석아, 어디 가냐? 우리 진석이 고새 또 컸네?
진석 뒤에 서 있는 유미를 보며,
노파 : 우리 진수가 동생 데리고 놀러 나왔네?
유미 : 오빠, 이 할머니, 졸라 웃긴다.
노파 : 니들이 고생이 많다. 엄마도 못 보고... (혼자말로) 쯧쯧.. 불쌍한 것, 거긴 왜 있어 가지고...
진석 : 할머니, 혹시 우리 엄마 어떻게 된지 알아요?
노파 : 응, 아까도 저기 김씨네 전기 나갔다 그래서 가는 거 같던데?
진석 : 예? 어디요?
노파 : (건너편을 가리키며) 저기, 저기 불 켜져 있네.
진석이 돌아보니 자신의 바로 윗집 깨진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보인다.


S#08. 김씨 아파트 안, 낮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진석. 유미는 계단 앞의 폐자재에 걸려 넘어지고, 걱정과 짜증섞인 얼굴로 진석을 쫓는다. 진석이 반쯤 뜯긴 문 안으로 들어서자, 폐허 같은 집안에서 러닝셔츠 차림으로 밥을 먹고 있는 김씨 아저씨가 보인다. 진석, 김씨 앞으로 다가간다. 밥을 먹으며 김씨는 계속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김씨 : (결연한 자세로 밥을 떠 넣으며) 목표 없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은 부자를 만든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가치... 이 세상 가장 높은 꿈, 롯데캐슬이 만들어갑니다... 수익은 속도가 좌우합니다...
진석 : 아저씨, 혹시 우리 엄마 못 봤어요?
김씨 : 목표 없는 사람은 꿈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은 부자를 만든다...
진석 : 아저씨!!
진석이 김씨에게 다가가려 하는데, 뒤에서 용역들이 들어선다.
용역1 : 아자씨, 밥 먹어?
용역2 : (진석을 보고) 아까 식당에서 봤던 놈 아냐?
너 때문에 아까 밥도 다 못 먹고 나왔잖아.
용역4 : 아저씨, 진짜 왜 그래요? 일할 라니까 배고파 죽겠구먼...

용역3 : 야 됐어, 저건 신경 끄고, 우리 일이나 하자고.
용역들은 진석을 무시한 채 김씨에게 달려들어 밥상을 걷어찬다. 김씨를 위협하며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용역들.
용역2 : 왜 이리 사람을 피곤하게 하실까.
용역3 : 야, 거지새끼야, 그냥 좀 나가라고!
김씨 : (바닥에 드러누워) 이놈들아, 이건 안 된다, 날 죽여도 이건 못 가져간다.
김씨는 엄지가 잘려진 손으로 무언가를 꽉 붙들고 있다. ‘저것은...’ 하는 진석의 표정과 동시에 실랑이 속으로 뛰어드는 진석. 김씨에게서 물건을 빼앗아 달아난다.


S#09. 아파트 안, 낮
허둥대며 집으로 내려온 진석. 집 안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바닥 구석에서 아까 유미가 던져버린 새 모형을 집어 드는 진석. 김씨에게서 빼앗아 온 물건과 맞추어보자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트로피다. 그 순간 집 현관문이 무너진다. 진석은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트로피를 안은 채 무너져 내린 현관 쪽을 바라본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현관 쪽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의 심연 같이 음산한 기운이 풍겨 나오는 듯하다. 그때, 창문 밖에서 들리는 유미 목소리에 진석은 정신을 차린다.
유미 : 오빠~ 오빠~ 거기서 뭐해?
돌아보니, 허리를 숙이고 창으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유미가 보인다.
유미 : 안 가? 거기서 뭐해? (트로피를 보며) 그건 또 뭐야?
진석 : 어?...어, 저기 문 좀 열어 봐.
유미 : 문? 무슨 문?
유미가 현관 쪽을 보는데, 쓰레기 더미에 막혀 있기는 하지만 못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유미 : 뭐해, 빨리 나와, 나 추워.
진석 : 문 좀 열어보라고.
유미 : 오빠, 이러지마, 제발 좀.
진석은 창문을 막고 있는 쇠창살을 이리 저리 뜯어내 보려 하지만 끄덕도 않는다.
진석 :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던지며) 야, 너 빠자 가서 절단기 좀 꺼내와.
체념한 듯 말없이 열쇠를 주워드는 유미. 잠시 후,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들린다.

진석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오토바이 앞바퀴가 불쑥 들어온다.
유미 : (오토바이에 탄 채 내려다보며) 진석아, 잘 살아야 해.
‘부르릉’ 하고 떠나버리는 유미의 뒷모습을 황망히 바라보는 진석.


S#10. 아파트 안, 낮
전화기를 꺼내드는 진석.
119 : 네, 119입니다.
진석 : 네...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119 : 네, 침착하시고요, 거기가 어디죠?
진석 : 한강로 남일아파트 102호요.
119 : 남일아파트? 어... 거기는... 저희가 갈 수 없는데요.
진석 : 무슨 소리야, 사람이 갇혀 있다고!
119 : 그게... 관할 문제도 있고... 그리고 거기는 들어가면 안 되는 덴데... 근데 거기 아직 사람이 있나?
진석 : 아, 씨발. 난 사람 아냐?
119 : 아,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전화를 끊고 앉아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온 것 같은 웅성웅성 소리가 들린다.
Voice over : 아, 진짜... 여기는 내가 다 관리한다니까! 우리도 신고가 들어와서요... 아, 있기는 누가 있어. 소장님하고 다 애기 됐다니까 그러네... 내가 처리한다고... 밥이나 먹고 가... 아...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진석은 ‘이제 왔나?’ 하면서 트로피를 챙겨서 창가 쪽으로 가는데, 불쑥 창수가 얼굴을 들이민
다.
창수 : 뭐야, 니가 신고했냐? 너 여기서 뭐하냐?
진석 : 어, 나 갇혔어.
창수 : 뭔 소리냐?
진석 : 나 갇혔다고, 문 좀 열어주라.
창수 : (현관 쪽을 보며) 햐, 이 새끼 오늘 왜 이러냐? 정신 차려 새끼야!
진석 : 그... 문 좀 열어 달라고.
창수 어이없어 하다 진석이 안고 있는 트로피를 본다.
창수 : 야, 너 그거 어디서 났냐? (뭔가 알겠다는 듯이 비웃으며) 하, 이 새끼가...이젠 거기서 돈 안 나와... 그나저나 그거 니가 들고 있는 거 보니, 딱이네. 니네 엄마 꺼가 아니라, 니꺼네, 니꺼. 우리 자랑스러운 용산구민씨.
진석은 영문을 몰라 트로피를 안고 멍하니 창수를 바라보고 있다. 창수는 진석의 머리 위 외벽에 붉은 색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쓰고는 가 버린다.

S#11. 아파트 안, 저녁
콘크리트 바닥에 해머가 끌려가고, 해머를 따라 주변이 점점 어두워진다. 아파트 거실에 혼자 앉아있는 진석을 괴이한 가면을 쓴 두 꼬마가 창문 밖에서 주시하고 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진석의 핸드폰이 울린다.
진석 : 형!
진수 : 응, 진석아, 형이야.
진석 : 형, 나 여기 갇혔어.
진수 : 응, 그럼, 그래야지. 밥은 먹었고?
진석 : 밥이 문제야 지금?
진수 : 그럼 그럼, 잘 챙겨 먹고 다녀야지, 아, 그리고 그 오토바이 지금도 타지? 그거 위험한 거야.
진석 : 오토바이...?
진수 : 그리고, 그 트로피는 그렇게 땅바닥에 내려놓으면 안 되지,
엄마가 얼마나 아끼시는 건대.
진석 :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며) 어, 어디야, 지금?
진수 : 진석아, 작은방엔 들어가 봤니?
진석, 뒤를 돌아 작은방 쪽을 바라보자, 굳게 닫혀 있는 푸른색 문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하다.
진석 : 아, 아니, 문이 안 열려.
진수 : 그럼, 그렇지, 진석아, 잘 살아야 돼.


S#12. 아파트 안, 밤
거실 구석에 혼자 앉아있는 진석. 알 수 없는 소리가 자신을 감싸는 것 같다. 벽에서는 살아있는 것처럼 곰팡이가 번져 진석을 포위한다. 공포에 질린 진석. 안방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안방에 무언가 있는 듯하다. 결심한 듯 안방으로 다가가 벽장을 열어보는 진석. 불에 그을린 깨진 사진 액자가 보인다. 사진에는 용산구청장과 트로피를 안고 있는 엄마가 악수를 하고 있다. 그들 뒤로는 ‘자랑스러운 용산구민상’ 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오한이 느껴지는 진석. 주변에 있는 나무 자재와 재개발 전단지를 모아 불을 지펴보지만 금방사그라진다. 진석은 주위를 둘러보다 벽지를 뜯기 시작한다. 갑자기 벽지가 모두 사라지고 벽에 붉은 색 스프레이로 휘갈겨 쓴 글씨가 보인다.
“살인철거 중단하라”, “동의서 제출 절대 불가”, “도장 찍어주면 배신자”...

S#13. 아파트 안, 밤
창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듯하다.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발소리가 들린다. 낮에 들리던 환청소리에 진석은 고통스러워하며 귀를 막는다. 잠시 후 환청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옆방에서인가 싶어 벽에 귀를 대보고, 돌을 집어 들어 벽을 쳐 본다.
진석 : 여기요,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Voice over : 이딴 식으로 가면 다 죽는거여, 니미랄... 오늘만도 빠진 집에 세 집인데... 그렇지, 도장 찍어주면 우린 다 죽는 거여. 나도 현석이 아빠만은 안 찍어 줄 알았는데, 막말로 이제 와서 여기 누굴 믿을 수 있겠어?
듣다 계속 돌로 치는데, 갑자기 벽이 ‘쩍!’ 하고 갈라진다. 갈라진 사이로 어스름하게 빛이 들어온다. 진석, 그 사이로 얼굴을 대고 본다.
Voice over : 그니까, 이참에 도장을 다 모으자고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겨. 위원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잠깐만요, 저쪽 용역 애들 움직임이 수상해요, 비상이야!
진석은 낌새가 이상해 밑을 내려다보자, 발 옆으로 검은 물이 흘러 들어오고 있다. ‘뭐야?’ 하며 몸을 돌리는데 진석의 머리 위로 해머가 내리쳐진다. 놀란 진석은 가까스로 피하며 돌아보자, 어디서 나왔는지 검은 조끼를 입은 남자들이 집 안을 부수고 있다. 놀라 쳐다보고 있던 진석은 구석에 있는 트로피를 본다. 트로피 쪽으로 기어가던 진석의 얼굴 앞을 작업화가 가로막는다. 위를 올려다보는 진석. 한 남자가 웃으며 해머로 진석을 내려친다.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는 진석.

S#14. 아파트 안, 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집안. 조용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는 진석. 거실 한 가운데 흰 천이 깔린 문갑에 트로피가 놓여 있다. 진석은 가만히 트로피를 바라보는데, 저 쪽 어두운 현관문 쪽에서 어스름한 사람 형체가 보인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형체는 자세히 보니 엄마다.
진석 : 엄마....

엄마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트로피 앞으로 간다. 트로피를 분리해서 무언가를 숨기곤 조심스럽게 제자리에 놓는다. 작은방의 푸른 문을 열고 사라지는 엄마.
진석은 꼼짝 못하고 있다가, 트로피 쪽으로 다가가 집어 든다. 그리고 목에 걸려 있던 작은 열쇠를 들어 트로피를 연다. ‘딸깍’하면서 트로피 밑판이 열리고, 무언가 후드득 쏟아진다. 잘린 엄지손가락들이다.

(과거) 몽타주 시퀀스 01. 용역 사무실 안, 낮
진석은 트로피를 들고 어리벙벙하게 서 있다.
조합장 : 거, 그건 거기 내려놓고... 그래, 필요한 게 뭐랬지?
창수 : (창수가 트로피를 빼앗듯이 가져가며) 얌마, 얘기해.. (진석을 쿡쿡 찌르다가) 조합장님, 얘가 라이딩은 죽이거든요. 야,야, 그거 빠자, 얘기해... (조합장을 향해 비굴하게 웃으며) 아, 그게 오토바이입니다, 조합장님.
조합장,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조합장 : 역시 젊은 사람이라 패기가 있어, 보기 좋아. 창수, 바로 준비해 줘.
창수 : (군인처럼 차렷하며) 예, 알겠습니다! (옆구리에 낀 서류철을 들며) 아, 조합장님. 동의서 준비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서 있는 진석.


(교차) S#14-01. 아파트 안, 밤
진석이 작은방으로 다가가려 하는데,
Voice over : 당신이 빼돌린 거 아냐?
고개를 돌려 옆을 보는 진석.


(과거) 몽타주 시퀀스 02. 철대위 사무실, 낮
아저씨1 : 당신이 아들놈하고 짠 거 아니냐고!
아줌마2 : 내 도장 모으자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아저씨3 : 자, 진정합시다. 이럴 때일수록 단결해야 해요.

아저씨2 : 단결은 지랄! 그 동의서 땜에 합의금 받고 빠진 집이 몇 군덴데!
아줌마1 : (훌쩍거리며) 이젠 우린 끝장이야...
아저씨1 : 어쩔 거야!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 할 거 아냐!
‘위원장이 책임져!’ 하며, 무언가를 집어던진다.


(교차) S#14-02. 아파트 안, 밤
얼굴로 날아온 무언가에 놀라 뒤로 자빠지는 진석. 작은방의 푸른 문 아래에서 검은 물이 쏟아져 진석의 몸을 휘감는다. 강제 철거를 반대하는 삐라들이 물어 젖어 떠다닌다.

(과거) 몽타주 시퀀스 03. 건물 옥상, 새벽
옥상의 푸른색으로 도색된 망루위로 물대포가 쏟아진다. 컨테이너에 올라탄 경찰들이 해머로 망루를 내려친다. 철거민들이 격렬히 저항한다. 잠시 후 망루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불길이 거세게 타오른다. 불길에 휩싸인 망루를 보며 누군가 ‘저기, 사람이 있어요!’ 라고 고함을 친다. 옥상 끝에 사람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가 떨어진다.
건너편 옥상에서 검은 연기에 휩싸인 진석은 이 지옥도를 보고 있다. 폭발소리와 화염소리, 비명소리, 사이렌 소리, 물대포 소리가 진석이 듣던 환청과 겹쳐진다.


(교차) S#14-03. 아파트 안, 밤
작은방의 푸른 문 앞에 서 있는 진석. 손잡이를 돌리고, 방문이 열리며 어둠속에서 서서히 방안의 풍경이 드러난다.


Epilogue
진석의 클로즈업된 얼굴.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는 진석. 진석의 머리 위로 흉물스럽게 방치된 불타버린 망루가 보인다. 주변을 살피며 폐허 같은 용산 거리를 유령처럼 배회한다. 자신의 집으로 들어서는 진석의 뒷모습. fade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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