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카이스트 문학상] 수필평론 부문 가작 / 피어난 꽃이 아름다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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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카이스트 문학상] 수필평론 부문 가작 / 피어난 꽃이 아름다운 것은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5.02.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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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난 꽃이 아름다운 것은

무학과 김채은


오후 햇살이 한가로울 때에는 도서관에 종종 가곤 한다. 특히, 나는 신간 도서 서가에 놓여 진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책들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해서일까. 책이 놓여 있는 곳에서라면 몇 시간이고라도 서서 구경을 하곤 한다. 봄꽃향기가 창문으로 마구 들어오던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서가에서 서성이다 발견했던 작은 시집.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시를 만나게 될 귀한 순간이 될 줄이야.
시의 첫 행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였다. 그 인상 깊은 첫 구절에 사로잡혀 한 행 한 행 읊조려나갔던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시의 한 글자 한 글자는 발자국처럼 내 가슴을 촉촉이 적셨다.
내게 있어서 시는 언어들이 부리는 향연과도 같다. 어떤 단어들이 모여서 시를 만드느냐에 따라 떠들썩해지기도 하고, 침착하거나 고요할 수 도 있다. 시가 지니는 분위기는 시 나름이지만 어느 시든 시를 짓는 동안의 시인의 마음은 시에 깃들어서 그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으로 다시 전해진다. 그래서 좋은 시를 읽고 나면 내 가슴에 박하사탕처럼 남아서 온갖 나쁜 감정들을 정화시켜 주고 그 시가 지닌 순수함 속에 한 동안 파묻혀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이 난다. 나에겐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 그랬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들만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나는 왜 남들처럼 화려하지 못할까, 스스로 탓한 적도 많았고 내가 못난 인간인 것만 같아 좌절한 적도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아 절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특히 학업에 시달리고 입시 지옥이라는 말을 매일같이 체험하며 살아갔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도 지쳐있었다.
그 때 나를 일으켜 준 것이 시였다. 시인이 사용한 단어들은 꾸밈없는 본연의 순수함을 빛내며 시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서 우아하고도 아름다운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지금 나는 조금 흔들리고 있는 중이라고. 조금 뒤에는 꽃을 피워낼 것이라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견뎌내면 나도 그 꽃을 곧 보게 될 것이라고.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나의 힘든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그리고 꽃이 필거라고 그토록 확신에 차서 말해주는 씩씩한 시는 처음이었다. 시한테서 눈물겨운 위로를 받아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고, 그래서 그 시가 고마웠다.
피어난 꽃의 겉모습보다도 꽃이 지나온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볼 수 있는 눈을 나는 그제 서야 가질 수 있었다. 그 헤아리기 힘든 역경의 순간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도. 어째서 나는 한 번에 가려고 했던 것일까. 높게 자란 풀일 수 록 비바람에 더 많이 흔들리는 법이다. 이 세상 모든 꽃들이 아름답고 귀한 이유는, 볼수록 향기롭고 귀여운 이유는, 그것을 피워내기 위해 잎과 줄기와 뿌리가 수 천 번의 비바람과 뙤약볕에서 흔들리고 젖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 생활도 어느 덧 막바지에 접어들어 대학생이 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여전히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주변의 기대는 커졌고, 남들의 잣대는 더 까다로워졌다. 그래서 기가 죽기도 하고, 과제와 시험에 쓰러질 것 같이 지칠 때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것 역시 언젠가 내가 피워낼 꽃을 위한 작은 흔들림이라는 것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내 인생인 만큼, 나를 찾아올 궂은 순간들도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힘을 내야지. 더 튼튼하고 질기게 뿌리로 땅을 움켜쥐고 아래로 위로 쑥쑥 뻗어나가야지.
낮에 점심을 먹고 서측 기숙사 쪽 길을 걸어오면서 길가에 무성하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았다. 무성한 녹색 풀잎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고운 진보랏빛 꽃잎을 피워내고는 가을 햇빛 속에서 수줍어하고 있다. 그 자태가 너무나도 예뻐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니 그 꽃을 한 송이 피워내기 위해 견뎌냈을 여름 장마와 겨울바람을 생각해보며 꽃을 바라보았다. 꽃이 피워내는 향기와 그 아름다움은 그간 참아내고 이겨낸 것들에 대한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나도 다짐했다. 나도 이런 꽃이 되리라고. 지금은 흔들리고 젖어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는 꽃으로 만발할 것이라고. 달콤하게 향기를 내며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라고. 다시 일어나 마저 남은 길을 힘차게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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