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그림

 

권용민


귀가한 사람들

남편은 깜짝 놀랐다. 거실 소파에 누운 아내가 지저분해서 그렇다. 얼룩들이 이리 튀고 저리 튄 형국이라 남편은 아내가 피살이라도 당한 줄 알았다. 웃옷이며 팔꿈치며 손이며 온통 검정 물감으로 범벅이다. 이런 괘씸한 일이 다 있나, 고 남편은 생각한다. 한 회사의 부장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다하고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기대하며 집에 왔더니 지저분한 아내가 엎어져있어 남편은 퍽 유감이다.
아틀리엔지 창고인지 베란다에 일을 꾸미더니 결국 가사에 소홀한 영향이 있구나. 남편은 혀를 끌끌 찬다. 아내가 한때는 그림을 좀 배운 여자임을 남편은 안다. 하지만 그림이라는 것도 한창 탱글탱글한 여자가 그려야 봐주는 맛도 나는 것이지. 연세가 불혹을 넘었으면 이치를 깨달아야지 탐미할 것이 무엇이냐. 남편은 아내의 꼬락서니가 하도 기가차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던 베란다로 나가본다.
물감을 뿌려대면서 그리는 그림도 있나. 베란다 바닥은 군데군데 검은 물감으로 범벅이다. 남편은 바닥을 향해 혀를 차대며 미리부터 달콤한 잔소리를 구성한다. 그러다 남편은 억하며 기겁한다. 그 난장판의 복판에 떡하니 기괴한 그림이 하나 서있는 까닭이다. 그림은 주저앉은 사람 정도 되는 크기다.
그것은 목이 비틀린 신체가 머리카락 같은 것을 휘감고 있는 그림이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아니라 음부로부터 자라난 털들이 온몸을 감싸 무슨 새까만 털 뭉치처럼 보이는 것이다. 아니다. 목이 비틀린 것은 아니고 애초에 잘못 만들어진 인형처럼 온몸의 비율이 혼돈스러운 그림이다.
저 여자가 미쳐버렸나. 아내의 어디로부터 이런 그림이 나왔을까. 남편은 왠지 모르게 섬뜩하다. 나더러 보라고 이걸 그린 것인지. 아내가 느닷없이 왜 이런 것을 그렸는가. 남편이 그림을 유심히 살피는데 누군가 뒷덜미를 노려보는 것 같다. 남편은 얼른 뒤돌아보지만 착각이다. 베란다가 차갑다. 선득한 하늬바람이 창문을 흔든다.
남편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은 찾아올 기미가 없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일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죽었던 일들이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까 그 그림을 보아서 그렇다. 모순에 맞닥뜨릴 때 느끼는 특유의 묘한 짜증에 잠기어 남편은 억지로 눈을 감는다. 날이 밝으면 아내에게 물어보리라, 도대체 왜 그런 것이냐고. 남편은 간신히 꿈속으로 들어간다.
이른 새벽에는 실연의 고통으로 술을 마시는 아들이 귀가한다. 쌀쌀한 가을에 동이 틀 무렵까지 술을 마셨더니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다. 베란다에 담배를 태우러 나간 아들은 털 뭉치인지 이름 모를 짐승인지 아무튼 기괴한 그림에 깜짝 놀란다. 검은 털들이 사방으로 굽이치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확 겁을 준다.
아들이 헤아리기를 짐작이 아닌 확신으로써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재능이라 해봐야 얼마나 큰 재능이 있겠느냐마는 기대를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침울하지 말고 그림도 그리고 가사일 아닌 것에 분주하면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남들처럼 재능으로 복지센터 같은 곳에 기여도 하고 동네 전시회 같은 것도 하면 바람직하지 않겠나. 아들은 그런 건강한 생각에서 엄마에게 다시 그림을 그려보라고 말했던 것이었다. 그러노라면 엄마도 다시 건강하고 화사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고 아들은 생각했다.
그런데 저 그림은 무어냐. 어떤 짐승의 뒷모습인지 아니면 먼지 덩어리를 그린 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섬뜩한 느낌이 시선을 덥석 무는 그림이 아닌가. 아들은 그림을 보다가 문득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온다. 이게 다 무엇인가. 헤어진 애인이 떠오른다. 나는 너무 불쌍하다. 엄마도 너무 불쌍하다. 도대체 그 마음에 무슨 괴물이 있어서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들은 짠하다.


오소리가 오고 있었다

성미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 든 붓은 이미 마른지 오래였다. 까만 물감이 딱딱하게 굳어 붓끝에 붙어있었다. 창밖의 스산한 가을 하늘이 넋 나간 할아버지처럼 흐린 얼굴로 정오를 멍청히 들이밀었다. 성미는 붓을 물통에 떨어뜨려 넣었다. 차갑고 맑은 물속으로 검은 물감이 힘들게 번져나갔다.
짐승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쓸쓸하고 불안하고 안타까운 것으로 어느 순간 가슴이 저며 오는 느낌. 마음이란 알게 모르게 발을 뻗는 것이어서 어디까지나 그것이 번지었는지 눈바람 이는 어느 먼 곳까지 이르는 것일까.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한 냉기가 가슴 한편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느낌. 그 냉기가 마음 어느 한 구석에도 색깔 하나 남겨놓지 않고 혼탁한 검정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남는 것은 절망도 아니고 그에 비롯되는 체념도 아니고 어떤 말할 수 없는 것이 덩그러니 가슴에 남은 채 어지러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소리였다. 오소리가 또 다가오고 있었다.
어딘지 쓸쓸하고 쌀쌀한 기운을 품은 오소리라는 이름이 어느 날 성미의 뇌리에 떠올랐었다. 그 네 발 달린 동물에 대하여 성미가 소상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름 특유의 스산한 소리 때문에 뒤숭숭한 정서가 그 이름을 꽉 붙잡았었다. 오소리라는 이름이 붙자마자 그 쓸쓸하고 불안하고 안타깝고 은근한 느낌은 그제야 비로소 명암을 곤두세웠다. 오소리는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성미의 마음을 잿빛으로 치대곤 했었다. 오소리가 들어차서 무거워진 머리를 흔들며 성미는 한숨을 쉬었다.
요새 성미가 친구들을 만나면 듣는 말이 있었다.
“이제 우리도 옛날 같지 않아. 갱년기에는 원래 열에 아홉이 우울증에 시달린대.”
제들의 말에 따르면 그 년들은 모두 중증의 우울증 환자들이었다. 성미는 그런 식의 말이 싫었다. 때가 되면 우울증에 걸리는 법이다. 세상이란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는 법이다. 세상이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끝에 그들의 맹목적인 전념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선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는 일념이 먼저 있고 그것의 비유로써 그런 생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냥.
몇 십 년의 세월 동안 그녀가 얻어낸 대답은 그 한마디였다. 인간을 그 순간에 묶어놓도록 하는 마법의 봉인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이라는 말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연인에게 그냥이라는 말은 어떤 운명을 불러오는 주문이다. 모르겠어, 나는 그냥 당신을 사랑해, 어쩔 수 없어! 이때 그냥이라는 말이 키스와 포옹을 몰고 온다. 그리고 연인은 이내 꽁꽁 묶여버린다. 수많은 어머니들도 그냥이라는 말을 쓴다. 강수하듯 쏟아져 내리는 애틋함을 영원히 자식들의 가슴에 매달아놓기 위해서 그네들은 그냥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내 딸, 내 아들아 나는 네들을 사랑한다. 그냥 사랑한다!
성미도 그녀의 젊음을 봉인해야 했을 때 그리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젊음.
반수면의 처절한 무기력함으로 세상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어느 순간 드높은 하늘로 치솟던 그녀의 젊음. 끊임없는 조울증. 주홍빛 열정과 창백한 무기력함으로 진자처럼 드나들기. 밤이면 성미는 도심의 붉은 불빛 위를 날아올랐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같은 도시의 허연 구석으로 처박혔었다. 한참을 휘청거린 끝에는 끝이 아니라, 다만 봉인이 있었다. 당신이 그냥 좋아요. 당신이랑 있으면 편안하고 그냥 이렇게 늙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도 그래. 어머, 당신도요? 왜 그렇죠? 그냥.
그냥.
그것보다 최고의 운명, 운명에 충실한 운명을 부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신비함과 모호함은 부조리가 쓰는 두 가면이다. 부조리가 내키기만 한다면 삶이란 환상들의 축제가 된다. 삶은 곧 신비한 봉인으로써 마취된다. 하지만 부조리가 지치기 시작하고 가면을 바꾸어 쓰면 신비함은 온데간데없어진다. 그리고 불확실하고 선득한 바람이 신비한 봉인으로부터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봉인은 봉인일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처럼 불확실함을 불확실함 특유의 무채색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성미가 오소리에게 침략당하기 시작한 근래의 일이었다.
비라도 뿌리려는지 하늘은 끊임없이 흐려왔다. 한숨에 색깔이 있다면 그렇다 할 색깔이 하늘의 그 색깔이었다. 그 어떤 작품도 탄생할 여지는 없었다. 오래된 이젤에 기대어 앉은 창백한 쪼가리가 쌀쌀한 베란다의 허공을 통하여 아무 말도 않았다. 캔버스는 이미 손을 쓸 수 없게 된 환자 같았다. 젊은 날의 성미가 쓰다듬었던 것은 생생한 캔버스였었다. 그런데 이제 캔버스는 풍이라도 들었는지 성미를 못 알아보는 것이었다.
성미는 다시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마음먹은 날을 떠올렸다. 때는 한밤중이었다. 종일 오소리와 씨름하던 성미는 소파에 기대앉아 졸고 있었다. 캄캄한 거실에서 음이 소거된 TV가 아무 불빛이나 던지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들이 귀가했다. 아들은 그대로 성미 옆에 고꾸라졌다.
“엄마는 그림도 좀 다시 그려보고 해. 소질이 있었다면서.”
아들의 말이었다. 아들은 한창 실연의 아픔에 취해 늘 술을 마셨다. 성미가 아들의 빳빳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술 냄새가 은은히 올라왔다.
성미는 문득 놀랐다. 아들에게 그림 그리던 시절을 얘기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말해주었을까. 남편은 성미가 그림을 배우기는 하였거니 하는 사람이었다. 그럴 리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렸던 작품이 있었다. 이글거리는 주홍빛깔 속에서 하얀 구원 같은 벌거벗은 육체를 그렸었다. 그 그림을 찢어버리던 순간이 오랜 세월을 뚫고 가물거렸다. 아련함이 밀려왔다.
자식이 크면 찾아오는 아련함이란 이런 것이다. 젊음에 한창 취해 치열한 모색에 잠겼던 날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 옛날의 치열함이 잊히게 될 중년의 어느 즈음에 어느새 청춘을 맞은 자식의 술 냄새를 타고 새삼 그 옛날이 날아온다. 그렇게 자식들이 모색에 취하고 부모는 그 나름의 아련함에 취하는 것이다.
남편이 깼는지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쯧쯧, 이 자식은 인생에 여자가 고 하나밖에 없나. 허구한 날 술이야.”
TV를 향해 기다란 하품을 하며 남편은 배를 북북 긁었다. TV 속에서 아이돌 여가수들이 반쯤 벗고서 다리를 열심히 벌려대었다. 무음으로 보는 그 안무들과 환호하는 관중들이 마치 어항 속의 물고기와 파래처럼 일렁였다. 성미의 초점이 멀어졌다. 소리 없는 형형색색의 세계가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남편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널린 게 여자야, 여자.”
아니야. 얼핏 들어간 꿈속에서 어느 여자가 말했다. 아니야. 반수면의 의식을 가누며 성미는 TV를 꺼버렸다. 남편은 안방으로 사라졌다. 옆에 누운 아들의 술 냄새가 성미를 점점 무겁게 만들었다. 눈꺼풀 속에서 주홍빛 잔상 하나가 사라져갔다. 그 잔상을 향해 손을 뻗치는 상상이 일었다.
그 다음날 아침 성미는 분주해졌다. 베란다 한편에 이젤과 의자를 놓아 작은 아틀리에가 꾸려졌다. 그때는 속이 참 후련했다. 세월을 건너온 치열한 꿈이 성미도 모르게 성숙한 듯했다. 오소리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소리는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동안 캔버스와 성미는 무언의 싸움이 아니라 무언의 응시를 나눌 뿐이었다. 영감과 깨달음은 다른 것이다. 영감은 허공으로부터 오색찬란하게 응결하여 허공을 채우지만 깨달음은 투명한 허공 그 자체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성미에게 영감은 솜털만큼도 없었고 창백하고 쓸쓸한 깨달음이 허공을 가로질러 반사되어올 뿐이었다.
그릴 것이 없구나.
가을바람에 베란다가 울었다. 쌀쌀한 기운이 사지로부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성미는 몸을 떨며 일어섰다. 근래에 성미가 발견한 것이 있었다.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가벼워지면 오소리가 잠시나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한증탕의 부옇게 오르는 김을 들이마시며 나른하게 벽에 기대노라면 의식은 멀어져갔다. 목욕탕의 붉은 색채가 천천히 마취약을 주사하기 때문이었다.
몽롱하고 나른한 그 온기에 취해 눈을 감으면 온몸으로 스미는 따뜻한 감촉이 눈꺼풀로 천천히 모여왔다. 어두운 주홍빛 잔상이 유희를 시작하면 성미는 막연한 영감의 세계로 들어가곤 했다. 그 주홍빛 잔상은 눈꺼풀 속에서 온갖 형상들로 변모했다. 때로는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붉은 성운으로 때로는 발간 속살을 간직한 어느 바다 생물의 꿈틀거리는 수축으로 잔상들은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막연한 형상들이 변모를 멈추고 한 덩어리로 모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성미도 몰랐다. 덩어리가 옛 기억 속으로 펼쳐지기도 했고 알 수 없이 아련한 중얼거림이나 신음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것은 짜릿한 꿈속이었다. 그렇게 몇 십 분을 탕 속에서 보내면 살갗은 개운해졌고 마음은 투명해졌다. 그리고 다시 붓을 잡을 용기가 솟기도 했다.


목욕탕으로 가는 길

성미는 승용차에 올라 도시 외곽으로 차를 몰았다. 흐린 날 점심 특유의 탈색된 허연빛이 온 세상에 한숨을 뿌리고 있었다. 가을인데도 울긋불긋한 낙엽이 없는 무채색의 도로가 참 유감스러웠다. 청소를 기가 막히게 하는 까닭인가 보았다. 한 블록을 거칠 때마다 빗방울이 한 방울씩 앞 유리에 맺혔다. 가을비답잖게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그때마다 성미의 눈꺼풀이 움찔움찔했다. 뚜껑 열린 차를 타던 젊은 날의 습관 때문이었다.
성미와 그녀의 친구들은 오렌지족이었었다. 신문에서 그리고 뉴스에서 그들을 그렇게 불렀었다. 주변에 널린 사람들이 오롯이 미쳐있었었다.
카르페 디엠! 시즈 더 데이!
마취약 같은 말들, 어차피 천구백구십구 년에는 세상이 망해. 그 말들은 단지 다른 말들이 진실이 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진실이 되었었다. 그때는 진실과 진실을 교배할 수 있었었다. 온갖 진실들이 하룻밤의 교배를 위한 헌사가 되었었다. 돈 많은 남자들, 집안 좀 알아주는 여자들이 하루살이처럼 날아올랐었다. 돈 많은 집안의 도도한 미대생으로서 성미는 하루살이들의 여왕이 되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전락해야했었다. 누구는 부끄러움으로써, 누구는 사상적 전향으로써, 누구는 황망함으로써 한 발을 내딛으며 낙하했었을 때 그녀도 어디론가 떨어져야만 했었다. 늙었다는 것, 이미 퇴물이라는 것. 말을 좀 바꾸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 지겨워졌다는 것. 아주 똑같은 말들이 아주 많은 입에서 튀어나왔었다. 그리고 그 동시다발적인 그냥, 그냥, 그냥, 그냥이 나타났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혼례를 치렀으나 약속은 하지 않았었다. 다만 착지할 곳이 필요했었고 아이들이 탄생한 것이었었다.
누구나 전락의 순간에는 착지할 자리가 필요하다. 하루보다 많이 사는 하루살이부터는 모두 제 운명을 원망해야 한다. 왜 나는 젊어서 죽지 못했는가. 왜 젊음은 봉인되었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과 왜 사는가라는 말 중에서 인간에게 더 고통을 주는 쪽은 두 번째라고 성미는 생각했다. 누군가 성미에게 인생으로부터 떠올릴 것을 떠올려보라 한다면 성미는 난처할 것이었다. 성미는 밑바닥에서 길어 올릴 것이 없었다. 성미가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예 밑바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미 앞에서 트럭이 멈췄다.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트럭 속에서 돼지들이 맨몸으로 움찔거렸다. 빗방울이 늘어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말 한 토막이 왠지 떠올랐다. 한때 젊었던 시절 유행했던 말이었다. 어디를 가든지 나방 같은 사람들이 그 말을 가지고 다녔었다.
그렇다면 저 돼지들은 그 동안 몇 번이나 강해져 온 것일까. 돼지들은 이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구성원이 아닌가. 돼지 또한 사람처럼 이 세상이 돌아가도록 돕는 톱니바퀴의 한 축이 아닌가. 과연 돼지가 그 동안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누군가 물어야만 할 것이었다.
그것이 꽤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고 성미는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성미를 죽이려 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도 막연히 일었다. 그러자 생각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돼지가 얼마나 강해졌나, 하는 그 중요한 문제는 언젠가 다가올 성미의 죽음이 저 돼지들의 도축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의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사는 것도 필요하고 죽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혹시 그 필요의 이유란, 살기 위한 장치들과 죽기 위한 장치들이 그 나름대로 지니는 가치 때문은 아닐까, 고 성미는 생각했다. 성미가 앞으로 죽을 것이라는 공식적인 이유에 장례절차나 리무진 기사들의 봉급이나 화장터에서 뼈를 부수는 사람들의 노동력 같은 것이 얼마나 맞물려있는지는 꽤 중요한 문제인 것이었다. 더구나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나 많은 분유 회사들이며 보육교사들의 생계가 맞물려 있는가.
성미는 초조해졌다. 짚이는 이유라 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뿐이어서는 안 된다, 고 성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신호가 바뀌었다. 돼지들이 멀어져갔다. 죽음을 몇 초 앞둔 사형수의 얼굴을 보자마자 해주고 싶었던 말을 까먹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말이 떠올랐는데 먼저 가서 기다리라는 말이 그것이었다고 한다. 성미는 답답했다. 돼지들이 벌써 몇 십 미터는 족히 멀어졌다. 꿈틀거리는 나체들의 틈에 발가벗은 사람이 한 명 끼어있는 착각이 어렴풋이 일었다.
뒤에서 경적이 크게 일었다. 성미는 깜짝 놀랐다. 정신 좀 차려. 검은 차를 탄 남자가 성미에게 소리쳤다. 그는 무섭게 성미를 추월했다. 성미는 얼른 차를 몰았다. 죄스러운 억울함이 안겨왔다. 성미 때문에 주춤하던 교통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원활해졌다. 성미와 갈라져 떠나는 돼지들이 엷은 흙먼지에 가렸다. 목욕탕이 코앞이었다.


목욕탕에서 만난 여자

따뜻한 탕 속에 성미는 몸을 뉘었다. 젊은 여자 한 명이 저편에 앉아 샤워를 하고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여자의 샤워기 소리와 성미 곁에서 일렁이는 물소리 말고는 소리가 없어 호젓했다. 성미는 굳이 동네에서 떨어진 이 조용한 목욕탕을 찾았다. 동네 목욕탕은 사람들이 너무 바글거려서 싫었다. 게다가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몇 호 몇 호로 불렀다. 204호 아줌마, 1205호 아가씨. 전라의 신체들이 서로를 몇 호 몇 호로 부르는 광경은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언제 그 몇 호의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지 두려워하며 성미는 몸서리치곤 했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물씬 올랐다. 저편의 젊은 여자는 찬란하게 희었다. 여자가 어께에 물을 붓자 온몸을 감싼 흰빛이 도도하고 부드럽게 붉은 불빛을 녹여냈다. 그 살결은 구원처럼 빛났다. 문득 오래전에 찢어버린 미완의 작품이 다시 떠올랐다. 주홍빛깔 속의 도도하고 부드러운 자태가 저 여자와 닮았었다. 성미는 그 사라진 작품에 한번 구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자꾸 눈이 여자로 향했다. 여자도 알았는지 성미 쪽을 흘긋 보더니 어색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균형이 잡힌 얼굴이구나. 그려내기 어렵겠다. 성미를 향해 여자의 얼굴 속에 자리한 황금비율들이 손짓했다. 미인일수록 그리기 어렵다. 미인의 몸은 모두 비율이 비슷하지만 그 비율로부터 아주 조금 튕겨나간 곳을 하나쯤 지니고 있다. 누구는 코가 매력이고 누구는 눈이 누구는 이마가 그 비율에서 약간 벗어나 인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일탈적 개성은 우스꽝스러움과는 다르다. 미인들의 일탈은 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저 여자의 경우에는 입술이 일탈하고 있었다. 육감적이지만 천하지 않고 수다가 아니라 고해에 어울리는 입술. 약간 열리면 어느 먼 곳까지 애틋함을 전할 수 있고 굳게 닫히면 누구도 열 수 없는 입술이 바로 저 입술이었다. 성미는 여자의 몸을 낱낱이 훑었다. 알몸이라는 것은 묘한 것이다. 인간은 오직 다른 알몸이 아니라 인간의 알몸에만 민감하게 주목한다. 미술대학 시절 살아있는 인간의 알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성미가 발견했던 것은 놀라운 경이였었다.
회화에 있어 가장 비밀스러운 것은 모종의 생동감이라고 성미는 생각했었다. 어떤 정확한 비율들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림 속의 그 인간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느끼도록 해준다. 어느 비율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 그림은 시체를 그린 것에 가까워지곤 했었다. 성미는 수백 장의 반(半)시체를 그리며 경악했었다. 그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 성미에게는 단순히 정해진 규범을 맞추면 된다는 것 이상이었었다.
신비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령 모순이란 그 뜻으로 하거니와 본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순이란 어느 날 갑자기 너무도 확실하게 나타나 인생의 문을 두드린다. 그때 사람은 아이러니한 신비를 느낀다. 또한 거대한 운명이 다가와 종래의 인생을 통째로 짓이겨버릴 때에는 초월적인 신비함이 도사린다. 하지만 성미의 마음을 매료했었던 신비함이란 지극히 비밀스럽고 첨예한 문틈으로만 이를 수 있는 신비였었다. 찬탄과 미혹만이 그 틈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었었다.
성미가 왜 그 신비한 틈새에 그토록 경이를 느꼈었는지는 성미도 몰랐다. 그 생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그것이 있는가. 성미는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었다. 그것은 추한 육체에도 깃들어있고 아름다운 육체에도 깃들어있다. 인간에 가까운 동물일수록 그 생기의 모호성은 줄어들고 살아있는 표현이 드러나는 폭은 첨예하게 좁아진다. 그런 점에서 그 생동감이라 하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무엇이라는 데에 성미는 이르렀었다.
하지만 그 생동감이 정말로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몸에 묻어있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 혹시 그것은 동세를 부여하는 착시현상의 한 종류에 불과한가. 그것은 형태를 넘을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색채의 조합으로도 현현할 수 있는 것인가. 성미는 다분히 작품을 그려내었었다. 그리고 추락은 다가오는 법이다.
성미의 작품은 사실주의를 표방하지만 극사실주의에는 이르지 못하는 작품들로 평가받을 뿐이었었다. 성미는 아랑곳도하지 않았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들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고 성미는 자주 외웠었다. 미술계는 성미를 이미 지나간 사조를 고수하는 키치 작가로 취급했었다. 잘나가는 초대작가들이며 화려한 신인들이 발견이라는 말과 발전이라는 말을 섞어대었었다. 작품의 가치는 운 좋은 예술가들 쪽에 착 달라붙었지만 모든 예술가들로부터 침식되어나가는 그 무엇이 있었었다.
왜 내 작품이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죠?
이 질문이 파고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은 예술가들의 자의식을 빨아들인다. 웬걸, 네 작품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누구도 되묻는 것을 원치 않았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묻는 것입니까? 당신은 왜 우리의 눈을 돼지의 눈으로 만들어도 되는지를 묻습니까? 왜 이것이 예술이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유보하는 중이신 겁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성미는 생각해보았었다. 사람이란 가벼운 만큼 소란스러운 부조리에 시달리고 무거운 만큼 을씨년스러운 부조리에 시달린다. 내가 파악할 수 없는 이유를 지닌 모든 것들은 나 스스로를 비유하기 때문이다, 고 성미는 생각했었다.
페인트 칠 몇 번으로 떼돈을 버는 사람과 인생을 바쳐서 죽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사람들이 미묘하게 공존했었다. 떼돈을 버는 친구들이 예술의 새 시대를 이야기했었고 자주 굶는 사람들은 예술이 이미 죽었다고 말했었다. 그리하여 살았는지 죽었는지 혼란한 틈에도 예술이란 몸 편한 사람들의 이념을 표방하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도 나름대로 울려대었었다.
성미의 옆에는 돈 많고 미친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 광기는 그 인간들의 깊은 바닥을 비춰주는 것은 아니었었다. 다만 단체광란의 파티 장에서 각각의 광기들은 얼른 교환되기만을 바랐었다. 서로가 보기에 미친 것은 오락적으로 미친 것이고 기실 일어나는 일이란 점점 더 미쳐 보이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 뿐이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아침에는 이름도 모르는 짝짓기 상대와 그토록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외로운 웃음을 지어보여야만 했었다.
성미는 갈팡질팡했었다. 빛이 있을 때는 모방에 불과하다는 조롱을 견뎌야했었으며 어둠속에서는 외로운 목청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르페 디엠을 견뎌야했었다. 전락은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나는 지금부터 전락하겠소, 하고 아무도 선언하지 않는다. 그냥 다들 그렇잖아. 그리고 놀라운 단체 하강이 벌어진다. 기실 아무도 미친 사람은 없었던 것이고 정신 똑바로 차린 채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이 하나둘 아이를 배어대었었고 가정을 꾸려대었었고 예술은 입맛에 따라 새 시대로 가든 돌아가시든 하였었다. 세상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이런 예술 저런 예술이 조화로웠었다.
어떤 종류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은 미지근하고 찝찝한 것일 수 있다. 성미의 전락이 그랬었다. 그것은 체념을 가미하여 덮어놓는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 젊음이 끝나는 것은 쌉싸름하지도 않고 달콤하지도 않다. 오히려 젊음은 어느 날 갑자기 접히고 접힌 압축으로 봉인되는 것이고 드넓고 황량한 광야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그 광야에 떨어진 사람은 처절하게 외롭지도 않고 유목의 달콤한 상념에 젖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성미가 마지막 그림을 포르노 잡지 회사에 넘기려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없애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 젊은 작품을 평생 지니고 갈 수 없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이해해줄 사람도 없었기에 누구에게 전해준다는 것도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차라리 같이 떨어져 죽자.
“어휴. 아무리 거저 주신다고 해도요. 그림은 안 실어요. 날고 기는 사진도 넘쳐나는데요. 그런데 무슨 그림이지요? 누드요? 좀 야사시한 속옷이 있는 거면 차라리 나은데 아무리 누드라도 털이 있으면 안 먹히거든요. 네, 이쪽에서는 소용이 없습니다만. 네. 네. 죄송합니다.”
성미는 그림을 죽죽 찢어발겼었다. 주홍빛깔 속에서 생동하던 하얀 육체는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버렸었다. 성미는 주저앉아 아주 크고 긴 웃음을 웃어대었었다. 성미는 그날부터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성미는 기꺼이 젊음을 잊기로 했다. 그냥 그랬다.
기척에 놀라 성미는 화들짝 깼다.
성미가 잠깐 졸았던 틈에 젊은 여자가 탕에 들어온 것이었다. 여자로부터 잔잔한 파도가 몰려와 성미를 향해 기웃거렸다. 눈빛이 부딪자 여자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일탈적 개성을 띄는 입술이 더 가까이서 성미의 눈길을 끌었다. 성미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여자는 입술을 핥았다. 여자는 스스로의 요점이 어딘지 아는 듯했다. 그 점이 성미의 마음에 들었다.
어쩜 미인이야. 아녜요.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언니야 말로요. 아닌 건 내가 잘 알아. 아녜요, 정말로요. 내가 예뻐서 뭘 하게. 아직 한창이신데요, 뭘. 사람들이 흔히 싸들고 다니는 말들이 오갔다. 아가씨는 뭘 해. 저는 학교 선생예요. 선생이시구먼. 네, 애들이 말을 잘 안 들어서 고생예요. 어떤 애들을 말하는 것일까. 자식일까, 아니면 학생들일까. 문득 저 여자가 아이를 원한다는 생각이 일었다. 힘들겠어. 정말 그래요. 정말 멀리 떠나고 싶어요. 다 털어버리고 말예요. 여자가 또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말도 사람들이 흔히 싸들고 다니는 말이 되었다. 넓은 세상에 가서 많이 배우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는 말은 그보다 덜 휴대되었다. 적당히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말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냥 미쳐서 확 돌아버리고 싶다는 말은 또 쏙 들어가 버렸다. 떠나고 싶다. 하지만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까지 미쳐버릴 것인가는 구실에 불과했던 때처럼 어디, 어디로 갈 것인가 역시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도 없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연히 돌아갈 곳을 찾고 싶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서 찾고 싶다는 것만 똑 떨어져서 가고 싶은 곳이란 말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여자가 어색한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언니, 저……, 등을 좀 밀어주실 수 있으세요? 저도 밀어드릴 게요.”
따뜻한 물에 그저 푹 담그러 온 까닭에 그것이 그리 달가운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가 말끝으로 입술을 깨무는 것이 또 한 번 성미의 마음을 끌었다. 두 여자는 탕 밖으로 나왔다. 여자는 까치발로 사뿐거렸다. 성미는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젊은 여자의 새하얗고 오목한 등판이 목욕탕의 주홍빛 허공에 생동을 응결하고 있었다. 거울 앞에 앉은 여자의 등 뒤에서 성미는 아련한 심정으로 등을 밀기 시작했다.


결말: 오소리 그림

성미는 베란다로 돌아왔다. 오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미처 거두지 못한 듯 희미한 잿빛이 아직도 오후의 하늘에 걸려있었다. 부력을 잃어버린 느낌뿐이었다. 상쾌함은 없었다. 두려움은 아닌가싶을 정도로 가슴이 선득선득하여 손이 떨려왔다.
아직도 그 가슬가슬한 감촉이 손끝에서 긁어대는 것 같아 치가 떨렸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도 없는 해변으로 가려고 해요. 이번 겨울에는 그 따뜻한 해변에서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일광욕이나 실컷 하고 싶어요. 여자는 말했다.
여자의 허리를 밀어주던 성미의 손이 우연히 미끄러졌고 여자의 깊숙한 곳을 스쳤다. 여자에게는 그곳의 털이 깎여나가 가슬가슬했다. 도리어 당황한 쪽은 여자였다. 어머, 위생 때문에요. 그냥 깎는 게 좋다고 해서요. 여자는 입술을 가렸다. 그 전에 거울 속에서 그 아름다운 요점이 일그러지는 것을 성미는 보았다.
저마다 화려한 것 한 가지를 지니고 떠나는 것. 털이 없는 그곳 그리고 실오라기도 없는 일광욕.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성미는 알 수 없었다. 기름이 기름때를 녹이듯 여자의 그냥이라는 말이 성미의 단단한 봉인을 녹여내고 있었다. 그냥이라니. 털이 없는 음부는 강렬한 시선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떠나기를 원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성미는 떨리는 손으로 붓을 잡았다. 팔레트 위에서도 캔버스 위에서도 불확실함 특유의 무채색들이 허공을 가로질러 손짓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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