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8회를 맞는 미디어아트서울은 ‘미디어 도시’ 서울의 특징을 나타내는 행사다. 이 행사는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는 미디어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올해 미디어아트서울의 주제는 ‘아시아’다. 지난 세기의 아시아는 식민시대와 냉전, 경제 성장과 급진적인 변화로 시끌벅적했고, 지금까지도 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번 <귀신 간첩 할머니>전은 이러한 아시아의 변화를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세 단어로 구체화해 다양한 미디어 작품을 전시했다.
 
 
식민지배, 그리고 정치 투쟁
미디어 작품이 많은 탓인지 전시실은 많은 방으로 나뉘어 있다. 1층 가장 안쪽 방에서는 익숙한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리케이드>라는 이 작품은 프랑스에 맞선 베트남인과 알제리인의 투쟁을 보여준다. 방은 다시 작은 방 두 개로 나뉘는데, 가운데를 거꾸로 쌓인 가구로 막았다. <레미제라블>의 투쟁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벽을 따라 알제리의 래퍼가 만든 노래가 흘러나온다. 프랑스 연합군과 베트남군 사이에 일어난 전쟁을 언급하는 노래는 우리에게 식민사회와 혁명, 그리고 문화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야오 루이중의 <만세>와 <만만세>라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두 작품 모두 제복을 입은 군인이 등장하는데, <만세>에서는 ‘장개석 만세’를 뜻하는 ‘치에쇼우 홀’에서 만세를 외치고, <만만세>에서는 국민당 체제에 반대하고 독립을 꾀했던 ‘타오위안 사건’이 일어난 곳에서 만세를 외친다. 폐허가 된 장소를 담아낸 화면과, 만세를 외치는 목소리의 대비에서 정치와 역사의 이면이 느껴진다.

사라지는 것을 작품으로 남기다
2층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은 김수남의 <한국의 굿: 만신들 1978-1997> 연작이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을 휩쓸던 그 시대, 한국의 굿은 산업화의 방해요소로 꼽히며 서서히 사라졌다. 사진기자였던 김수남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통 굿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나이토 마사토시의 <바 바 바쿠하츠(할머니 폭발)>도 무당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일본의 장님 무당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장면을 찍은 사진들은 기괴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과거의 유산, 오늘의 과제
3층으로 올라가면 북한을 다룬 작품이 눈에 띈다. 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라는 비디오 작품은 북한의 만수대 기념비과 에티오피아의 혁명승리탑, 세네갈의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비 등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머나먼 땅 아프리카에 세워진 동상에서 표상되는 북한의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이다.
프로펠러 그룹의 <쿠치의 게릴라들>은 두 개의 영상을 합쳐서 만들었다. 호치민 시 외곽에는 ‘쿠치 터널’이라는 터널이 있다. 이곳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남의 중요한 군 시설이었는데, 현재는 사격장이 조성되어 있다. 카메라는 이 터널에서 총을 쏘는 관광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움직인다. 작품은 이렇게 만들어진 사격영상과 1960년대 베트남의 선전영화 <쿠치 게릴라>의 오디오를 합쳤다. 관람객은 베트남의 선전 문구를 들으며 관광객의 사격행위를 지켜보게 된다. 수십 년 전의 전투장소가 오늘날 총을 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아이러니함, 영상과 오디오의 강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귀신’과 ‘간첩’, ‘할머니’는 우리가 외면해오던 존재지만 지난 시대 아시아를 상징하는 단어다. 귀신은 다양한 종교의 발원지이면서 현재까지도 민간신앙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시아를, 간첩은 식민과 냉전을 겪었던 시대의 아픔을 상징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런 귀신과 간첩의 시대를 견디고 살아왔던 증인이다. <귀신 간첩 할머니>에서는 지난 세기의 아시아를 다양한 미디어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을뿐더러 주말이면 판소리, 강연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우리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글/ 김하정 기자
hajung0206@kaist.ac.kr

기간 | 9월 2일 ~ 11월 23일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시간 | 10:00 ~ 20:00
요금 | 무료
문의 | 02) 2124-8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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