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불었을 때,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어느 어머니가 붙인 조그만한 대자보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너희들에게만은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
었는데…”라고 운을 떼, “이제 너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마무리하는 짧은 자보였다. 그분은 누군가의 어머니인 동시에 82학번 선배였다. 그 분이 대학생이었던 당시. 대학교의 아마 풍경은 최루
탄 연기에 얼룩진 스산한 회색빛이었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이어졌고 사복 경찰들이 학교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때다. 이들이 그 대학생활을 견뎌낸 이유는 아마 다음 세대에게 만큼은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12학번 이상의 학우들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우리 학교도 불신으로 가득 찬 몇 년을 보냈다. 학우들의 목소리를 담은 설문조사는 입맛대로 왜곡되어 언론에 뿌려졌으며, 대자보는 철거되고, 약속은 한낱 휴지조각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뙤약볕 아래 본관 앞에 책걸상을 놓고 공부 시위를 하던 이들은 적어도 다음에 입학 할 신입생에게 만큼은‘좋은 학교’를 물려주고 싶었다. 2년 전 지금의 고학번들이 만들려고 했던 ‘좋은 학교’는 과연 실현되었을까?

요즈음,‘ 문지게이트’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태를 둘러싸고 학내가 시끌시끌하다. 학내 커뮤니티 ARA에 혁신위원회에서 신입생 전원을 문지캠퍼스로 보내는방안이 비중 있게 논의되었는데 총학생회장단은 이를 숨기고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규탄글이 게시되었다. 총학생회 측에서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응수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서 학내 커뮤니티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지점 중 하나는, “아직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학교 측의 설명을 믿어야 하냐는 점이다.

2년 전까지, 우리 학교 학우들은 대학 평의원회 설립을 요구했다. 학우들이 교수님과 직원들과 대등한 위원으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원했다. 더 이상 보직교수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골치썩힐 필요가 없길 바랬다. 더불어 학생 사회가 보다 성숙해지길 기원했다. 선배들이 학생 사회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학번에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고 학교에 닥쳐오는 변화를 무시하지 않길 바랬다. 필요한 일은 공론화하고, 대표자는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해 논의하길 바랬다.

하지만 그런 ‘좋은 학교’는 아직은 오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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