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와 비이공계,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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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와 비이공계,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
  • 김동관 기자
  • 승인 2014.09.2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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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환수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공계와 비이공계를 나누는 명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이공계특별법과 시행령에서는 이공계/비이공계 전공과 산학연을 기존의 법령 등을 이용해 제시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해 실제 적용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한국장학재단은 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향을 바탕으로 이공계와 비이공계를 나누는 세부 기준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장학재단이 컨설팅 업체에 ‘이공계 연구장려금 환수 세부업무지침 마련 컨설팅 보고서(이하 컨설팅 보고서)’의 작성을 위임했다. 이 보고서는 이공계/비이공계 전공과 산학연에 대한 자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컨설팅보고서의 내용과 완성되지 않은 실제 환수 기준 사이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통해 한국장학재단이 만들고자 하는 이공계/비이공계 기준을 유추할 수 있다.

 

기준 모호한 이공계 전공 기준

이공계특별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공계 전공과 비이공계 전공의 기준은 ‘대학설립운영 규정’이 유일하다. 대학설립운영 규정에서는 대학의 학과를 ▲인문사회계열 ▲자연과학계열 ▲공학계열 ▲예체능계열 ▲의학계열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 중 이공계특별법에서 말하는 이공계 분야는 자연과학계열과 공학계열이다. 대학설립운영 규정에서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 등을 자연과학계열로 분류하고 있는 반면 이공계특별법에서는 의학계열로 분류해 이공계 이외의 분야로 분류된다.

컨설팅보고서에서는 대학설립운영 규정에서 제시한 이공계 기준에 이공계 교육 계열을 추가했을 뿐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없다. 또한, 신설된 학과의 이공계 인정 심의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있지만 심의 규정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합리적이지 못한 이공계 진로 기준

이공계특별법에서는 ‘이공계 산학연에서의 종사’를 ▲정부출연연구기관 근무 ▲이공계 대학의 대학원에서 학위과정 수학, 박사 후 연구원 종사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기술직 또는 연구직으로 근무 ▲이공계 대학의 부설연구기관에서 근무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에는 수혜자가 민간기업에 취업하거나 창업을 했을 경우에 대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컨설팅보고서는 취업 및 창업에 대한 기준으로 한국표준산업분류코드를 제안했다. 취업 혹은 창업한 사업체가 사업자등록증 내 종목 중 한국표준산업분류코드를 기준으로 구분한 이공계 분야가 있으면 이공계 취업 혹은 창업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체에서 개인이 담당한 업무의 내용을 중심으로 분류한 것이 아니므로 ▲금융업 ▲경제학 연구개발업 ▲변리사업 ▲제품 디자인업 등 이공계 인력이 필요한 사업체가 비이공계로 분류된 경우도 있다. 또한, ▲중고 자동차 판매업 ▲사진기 및 사진용품 소매업 ▲만화 출판업 ▲우편업 등 이공계로 보기 어려운 직군을 이공계로 포함하기도 했다.

 

이공계와 비이공계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가

이공계와 비이공계를 구분하는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이유는 학제 간 융합으로 이공계와 비이공계 사이의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학교의 산업디자인학과, 기술경영학과 등의 학과는 이공계와 비이공계를 넘나드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 학교의 문화과학기술대학원, 서울대학교의 기술경영정책대학원, 국민대학교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홍익대학교의 산업미술대학원 등 과학기술을 타 분야에 접목하고자 하는 시도가 국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공계지원특별법TF장을 겸하고 있는 김성은 총학생회 정책국장은 “과학기술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직군에서 이공계 인들이 활동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총체적 역량이 향상된다”라며 이공계특별법 및 컨설팅보고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공계/비이공계 기준을 비판했다.

 

이공계 기피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이공계특별법 일부개정령안 관련 규제영향분석서(2011)에서는 연구장려금 환수 조항 신설을 통해 ▲지속해서 이공계에 종사하도록 유도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이공계 기피현상 해소 등의 편익을 기대했다. 하지만 컨설팅보고서에서도 법안 시행 후 장학금 수혜자의 비이공계 진출 비율이 감소한다고 가정했을 뿐 장학금 수혜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A 씨는 “(이공계특별법은) 학생들의 이공계 이외의 진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라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으려 했던 이들에게는 이공계 기피의 새로운 원인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 중인 B 씨도 “장학금 환수가 아닌 이공계의 환경을 본질적으로 개선해야 이공계 기피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비이공계 진출이 국가과학기술 경쟁력강화에 반하는가

연구장려금 환수 조항의 입법 취지 중 하나는 장학금 수혜자들이 이공계가 아닌 분야를 진로로 결정해 ‘국가과학기술 경쟁력강화’라는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 경쟁력’이 대학이나 이공계 산업체라는 공간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현시대에 맞지 않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는 여러 보고서를 통해 이공계 학생들이 엔지니어나 연구원 같은 직업 뿐만 아니라 금융계, 법조인, 언론인, 수사관, 정부기관에 진출해 이공계 전문지식을 활용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 A 씨(로스쿨 진학자)는 “로스쿨을 진학하는 이공계의 경우 상당수가 지식재산권, 특허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부분에서 학부 지식을 유용하게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국내보다 이공계 학생들의 비이공계 진출이 활발하다. 예를 들어 MIT의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학생 중 35%가 컨설팅, 금융, 의료와 같이 이공계특별법에서 비이공계로 분류되는 진로를 선택한다. 김 정책국장은 “프랑스의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경우 이공계 지식을 갖춘 우수한 졸업생을 국가의 주요 관직에 포진시킨다”라고 말했다. 비이공계 진학자에 대해 장학금을 환수하고자 하는 이 법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규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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