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맥도날드에서 뜨거운 커피를 샀던 한 79세의 여성은 실수로 커피를 엎질러 피부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대부분 사람은 오늘은 재수가 없으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 대담한 할머니는 맥도날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그 결과, 법원은 맥도날드가 피부에 닿으면 수 초안에 화상을 입을 수 있을 만큼 뜨거운 커피를 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 이후 맥도날드는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화상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했고, 뜨거운 커피잔에 끼우는 종이 홀더를 만들었다. 소비자의 권리가 보장된 통쾌한 순간이다.

얼마전 이번 해 동아리방 재배치안을 보았을 때는 시원함을 느꼈다. KAIST 학생‘사회’에서 동아리방재배치안은 법이라면 법이다. 재작년과 비교했을 때 믿을 수 없이 촘촘하게 짜인 논리망 덕분에 올해 동방 재배치는 한결 취재하기 편했다.

하지만, 동방 재배치와 같은 학생들끼리의 일을 벗어난 현실에선 법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야박하다. 우리나라에서‘ 법대로 합시다’라는 말은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는 막장 중의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 뱉어지는 대사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따르고 이웃끼리는 정으로 뭉치는 인륜에 맞는 사회에서 법정에 나가 물어뜯고 싸우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이나 보다. 그래서일까, 이공계 장학금 환수 이슈가 불거지고 울상이 된 친구는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연구가 적성에 맞지 않아 기업에 영업직으로 취직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친구다. 줄곧 교비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녔는데, 꼼짝없이 돈을 돌려주게 생겼다는 것이다. “입학할 때는 그런 말 없었는데…”라며 풀죽은 청년이 해야 하는 말은 과연‘ 어쩔수 없잖아’일까? 

본지의 취재에 응한 변호사는 교비장학금을 환수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본지가 취재한 우리 학교를 상대로 기성회비 반환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변호사는“ 기성회비를 징수할 법적 근거는 없다”라고말한다.법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상식선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윗사람이, 국회의원이, 내 친구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헌법에 기초한 치밀한 해석에서 나온다.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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