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원 브랜드위원회 부위원장

지난달 29일, 우리 학교 새 UI(University Identity)가 발표되었다. 18년간 사용되었던 우리 학교 UI가 변화를 맞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브랜드위원회가 발족했으며, 1년이 넘는 기간동안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이 논의를 거듭했다. 브랜드위원회에서 우리 학교 로고가 거쳐온 변화와 시사점을 정리했다.
 
세상의 빠른 변화에 적극으로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상징하는 로고(Logo)를 잘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로고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대의 감각에 뒤처지게 되는 이른바 ‘진부화(陳腐化)’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물론 학교, 지방자치단체 등이 늘 신선한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우리 학교의 새로운 정체성 수립을 위해 2013년 봄부터 추진되고 있는 유니버시티 아이덴티티 (University Identity: UI)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KAIST 전체 구성원들의 관심과 협조 속에 다양한 대안을 검토한 결과, 기존의 워드마크를 리디자인(redesign)하여 이미 형성된 정체성을 이어나가는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한 마디로 기존 로고를 송두리째 바꾸는 급격한 변혁을 도모하기 보다는 전통의 가치를 승계하는 점진적인 진화를 선택한 것이다.
 
기존 디자인 콘셉트의 리디자인을 통하여 정체성을 개선함으로써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디자인 전략은 국내외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최근 사례로는 서울대학교 (2006년), 스타벅스(2011년), 스탠퍼드 대학교(2012년) 등을 꼽을 수 있다. 워드 마크(Word Mark)의 도입 배경 우리 학교의 UI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여 년 전의 일이다.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와 한국과학기술대학(KIT)이 통합되어 새롭게 출범한 KAIST를 상징하는 새로운 로고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993년, 산업디자인 학과장이던 필자는 홍창선 교무처장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임창영 교수 등과 로고 디자인에 착수했다. 수백 종의 아이디어 스케치 중에서 선정된 안들에 대한 여러 차례의 프레젠테이션과 난상토론 등 18개월여의 산고 끝에 워드 마크가 선정되었다. 명칭과는 별개로 기관을 상징하는 심벌마크를 디자인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던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접근이었다. 우주와 무한을 나타내는 긴 타원형 띠가 5자의 영문 머리글자와 상하로 조합된 로고는 당시에 화두였던‘ 세계화’에도 잘 부응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1995년 공식 로고로 제정되었다. 
 
▲ KAIST UI 변천과정 /정경원 교수 제공
 
UI 도입을 위한 노력
 
필자 등에게는 젊은 시절에 열정을 갖고 디자인한 워드마크가 자랑스러운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았으므로 종합적인 UI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당시에는 웹 사이트 등 디지털 환경에서의 사용에 대한 고려가 없었기에 빠른 시류의 변화에 뒤처진다는 문제도 생겨났다. 아울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교내에서도 워드마크의 디자인과 색채 등을 무단으로 변용하는 사례가 늘어나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필자는 2013년 3월, 새로운 UI 제정의 필요성을 건의하였으며, 학내외의 의견 수렴을 거쳐, 7월에 공모를 통해『 디자인파크』를 업체로 선정하였다. 또한, 대외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브랜드위원회를 구성하여 UI의 도입이 본격화되었다. 그간 디자인파크는 8회에 걸쳐 총 505개의 스케치 중에서 선정된 37가지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의견 수렴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견이 제기되어 최종안이 선정되지는 못하였다. 세 차례의 공청회 등 15번의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반영하여 기존 워드마크를 리 디자인하기로 방침을 정했으며, 지난 7월 23일에 개최된 제8차 브랜드위원회에서 디자인 파크가 제시한 안이 최종 후보가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1971년 창립된 우리 학교의 로고는 1995년 워드 마크의 도입에 이어, 제2세대 워드 마크를 갖게 되었다. 현재 디자인파크는 워드마크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한 지침은 물론 문장, 깃발, 명함, 서식, 유니폼, 안내표지 등 실제로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하는 데 필요한 지침과 예시로 이루어지는 응용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 KAIST의 새 로고 /정경원 교수 제공
 
새로운 워드마크의 특징
 
기존 로고의 특성을 이어가며 시각적으로 개선하는 리 디자인은 대단히 까다로운 작업이다. 얼핏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 주목받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워드 마크는 타원형 그래픽 모티프 위에 KAIST를 배치하여 기존 로고의 디자인 콘셉트를 이어가며, 형태적 완성도와 시대적 감성을 더했다. 청색 그러데이션으로 표시된 그래픽 모티프가 우리 학교의 핵심가치인‘ 도전’과 ‘창의’를 상징하는 두 개의 원이 만나 형성된 것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다. 그래픽 모티프와 로고 타입의 비례가 조정되어 안정감이 느껴지고 넓어진 간격으로 시원한 공간감이 더해졌다. 영문글자의 높이가 낮아졌고, ‘S’가 부드럽게 정리되는 등 로고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이스트가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과학기술의 중심이라는 의미가 잘 표현되었다.
 
▲ KAIST 신·구 로고 비교 /정경원 교수 제공
 
새로운 UI 도입의 효과
 
전체 구성원들의 커다란 관심과 적극적인 협조 속에 국내 최고라는 명성을 가진 디자인 업체에 의하여 추진되는 우리 학교 UI 도입의 의의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워드 마크에 대한 구성원들의 선호도와 애착이 매우 높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 점진적인 진화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조직의 통합이나 합병으로 정체성이 크게 바뀌는 경우에는 급진적인 변혁이 요구되지만, 지금은 점진적인 진화를 도모할 시점이라는 점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로고의 변화가 미세한 것 같지만, 조형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워드마크가 구태를 완전히 벗은 모습이다. 핵심가치를 상징하는 그래픽 모티프에 대한 의미가 명확해졌고, 세련됨과 안정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앞으로 명함, 서식, 싸인, 유니폼 등 다양한 활용 방법과 예시로 구성된 응용 편의 개발이 완료되면 UI 도입의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셋째, 새로운 UI의 도입 못지않게 체계적인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훌륭한 UI일지라도 규정화하여 잘 지키지 않으면 쉽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전통을 계승하며 디지털 환경의 변화에 잘 부응하도록 디자인된 새로운 UI의 도입을 계기로 우리 학교의 정체성이 한결 더 업그레이드되어 구성원들 간의 결속과 이미지 개선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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