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취재원이 그러시더라고요. “인쇄 매체 시장이 아무리 망해가도 신문은 ‘기록’이기 때문에 남이 있을 것이다”라고요. 맞습니다. ‘신문’은 기록입니다. 기록이기 때문에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고 걱정도 많이 하지요. 막 정기자가 되었을 무렵, 한 선배 기자의 ‘MIT“학업 스트레스는 좋은 유대감 형성의 기회”’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걱정하던 다른 선배기자의 얼굴도 떠오릅니다. 이런 식으로 제목이 나오면 나중에 이상한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기사가 쓰인다고요. 이렇듯 요즘, 저도 기사를 쓰면서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외국인 학우들의 수업을 받을 권리도 존중해 주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제목이나 슬쩍 보고‘ 외국인 학우를 위해 우리가 왜 피해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주장하면 어쩌지 같은 걱정 말입니다. 그리고 기사를 쓰면서‘ 우리나라의 여성 정책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라든가 ‘외국인 학우들의 수업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100% 영어강의가 실시되어야 합니다’같은 인터뷰 내용을 눈물을 머금고 잘라내면서 ‘기사가 사실을 전부 담고 있는 것은 아닌데 어떡하지’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글쎄요,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점은‘ 기사는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기록’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미래’를 위해서 기자는 기사의 방향에 맞지 않는 취재 내용을 잘라내곤 하거든요. 학우들은 기사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그 기사의 내용이 전부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말로, 한 번쯤은 스스로 기사 주제에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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