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서민 화가 박수근 탄생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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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서민 화가 박수근 탄생 100주년
  • 김하정 기자
  • 승인 2014.06.0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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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장 한국적인 화가’ 박수근의 탄생 100주년이다.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 중이다. 가나아트센터에서는 서울과 부산 갤러리에서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열었고, 그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에서도 기념전이 한창이다. 박수근은 누구고, 그의 작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엄선미 박수근미술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석(美石) 박수근 화백을 칭하는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국민화가’,‘ 서민 화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 가장 민족적인 화가’,‘ 소박한 화가’, ‘한국이 낳은 가장 세계적인 화가’ 등. 이러한 수식어를 통해 우리는 박수근의 예술혼과 작품세계가 한국미술의 발자취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미석 박수근, 그의 작품의 가치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통틀어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박수근 작품의 가치와 중요성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보자. 
첫째, 박수근 작품 속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그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하며 불운했던 시대를 함께 묵묵히 견뎌낸 이웃 서민들의 초상과 일상을 '진실한 마음과 선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둘째, 박수근의 작품은 독창적이면서 독보적이다. 그는 당시 국내와 국외에 미쳤던 현대미술사조의 흐름을 이해하고 습득하였으나, 그러한 조류에 휩싸이지 않고 나름대로 끊임없는 연구 과정을 통해 독특하고 독창적인 기법을 창안해냈고 이를 자신만의 것으로 승화시켰다. 
마지막으로 박수근 작품은 후세에 길이 보존되어야 할 한국의 문화유산이다. 51세의 짧은 생애 동안 늘 가난과 기근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도 붓을 꺾을 수 없었던 박수근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던, 말 그대로 전업작가의 삶을 살았던 박수근은 팔려야 하는 최고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였고 최대한 견고한 기법으로 그렸다. 자신의 배후 환경과 기량만을 믿고 값싼 재료와 테크닉에 의존했던 작가들의 작품 수명이 유한적이라면 박수근 작품의 수명은 무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작가적 삶의 철학이 확고했고 이를 성실하게 실천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박수근 작품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대대손손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괴테가 말했듯이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박수근은 그의 예술혼과 작품세계를 통해 이를 실천했고 작품감상을 하는 일반대중들은 모두 하나 된 정서를 느낀다.
 
박수근의 삶을 좇다
가장 민족적이며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린 박수근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다. 그는 1914년 2월 22일(음력 1월 28일. 평달. 갑인(甲寅)년 병인(丙寅)월 무인(戊寅)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 (정림리 131-1) 부근에서 태어났다. 정림리는 본디 좋은 약수와 대나무 숲이 무성해서 예전에는 정죽림리라고도 불렸다. 마을의 앞쪽으로는 서천이 흐르고 있으며 뒤로는 사명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박수근미술관 주변이 오래전부터 화강암 지대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사토를 들 수 있는데, 마사토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생긴 흙으로 화강토라고도 불린다. 마사토는 박수근 작품 세계의 근원 중 하나였다. 정림리 마을의 흙이 대부분 마사토였고, 그 마사토 위에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박수근은 <비둘기>처럼 화강암의 질감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 작품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세계를 이루어내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소박함을 드러내는 박수근의 작품 속 나무
박수근의 작품에는 유난히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나무와 두 여인>, <고목과 여인>, <귀로> 등의 유화작품들도 많이 있지만 벌거벗은 나무, 잎이 없고 열매가 없는, 마치 죽어 있는 듯한 추운 나무만을 그린 스케치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중에는 ‘박수근나무’와 같은 느릅나무의 형상을 지닌 나무들이 다수 등장한다. 우히도 느릅나무의 생태는 박수근의 예술철학과 많이 닮아있다.
느릅나무는 산골짜기나 산기슭의 축축한 곳에서 20~30m 이상 자라며 예로부터 서민들은 춘궁기에 어린 잎을 따서 국을 끓여 먹기도 하였다. 줄기와 껍질, 열매와 뿌리로 약재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잘 휘어지는 성질을 이용해 지게나 소의 코뚜레, 우산 손잡이 등의 생활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나무를 갈아 가루로 만들어 도자기 유약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민들의 생활에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느릅나무의 생태는 박수근이 평생을 그린 이웃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여인의 삶을 담아낸 그림
 
<빨래하는 여인>, <절구질하는 여인>, <맷돌질하는 여인>, <나물 뜯는 여인>, <아기 업은 소녀> 등 현재 알려져 있는 박수근 작품의 대다수가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임을 상기해보면 박수근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일에 천착해왔음을 알 수 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기의 박수근은 농사일을 돕거나 일찍 시집간 누나들을 대신하여 집안의 소일거리를 도왔다. 힘든 어머니와 함께 빨랫감을 들고 서천가로 나가서 빨래하는 동네 여인들의 모습도 그렸을 테고 절구를 찧는 어머니와 누이의 모습도 그때부터 그렸을 것이다. 또,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살림살이에 봄이면 어머니, 누이와 함께 산으로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녔을 것이다. 밀레의 <만종>과 같은 성스럽고 목가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던 박수근은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품세계를 체화시켜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선인의 정신세계를 자신만의 작품으로 승화하다
수백·수천 년 동안 바람길, 빗길로 깎이고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과 석불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숭고함’, ‘편안함’, ‘따스함’, ‘소박함’과 같은 정서일 것이다. 또한, 옛 선인들의 꼿꼿하고 흐트러짐 없는 정신세계에 대한 감동과 초연함이지 않을까 한다. 박수근은 그 아름다움을 조형화시키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했으며 결국 그 아름다움의 원천을 찾아냈고 이를 승화시켰다.

신라문화에서 찾아낸 아름다움, 탁본으로 남기다
박수근은 신라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경주를 자주 방문했다. 경주 남산에 자연과 더불어 일상처럼 펼쳐져 있는 화강암에 새겨진 마애불과 석탑들에 크게 감동했다. 그는 신라 토기나 석물 조각들을 수집하여 작업실에 두고 만지고 살펴보면서 작품기법에 대해 연구했다. 또한,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임신서기석>과 <마각문토기>, 영주사에서 출토된 <수렵문전>과 같은 희귀한 석물들을‘ 탁본’ 혹은‘ 프로타주’로 제작해보기도 했다. 
박수근은 요철기법을 다양한 장르에 수용하고, 변용하며 그 자신만의 독특한 질감의 완숙도를 높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박수근의 독특한 질감은 유화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수채화, 판화, 스케치, 삽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반영되었다. 

글 / 엄선미 박수근미술관장
정리 / 김하정 기자



 
<박수근 화백 탄생100주년 특별전>
100주년을 맞아 박수근의 고향인 강원도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에서도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02년, 박수근의 생가에 세워진 박수근미술관에서는 박수근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일뿐만 아니라 양구군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학술대회와 신인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수많은 사업으로 박수근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박수근의 흔적을 좇아 박수근미술관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기간 | 5월 3일 ~ 8월 3일 
장소 | 박수근미술관
시간 | 09:00 ~ 18:00
요금 | 일반 1000원, 청소년 700원 (월요일휴관)
문의 | 033) 480-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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