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습니다. 마감이 휩쓸고 간 편집실에 앉아 하늘이 열리는 광경을 보며 이번 호도 어떻게든 끝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새내기 학생회장 선거에 후보가 등록되고, 휴식을 주기 위한 대안 행사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부질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낍니다. 학생 사회가 꾸역꾸역 굴러가서 지면에 기쁜 소식을 다소나마 싣게 해준 것이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날이 밝긴 했지만, 지난밤은 길었습니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생활과 수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타국에 유학 온 외국인 학우의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습니다. 이들은 과연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영어강의라고 써 붙여 놓고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되는 수업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단 한두 명의 외국인 학우 때문에 수강인원 전원이 영어수업을 듣는다고, 애먼 이에게 눈을 흘겨본 적은 없으신가요. 그런데 의아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기성회비, 계절학기, 학칙 개정 등 학사 정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사에는 총학이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짧은 상식을 늘어놓아 보자면, 총학은 국적을 불문하고 우리 학교에 재학 중인 ‘모든’ 학우들의 대표입니다.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해 학교 당국에 개선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영어 강의가 한국어로 진행되어 수업 시간에 고통받는 외국인 학우의 실태를 다룬 기사에는 입학처, 국제협력팀, 교수, 외국인 학우가 등장할 뿐 총학생회는 없습니다.
 
너무 뻔하게 들리시겠지만, 하루 이틀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2011년, 4명의 학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해 비상학생총회가 열렸을 때도 외국인 학우들은 오히려 행동을 자제했습니다. 영어로 전달되는 정보가 적어 상황 파악도 혼란스러운데, 목적도 제대로 모르는 총회에 참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급박한 시간이 지나가고 학교가 평화로워진 후에도, 중운위와 전학대회 등 학생 사회의 주요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에서 외국인 학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올해 총학은 외국인국을 신설하고, 학생회칙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인 학우에게도 학생회비를 걷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소외했던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인제 그만 수업을 들으러 가 보겠습니다. 다행히 외국인 학생이 없어 한국어를 곁들여 수업해 주시는 영어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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