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란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여러 나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현상이다. 우리 학교도 세계화에 발맞추어 많은 외국인 학우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학교의 잘못된 언어 정책으로 인해 외국인 학우들은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강의를 들으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인 학우 역시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들과 쉽게 교류할 수 없어 ‘글로벌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이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

▲ 곽해찬 기자


<한국어로 진행되는 ‘영어 강의’>

“영어만 할 줄 알아도 KAIST에서 살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학교 강의의 87%는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13%의 강의가 대부분 교양수업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 학교는 실질적으로 모든 전공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섭 입학처장은 이를 근거로 들며 “우리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외국인 학생에게 영어만 알아도 ‘생존’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라고 말했다.

Guohao Lan 학우(전산학과13)도 “KAIST에 지원할 때, 한국어에 대한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라며 “이는 학부 과정을 지원한 학생이든, 대학원 과정을 지원한 학생이든 마찬가지였다”라고 증언했다.

강의 계획서와는 다르게 한국어로 진행되는 ‘영어 강의’
몇몇 강의들은 학사시스템의 강의 계획서에는 강의가 영어로 진행된다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한국어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수업을 한국어로 진행하기 위해 몇몇 교수들은 일부러 외국인 학우가 강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강의 첫 시간에 교수가 수업을 들으려고 온 외국인 학우에게 “이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하니, 외국인 학우들은 미안하지만 다른 수업을 들어달라”고 말하며 외국인 학우들을 쫒아내는 것이다.

Lan 학우는“ 지난 학기에 강의 계획서에 영어로 진행한다고 안내되어 있던 강의를 수강했다”라며 “하지만 그 강의에 외국인 학생은 나 하나밖에 없었고, 교수는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했다”라며 실제 수업이 공지된 사실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불평했다. 이어 Lan 학우는 “계속 한국어로 수업하는 교수에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미안하다는 말만 할 뿐 학기 내내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했다”라고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기해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Hatice Ozge Ozguldez 학우(바이오및뇌공학과 11)도 “이런 문제를 교수한테 제기하면 교수가 화를 내거나 무시하기 때문에 말하기가 겁난다”라며 외국인 학우들이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Baburam Bhattarai 학우(생명과학과 석사과정)는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이해해보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수업에서 사용되는 한국어가 복잡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Bhattarai 학우는“심지어 요즘은 학과 세미나같이 필수인 과목들도 한국어로만 진행되기도 한다”라며 한국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질의 응답 시간
한편, 수업 시간 중에 학우와 교수가 질의 응답 시간에 한국어를 사용해서 불편을 겪는 외국인 학우들도 있었다. Bourbia Amine 학우(전산학과 석사과정)는 “나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를 선택한다”라며 “그러나 몇몇 한국 학생들이 한국어로 질문하고, 이에 대해 교수님도 한국어로 대답한다”라고 영어로 진행되어야 할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 도중에 빈번하게 한국어가 쓰이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어 Amine 학우는 “한국 학생들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것처럼,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에 서툰 건 마찬가지다”라며 영어가 어렵다고 한국어로 수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Jabir Ali Ouassou 학우(물리학과 석사과정)는 “교수가 수업의 중요한 부분은 영어로 설명하고, 그 이후 추가적인 설명을 한국어로 하곤 한다”라며 “이런 부가적인 설명은 나의 수업 이해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고, 한국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괜찮다”라고 수업에서 어느 정도의 한국어 사용은 용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 수업, “차라리 안 들을래요”
한국어로 진행하는 강의를 들은 외국인 학우들은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더 낫다”라며 불평하고 있다. Thales Ferreira 학우(전산학과 13)는 “수업 시간에 한국어를 들으면 집중이 흐려진다”라며 “한국어를 듣는 순간 수업의 흐름을 놓치곤 한다”라며 한국어로 수업을 들을 때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처음부터 한국어라고 공지해주세요”
강의 첫 날, 신청한 강의에서 쫓겨난 외국인 학우들은 수업을 한국어로 진행할 예정이라면 차라리 이를 미리 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Lan 학우는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수업하는 강의가 많은 것은 이해한다”라며 한국어로 진행하는 수업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어로 수업을 한다고 미리 써 놓았으면 신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며 “강의 계획서에 영어로 진행한다고 했으면 학기 내내 영어로 진행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Bhattarai 학우 또한 “교수들이 미리 강의 계획서에 공지된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수업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지시해 달라”라고 요구했다.

 

<한국어 강의는 필요하다… 대책은>

한국어 수업, 학생들을 돕기 위한 것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은 학우들의 이해도와 수업 참여도를 높여 질 좋은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어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작년 8월에 발행된 KAIST 교수협의회보에서 전자및전자공학과 송익호 교수는 “학생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라며 “외국어 강의도 개설하되, 한글 강의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기계공학전공 임세영 교수는 “구체적인 문제는 현장에 있는 담당교수가 가장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라며 “모두 영어강의를 하라는 획일적인 방침을 따르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가르치는 교수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라고 밝혔다.

한국어, 영어 강의 각각 개설해야
이 처장과 유 처장은 먼저 이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면 영어강의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면 영어강의 시행이 불가능하다면 그 대책으로 같은 강의를 한국어와 영어로 각각 진행하자고 말했다. 단,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는 외국인 학우가 한명만 듣더라도 개설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한국어 교육 개선되어야>

“외국인 학우에게 한국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학교는 외국인들이 생활하기 쉽도록 학우들이 캠퍼스에서 영어를 쓰도록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학우들이 한국어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유창동 국제협력처장은 “외국인 학생도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외국인 학우들의 한국어 교육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유 처장은 단지 한국인 학우의 편리 때문이 아니라, 외국인 학우들도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문화 하나를 더 익힐 수 있고 그로 인해 스스로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학우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KISA(외국인총학생회)의 홍보심의관인 Edrick Kwek도 “대부분의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며 대부분의 외국인 학우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데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많이 노력한다고 전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KAIST의 한국어 교육
우리 학교는 현재 인문사회과학과에서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 등의 한국어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실생활 위주의 한국어가 아닌 기초적인 수준의 한국어를 가르쳐 외국인 학우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Kwek 홍보심의관은 “한국어 수업을 들은 학우들의 말에 따르면, 한글 등 한국어의 기초를 배우기에는 좋은 강의였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업으로 한국어를 배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KAIST 어학센터 한국어 강좌, 현실적으로 듣기 어려워
KAIST 어학센터에서도 ‘TOPIK(한국어능력시험)’, ‘Korean conversation’ 등 다양한 한국어 강좌를 제공한다. 하지만 Kwek 홍보심의관은 “어학센터의 한국어 강좌는 외국인 학생이 학기 중에 듣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강좌들이 저녁시간에 열려 동아리 모임이나 실험 시간에 겹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강좌가 같은 시간에 열려 다양한 강좌를 들을 수도 없다. 수강 정원도 12명으로 적고, 신청 시 수강료도 내야 해서 외국인 학우들이 쉽게 강좌를 신청할 수 없는 실정이다.

 

<더 높은 한국어 실력 요구할 필요도>

저학년 외국인 학우, 한국어 못 한다
우리 학교는 외국인이 입학할 때 따로 TOPIK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졸업조건으로 TOPIK 2급을 취득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문에 저학년인 외국인 학우들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해 한국 학생들과 쉽게 친해질 수 없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Kwek 홍보심의관도 “TOPIK 등 한국어 자격증 시험 준비는 대부분 2학년 때부터 한다”라며 “때문에 고학년 외국인 학생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만, 저학년인 외국인 학생은 한국어를 거의 못 한다”라며 저학년 외국인 학우가 한국의 문화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TOPIK 기준 강화해야
이 처장과 유 처장은 외국인 학우들이 한국인 학우들과 더 많은 교류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TOPIK 기준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처장은 “KAIST에 들어오기 전에 TOPIK을 미리 취득하는 것이 좋다”라고 밝혔다. 반면, 이 처장 “TOPIK을 졸업할 때가 아닌 저학년 때 취득하도록 권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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