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은 유달리 슬픈 소식이 많았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소식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젖어 있는 가운데, 지난 28일에는 우리 학교 학부 학생 한 명이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 캠퍼스에서 함께 공부하고 생활한 동료의 희생을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 안타까운 희생을 앞두고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다시는 이와 같은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반성하고 스스로 삶을 성찰하며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을 안고 있는 동료가 없는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는 몇 해 전 학생들과 교수가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픔을 겪었다. 그때 우리는 자살 방지를 위한 위기 대처 매뉴얼을 만들었고,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줄 수 있는 제도들을 확충해 나갔으며, 동료, 선후배, 제자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 했다. 우리는 그렇게 노력해 왔지만, 또 한 명의 동료를 잃는 아픔을 막지는 못했다.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제도로서 많은 부분 예방할 수 있지만,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례다.
 
또 한 명의 동료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내 앞에 놓인 문제에만 매달려 나보다 더 절박한 문제를 앞에 두고 허우적거리던 동료의 아픔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알프레드 알바레즈는 『자살의 연구』에서 자살을 “치명적으로 실패한 간절히 도와달라는 외침”이라 정의했다. 자살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또 한 명의 젊은이 떠나보내며, 어쩌면 지금 이 시각에도 세상을 향해, 우리를 향해 도움을 요청하는 동료의 절박한 외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우리 학교인 만큼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는 클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절망하고, 세상이 두려워지고, 삶의 의욕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꼭 학업만이 아니다. 누구나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 한두 가지씩은 지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애석하게도 인생을 뒤흔들 만큼 본질적인 고민은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라 하더라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업 문제, 연애 문제에 대해 부모나 친구라고 뾰족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줄 리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록 고민을 해결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견딜 힘을 줄 수는 있다. 가정의 달 5월, 또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내며 우리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하면서 제도를 보완해 나가는 한편 사랑하는 친구, 선후배, 스승, 제자, 동료의 아픔에 공감할 기회를 만들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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