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김완두 멘토

세계 최초의 비행기는 새들이 날며 날개를 비틀어 비행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본떠 만들어졌고, 에펠탑의 매끈한 구조는 인간의 넓적다리뼈의 밀도와 방향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렇듯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빌려와 인간의 문명은 많은 성취를 이루었다. 이렇게 자연을 '공학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학문이 바로 자연모사 공학이다. 까다로운 수학 공식이나 물리 법칙을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새의 날개와 인간의 넓적다리 그림을 보며 설명할 수 있는 자연모사 공학은 단연 인기다.  
의 아홉 번째 멘토는, '자연모사'란 단어를 처음 만든 장본인이자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이 분야를 진두지휘하는 김완두 박사다

다소 생소한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지원한 이경헌(기계공학전공 박사과정) 멘티와 이태환(해양시스템공학전공 석사과정) 멘티가 한국기계연구원을 찾은 것은 9월 29일 오전 10시 반 무렵. 본관 3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와 함께 멘토의 연구실을 찾았다.
사진보다 훨씬 젊고 환한 모습의 김완두 멘토는 ‘외모 순서로 멘티를 뽑았구먼'이라 농을 던지며 멘티들에게 악수를 건넨다. 이경헌 멘티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외모 순서가 꼭 위부터는 아니고요'라 웃어넘기며 모임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태환 멘티는 학부 때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해양시스템공학을 공부하는 석사 1년 차 학생이다. 농구와 수영, 스키를 좋아해서 학부 때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다는 이태환 멘티에게 멘토는 일도 놀이처럼 즐기면서 하라고 당부한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태환 멘티가 공부하는 ‘해양시스템공학'으로 옮겨간다. 멘토는 현재 진행 중인 4대 강 살리기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구되고 있는 ‘물고기 로봇'을 화두로 삼았다. 물고기 로봇을 강에 풀어놓으면 4대 강의 오염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데다 관광 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영국에서도 3년 후 템즈 강 방류를 목표로 하는 등 여기저기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멘토는 이런 사례를 들며 이태환 멘티처럼 해양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연구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준비한 프로젝터 영상을 통해 공기 중에 유영하게끔 한 가오리 로봇을 소개하며 KAIST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연구라는 뜻도 내비친다.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태환 멘티에게 향후 진로를 물으며 멘토는 공부할 수 있을 때 할 것을 조언한다. 석사를 마치고 현장에 나가서 새로운 것을 파고드는 것보다는 박사과정을 통해 깊이 있게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로 멘토 역시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다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중간 단계를 거치게 되더라도 그 기간을 줄이는 것이 전문가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멘토의 경험에 근거한 충고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멘토의 말을 경청하던 이태환 멘티가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현재 멘토의 연구를 비롯한 학제간의 융합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서 동시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다는 멘티의 말에 멘토도 동의하며 말을 이어간다. 융합기술에 대한 포럼이나 학회에서 늘 나오는 말이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고 주변 학문을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일단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개척하고 나서 다른 분야를 진행하라는 조언에는 멘토 자신의 경험담이 곁들여진다.
멘토가 기계공학에서 전공한 분야는 금속의 피로 수명을 예측하고 최적화시키는 ‘피로 및 파괴에 관한 연구'였지만, 이어서 관심을 확장한 주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못했던 ‘고무의 피로 및 파괴'에 대한 연구였다. 1만큼 힘을 주면 1만큼 변형되고 2를 주면 2가 변형되는 쇠와는 달리 1만큼 힘을 주었을 때는 1만큼 변하지만 2를 주었을 땐 10이 변형되는 비선형성을 띈 고무 연구는 실생활에서 엄청난 수요를 갖는다. 당시에 국내에 관련 연구가 진행되지 못해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하는 데 있어 많은 애로사항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고무의 피로 파괴' 연구에 집중해 10년 안에 10만 마일을 달릴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을 정도로 멘토는 연구에 집중했다.
현재 멘토는 물방울이 맺히지 않는 연꽃잎과 같이 표면 구조에 의하여 특정한 친수성 혹은 소수성 성질을 증폭할 수 있는 나노구조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인간의 귀의 섬모 기관을 모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 역시 멘토가 이제껏 주력해온 자연모사 분야의 연장선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전문분야에 탄탄한 기둥을 세운 후, 이를 바탕으로 가지를 쳐야 한다는 말로 멘토는 융합 학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경헌 멘티 역시 박사과정에 들어오며 광학과 화학, 생물학까지 공부해야 할 범위가 너무 많은 것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멘토는 너무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아무리 내 옆에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모든 것에 앞서 있을 수는 없을 뿐더러 보는 각도도 다르다는 것이다.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코웍(Co-work)이다. 하나의 예로, 현재 멘토가 진행하고 있는 파이오니아 사업 과제에는 서울대 전기전자과와 서울대 의대 이비인후과, 전북대 신소재학과 등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협력해서 달팽이관을 모사한 인공 청각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이에 필요한 기술은 무척 다양하다는 것이 멘토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코웍을 하는 것 이상의 방법은 없으며 이것 자체가 융합학문이라는 멘토의 말에 멘티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많은 젊은이에게 주요 화두인 취업에 있어서도 멘토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강조한다. 삼류 기업은 모르겠지만, 세계 일류 기업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에 새로운 기술을 찾아 접목하길 원하며 이를 잘 파악한다면 결코 취업의 스트레스에 억눌려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연구되고 있는 연꽃잎 효과 소재가 개발되면 자동차는 더는 수시로 세차해 줄 필요가 없게 되며 궂은 날에도 뿌옇게 흐려진 유리창 때문에 사고 걱정할 일은 없어지게 된다.
학문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근처 샤브샤브 요릿집으로 자리를 옮긴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평생 연구만 한 과학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한 멘토는 멘티들에게 말하고 쓰는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거듭 이야기한다. 과학자도 누구든지 설득시킬 수 있는 쉬운 글을 쓸 줄 알아야 하며 이 역시 훌륭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멘토의 조언에 이경헌 멘티가 고개를 끄덕인다.
모임이 끝나고,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악수로 인사하는 이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진다. 2년 후, 20년 후 이들은 연구의 동지이자 인생의 멘토, 멘티로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일도 놀이처럼 즐겁게'하고 있을 이들의 즐거운 미래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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