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교문 밖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연극 ‘모범생들’에 나오는 명대사이다. 상영될 당시에 공연 기간이 3주씩이나 연장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던 이 연극의 연출가는 바로 우리 학교를 3학년 때 자퇴하고 연극의 길로 빠져든 김태형 씨다. 2014년 4월, 대학로에서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와 뮤지컬 ‘아가사’를 동시에 연출하고 있는 김태형 씨를 만나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을 꿈꿔왔지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에 관심이 있었고, 실제로 많은 연극을 만들었습니다. 한성과학고등학교의 연극동아리인 ‘유리탈’에서 연출과 연기 등을 했었지요. 그중에서 저는 연기를 하는 배우보다는 연출가 쪽이 좋았어요.

공연을 마치고 나니 처음으로 예술을 통해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연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로 인상깊었어요.

 

‘브레히트’처럼 연극으로 제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요
KAIST 재학 시절, 교양으로 ‘연극 영화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어요. 이 수업에서 제가 속해있던 연극동아리 이박터와 다른 연극동아리 커튼콜과 함께‘ 브레히트’를 주제로 연극을 했습니다.

브레히트는 독일의 연출가로 연극을 통해‘ 사회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브레히트 이전의 연극은 관객이 공연에 몰입해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파시스트들은 민중이 공연에 몰입하게 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만들곤 했어요. 일종의 정치적 수단으로 연극을 사용한 것이지요. 반면, 브레히트는 관객이 공연에서 한 발짝 멀어져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그래서 ‘관중에게 말 걸기’ 등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사용해서 관객이 연극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지요. 브레히트는 이런 과정을 통해 민중들이 봉기하기를 원했어요. 안타깝게도 브레히트의 혁명은 실패했지만, 브레히트의 연극 기법만은 참신하다는 호평을 받아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저는 20살 당시 막연하게 사회 변혁을 일으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회 혁명을 위해 노력한 브레히트를 존경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도 제 목소리를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극 하기 위해 큰 결심을 했지요
저의 사촌 형들은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 들어갔어요. 이런 집안 분위기를 따라 저도 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 96학번으로 입학했어요. 과학고에서는 내신만 유지하면 KAIST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오고 나니 학교 공부가 재미없었어요. 수학, 과학에 대한 열정이나 흥미가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어요. 친구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제 미래에 대한 걱정도 커졌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느 회사의 과장이 되거나 벤처사업을 하는 미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더 보람찬 삶을 살고 싶었어요. 좀 더 예술과 가까워지기 위해 3학년 때 전기및전자공학과에서 산업디자인학과로 전과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문득 제 삶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동경하고 있던 연극 활동을 전문적으로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결국 자퇴를 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어요. 돈을 지원해 줄 수 없다고 하자, 이박터 선배들이 입학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논리적 사고는 예술 공부할 때도 큰 도움이
연출 공부는 많이 어렵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쌓아온 공부하는 요령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문제를 풀거나 증명하면서 익힌 논리적 사고가 공부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논리적 사고는 대본을 볼 때도 도움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보통 감정회로가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논리적인 이유 없이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말하는 와중 갑자기 제가 막 운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야기하다가 나온 단어나 흘러나오는 음악 등이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이겠지요. 이런 식으로 감정의 원인이나 흐름을 논리적으로 따져가는 것이 대본 속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인물이 이 장면에서 왜 이런 행동을 취하며, 그 행동이 과연 합당한가?’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지요. 이런식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연극을 구성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연출가 데뷔부터 지금까지
저는 연극 ‘5월에 결혼할꺼야’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어요. 원래는 조연출을 맡고 있었지만, 당시 연출가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빠졌지요. 덕분에 제가 연출을 맡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모범생들’입니다. 사실, 이 연극의 연출가 제의가 오게 된 이유는 제가 KAIST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었어요. 이 연극은 엘리트에 관한 현실을 비꼬는 이야기거든요. 덕분에 과학고등학교, KAIST에서 느꼈던 생각이나 정서가 떠올라 애착이 갑니다.

요즘은 ‘히스토리 보이즈’를 연출하고 있어요. 이 연극은 엘리트 학생들의 이야기라 역사, 교육, 물리에 대한 깊은 내용이 들어있고, 참고자료도 많아 연출이 힘들었어요. 어렵지만, 지적이고 매력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본질 탐구하는 SF 연극 만들고 싶어요
보통 이과생들이 SF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도 SF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나 연극에서는 SF장르 작품이 얼마 없어요. 요즘 연극은 20, 30대여성들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제 주변의 이과생 친구들이 술 마실 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보러오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보통 SF라고 하면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려한 액션신을 떠올리곤 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액션이 있는 연극이 아니라, 인간 본질과 본성을 탐구해보는 연극을 하고 싶어요. SF에는 현실에 없는 존재들이 나와요. 사이보그 등이 그런 존재들이지요. 이런 것들은 사람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감정이 부족하거나, 죽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어요. 이런 차이점을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치 실험에서 대조군과 실험군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다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듯이, SF를 통해 현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지요. 이렇게 저는 연극을 통해 인간을 탐구해보고 싶어요.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뭐든지 끝까지 해보세요
지금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KAIST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KAIST 학생들에게 3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모두 즐기고 누리면서 살아보세요. 뭐든지 하나를 정해서 끝까지 즐겨보세요. 학교 공부, 동아리, 연애, 게임 무엇이든지 상관은 없어요. “게임에 빠져서 인생이 망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KAIST 학생들은 근성이 있어서 다들 어느 순간이 되면 정신을 차리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누릴 수 있는 거 다 누리고 살아보세요. 그리고 뭐든지 끝까지 해보고 나면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제가 공부했던 경험이 연출할 때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다가 언젠가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우리처럼 다 누리면서 살지 못했어요. 그런 타인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세요. 요즘 계속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열심히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인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를 해보세요. 그 내용들이 미래에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