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잃은 사회를 재구성한 '액체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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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잃은 사회를 재구성한 '액체문명'
  • 정광훈 기자
  • 승인 2014.04.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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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는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넘치기도 한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나날이 변하면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액체에 비유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새로운 문물이 물밀 듯이 유입되는 시대를 거쳤던 한국과 중국의 예술가들은,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 속에 놓인 현대인의 모습을 작품에 녹여냈다. 한·중 12인 현대작가들이 모여 선보인 ‘액체문명’이 중국 북경의 송주앙미술관, 화이트박스미술관과 협력해 지난달 2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진행된다.

 

리웨이

리웨이는 고층 건물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이나 기차와 함께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스스로 모델이 되어 연출해 사진으로 담아냈다. 사람을 허공에 묶은 줄을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서 지워 실감 나는 장면을 선보였다는 점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고층 건물 창문에 매달린 남자를 촬영한 그의 작품 <29층의 자유(29 levels of freedom)>는 급진적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 중국의 사회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진 속의 남자는 허공 속에서 위태롭게 허우적거리며 창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실 속으로 내던져진 현대인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드러내려 했다.

 

왕칭송

왕칭송은 중국의 미술 혁명인 85 신조 미술운동을 겪으며 서양 미술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기존 중국에서 주류를 이루던 다큐멘터리식 사진에서 벗어나 행위 예술과 설치 미술을 사진에 담았다. 그의 연작 <Follow>는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외국의 문화와 중국의 고유 모습 사이에서 길을 잃은 중국인들을 풍자한다. 작품 속에는 ‘맥도날드’, ‘나이키’와 같은 다국적 상표들과 영어 문장들이 벽면에 휘갈겨져 있고, 이를 가르치고 배우며 고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작품 속의 낙서는 서양의 대표 문물인 자본주의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깊은 내용이 담겨있지 않은 글과 그림의 나열일 뿐이다. 연작 중 하나인 <Follow you>는 서구 지식을 공부하던 중 지쳐 엎드려있는 중국인들을 사진에 담았다. 왕칭송은 사진 속 인물들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함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작품에 등장해 희극적 요소를 더한다.

 

이창원

이창원은 빛과 그림자와 같이 단순한 광학적 원리만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 한편의 대형 암실에 설치되어있는 <평행세계(Parallel World)>는 신문에서 사진을 오려내 빛과 거울을 이용해 사물의 모양을 벽에 비춘다. 그가 이용하는 사진 속의 사물은 구제역으로 죽어가는 가축, 인간의 횡포로 멸종 상황에 처한 조류와 같이 위기에 놓인 자연물이다. 이런 사물들의 실루엣은 그의 작품에서 동물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으로 재탄생한다. 미디어가 고발하는 참극을 무시한 채, 자연의 아름다운 면모만 바라보려는 인간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한진수

한진수의 주된 작품 소재는 기계다. 그의 기계는 무엇을 바르게 정렬하기보다는 흐트러뜨리기 위한 기계다. 붓을 돌려가며 무작위로 섞기도 하고, 거품을 내서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무질서한 과정을 통해 기존의 모습을 해체하고 사물의 형상을 재구성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전시장의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White pond–the moon>은 회색 원판과 모터로 구성된다. 원판 위에는 비둘기 인형의 머리와 갈기갈기 찢긴 깃털이 놓여있다. 그 옆에서 깃털이 연결된 모터 두 개가 돌아가고, 그 깃털을 붓으로 삼아 흰 물감과 검은 물감을 주변에 흩뿌린다. 물감이 뿌려지면 뿌려질수록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의 색이 점점 흩어지면서 어두워진다. 이런 기계적인 움직임과 색깔의 변화는 현대인의 암울한 모습과 타인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 보는 작가의 시선을 잘 나타낸다.

 

기간 | 3월 20일 ~ 5월 11일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3층

시간 | 10:00 ~ 20:00

요금 | 무료 (월요일 휴관)

문의 | 02) 2124-8941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글/ 정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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