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란 의미가 있는 걸까? 그 놈의 박사학위를 제외하고 말이다. 박사 하나 받는 다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대한 늬우스 시절에 다 끝났는데”
 
지난해 카이스트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을 수상한 <과학 논문 작성에 대한 고찰>의 일부분이다. 이 작품은 뜻밖에도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여간해선 조회 수 천을 넘기도 힘든 게 학보사 누리집 기사의 현실이건만, 조회 수 2만을 시원하게 돌파해버리더니 일간지가 운영하는 웹진에서 게재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다. 
 
잠시 소개하자면, 우리 학교 박사과정 학우가 집필한 이 작품은‘ 우리는 왜 논문을 쓰는가’에 대한 물음을 논문 형식으로 풀어내는 소설이다. 초록부터 서장, 관련 연구, 본론, 결론 그리고 참고 문헌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논문 형식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아마 <과학 논문 작성에 대한 고찰>이 약소하게나마 히트를 한 것은,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뛰어난 표현력이나 유려한 흐름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 논문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만 결국 논문 형식의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의 삶이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공감’이라고 부른다. 실험에 쫓긴다고 울상을 지으면서도 드라마를 볼 시간은 있는 생활을, 별것 아닌 발상을 사소한 칭찬에 이끌려 덜컥 연구 주제로 잡아버린 모습을 우리가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짙은 공감이 배여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해 ‘핵심가치제정위원회’를 꾸려 구성원들이 공유,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찾겠다고 했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런데, ‘도전’과 ‘창의’가 우리 학교의 핵심 가치로 선정되더니 얼마 전에는 교육·연구혁신위원회가 발족했다. 실사구시형 공학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기업가정신 교육과 실험·디자인 수업 강화, 특허와 지적 재산권에 대한 교육 등을 구상하고 있단다. 교수 평가 모델 또한 생애주기형 평가, 특허의 질, 경제적 성과 등 다양한 지표를 도입하는 방향을 의논하고 있다. 정부가 요즘 적극적으로 창업을 장려한다더니, 우리 학교의 교육 및 연구 방침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듯하다. 
 
앞으로 닥쳐올 변화가 학내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동의하는 방향일지 그저 정부의 정책에 편승하는 방책일지 아직은 전혀 알 수 없다. 이번에도 학생 대표는 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다던데, 그저 학우들의 공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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