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있던 건물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역사적인 가치평가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의 편의를 위해 기록도 없이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이 많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건설 후 50년이 지난 건물 중 문화, 역사적 가치가 확인된 근대의 유산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등록문화재로도 보존하지 못해 잃어가는 유산이 많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당시 문화를 잘 반영하더라도 역사적 가치가 부족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유산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자체적으로 미래유산을 지정해 그런 문화유산들을 보존하려 하고 있다.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소를 추천 받고, 심의를 거친 후 300여 개의 미래유산을 지정했다. 서점, 다방, 이발소에서부터 여관과 목욕탕까지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면 무엇이든 미래유산이 될 수 있다.

미래유산은 우리 옆에 있다. 다른 어떤 유산보다도 사람들의 삶 가장 가까이에서 같이 살아온 존재다. 서울시에서 지정한 미래유산 중에서 성우 이용원, 삼일로 창고극장, 학림다방, 대오서점을 다녀와 보았다.

성우 이용원은 만리시장 한가운데에 있다.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올라가다 배문고등학교에서 내리면 시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학교 앞 골목으로 들어가면 새로 지어진 건물 사이에서 존재감을 빛내는 성우 이용원이 있다. 얼핏 보아도 오래되어 보이는 간판과 건물은 금방 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성우 이용원은 1927년에 조선인으로는 두 번째로 이발사 자격증을 땄던 서재덕이 운영하던 이용원이다. 사위가 이용원을 이어받고, 그의 아들 이남열 씨가 3대째 같은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 잘 닫히지 않는 나무문을 열어 이용원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거울이 있다. 130년 된 독일제 면도칼과 50년 된 가위로 전통적인 이발 방법을 고수하는 터에 손님이 꾸준히 찾아온다고 한다. 긴 세월을 버텨온 성우 이용원의 벽 한쪽에는 시인 김영환이 쓴 ‘성우 이용원’이라는 시가 붙어있다. “만리동 언덕길/세월의 더 께로/메마른 몸을 비튼‘성우 이용 원’//탐욕, 그리고 무딘 삶을 깎아내 는/이발사의 시퍼런 舌劍//느릿한 情談/가득한/의자에 앉으면/빛바랜 추억 사이로/세월이 흐른다.”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버텨내고 있는 성우 이용원. 우리에게 무엇을 잊지 않아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복잡한 명동의 골목을 벗어나 명동성당과 백병원이 있는 큰 길로 나가보자. 명동성당 옆쪽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일로 창고극장이 나즈막한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다. 1975년에 개관한 삼일로 창고극장은 소극장 문화를 이끄는 주역이었다. 많은 연극인들이 이곳에서 연극의 꿈을 꾸었고, 꿈을 펼쳤다. 삼일로 창고극장에서는 개관 초기부터 정통적인 예술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국내 관객들에게 사이코 드라마를 최초로 소개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옮겨가고, 대학로에 소극장이 많이 생겨나며 삼일로 창고극장은 변두리 신세가 된다. 폐관과 재개관을 거듭 반복하며 힘겹게 운영을 이어나가다, 2005년에 개관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공연이 가능해졌고, 작은 갤러리도 갖췄다. 삼일로 창고극장의 한 쪽 벽은 담쟁이 덩굴이 덮고 있다. 깔끔한 요즘의 극장과는 다른 친근한 모습을 하고 있어 더 정감이 간다. 상영작을 소개하는 간판 옆에 붙어있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 힘들 때 같이 울고 웃으며 우리를 위로해주는 ‘그 때 그 시절’의 삼일로 창고극장, 대학로의 소극장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을 줄 것이다.

혜화역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쪽 출구로 나가면 출구 바로 앞에서 대학로를 대표하는 다방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문인이 거쳐 가고,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청춘을 고민하던 ‘학림다방’이다. 입구에는 학림다방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SINCE 1956’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간판이 눈에 띈다. 입구 옆 벽에는 문화 평론가 황동일의 시,‘학림 : SINCE 1956’이 적혀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무로 멋스럽게 꾸며진 학림다방이 우리를 반겨준다. 나무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난간에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흑백 사진이 걸려있고, 벽에 붙어있는 오래된 포스터와 계산대 뒤에 꽂혀있는 수많은 LP, 사람들이 앉아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의자는 그 자체로 세월을 느낄 수 있다. 60여년의세월동 안 벌써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지 만, 학림은 여전히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다.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되살려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 라고 회고하는 황동일의 시처럼, 학림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다방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붙잡아 두는 곳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특별한 장소다. 대학로를 들를 일이 있다면, 학림다방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경복궁 서쪽에 있는 서촌으로 가보자. 주택가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서 내리면 골목길에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대오서점을 찾을 수 있다. 칠이 바래서 다 떨어져 가는 현판과 허름한 나무문, 오래된 기와가 대오서점이 버텨온 60여 년의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1951년 문을 연 뒤 서점 영업을 계속하다가 작년 겨울부터는 서점 한 편에 주인 자제가 대오서점 카페를 차렸다. 대오서점은 이제 책을 팔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 향기를 찾아 대오서점을 방문한다. 문을 열고 서점 안으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마당이 나온다. 옛 주택의 모습을 한데다 많은 책이 꽂혀있기도 하고, 여러 드라마와 영화 의 배경으로 촬영된 적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대형서점이 도서 시장을 지배하고 동네의 중소서점도 살 길을 잃어가는 오늘날, 헌책방 역시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대오서점도 더 이상 서점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헌책방은 우리에게 추억을, 옛 책의 향수를 가져다준다. 오래된 책 내음이 맡고 싶어질 때, 이제는 절판되어 찾을 수 없는 책이 읽고 싶을 때 대오서점을, 아니면 가까이에 있는 헌책방을 찾아가보자. 대형서점에서는 맡을 수 없는 책 향기와 정취를 잔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