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작은 동아리나 소모임의 장부터 시작해서 나라의 대통령까지 소통하겠다고, 모두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은 지금 ‘소통 열풍’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듯하다.
 
작년, 강성모 총장이 취임하며 소통의 바람을 몰고 온 이후 우리 학교의 행보 역시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양한 대화 창구가 생겨났고, 총장과의 대화가 열리기도 했다. 크고 작은 학내 단체들도 이러한 움직임을 같이 했다. 올해도 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수많은 창구가 학우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새 총학 '블라썸'은 학우들의 질문에 총학이 뭐든지 답해 주는 '총학콜'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소통이란다. 아무리 해도 넘침이 없는 것이 소통이라지만 이제는 잠시 멈춰서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발단은 아주 작은 이야기에서부터였다. 학부를 졸업하고 자대 대학원 진학을 앞둔 많은 학우가 학교 시설 사용에 문제를 겪고 있는 점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던 불만 사항이다. 물론 올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불만의 목소리도 여전했다. 그런데 졸업자 중 누군가가 총장님께 연락했는데, 바로 도서관 이용 문제를 해결해 주더라. 총장님이 소통에 의지가 대단하시더라, 하는 감탄 어린 말을 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소통을 하고 있긴 했는데, 뭔가 이상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관련 부서에 학생들의 항의가 빗발쳐도 행정상 어렵다는 말만 돌아왔었는데 총장님께 보낸 한 마디로 문제가 해결되어 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학내 커뮤니티에는 심심치 않게 '총장님께 메일만 보내면 들어 준다더라.'라는 댓글을 볼 수 있고, 학생들을 대표해야 할 총학에서는 국원까지 따로 두고 세탁소가 어디 있느냐는 질문까지 다 대답해 준단다. 비판을 위한 비판처럼, 소통에 대한 고민과 담론은 사라지고 그저 소통을 위한 소통을 한 것은 아닌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소통을 통해 열린 자세로 의견을 수렴하고, 실제로 반영하려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학우는 만여 명에 달하고 의견은 끊임없이 나온다. 대표가 나와 '자, 저와 소통합시다!' 하는 지금의 방식은 소통을 촉진하는 데에는 좋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창구로서 작용할 수는 없다.
 
소통의 첫걸음을 뗀 2013년이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구성원 모두가 소통에 대한 의지를 갖추고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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