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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비밀은 아직 숨어있다
[322호] 2009년 09월 09일 (수) 이효나 기자 same-emas@kaist.ac.kr

‘오마이뉴스’에 조선왕릉에 관한 기사를 연재했으며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 저자이자 현재 파주저널 편집부 차장인 한성희씨에게 조선왕릉을 답사하며 있었던 기이한 경험에 대해 들어보았다

 

조선왕릉은 전생의 인연?

왕과 왕비의 삶의 공간이 궁궐이라면 사후의 대궐인 조선왕릉은 한 시대를 주도한 그들을 둘러싼 또 다른 역사의 의미와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500년 동안 내려온 왕들의 개성을 고스란히 느껴 볼 수 있는 공간, 조선왕릉에 왕과 왕비의 숨결이 지금도 살아 있다.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던 조선왕릉에 푹 빠져서 연재를 쓰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04년 8월이었다. 글쓰기도 힘들고 사방에 있는 왕릉을 꼬박꼬박 답사 다니기도 힘에 부쳐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았을 때, 어느 왕릉 관리소장이 그런 말을 했다.

“한 기자님이 조선왕릉을 쓰는 건 전생에 왕실과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릉관계자들은 자신이 전생에 왕실에서 일하거나 인연이 있다고 이미 알고 있어요. 혹여 왕릉에 무슨 일이 생기면 미리 선몽을 하거든요”

당시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정도로만 생각을 했지만, ‘조선왕릉의 비밀’을 마무리하기까지 여러 번 나타났던 기이한 경험과 이후 알게 된 사실에 나는 전생의 인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작년 명절 때 설을 쇠러 본가에 갔더니 남동생이 족보를 찾았다면서 알려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우리 집안이 신의왕후(태조의 원비 한씨) 직계 손이야”

“그래서 내가 조선왕릉 책을 쓸 팔자였군.”

 

선왕은 다 알고 있다

2006년 여름, ‘조선왕릉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준비하면서 사진을 보충하려고 동구릉에 후배 기자 3명과 동행했다. 능상을 몇 차례 오르내리느라 무더위에 다들 지쳐서 “빨리빨리 사진 찍고 가자”라며 원릉(영조와 정순왕후의 능)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울리기 시작했다. 황급히 비를 피해 비각 처마 끝에 서 있는데 숲과 정자각 앞에서 번개가 번쩍거리며 세상이 무너질 듯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새파란 총각 기자들이 무서워 파랗게 질려버릴 정도로 번개는 바로 앞에서 거침없이 내리꽂혔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확대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이곳에 묻힌 왕들이 우리가 온다는 걸 알고 용의 울음으로 현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왕릉’을 훗날 이렇게나마 세상에 알리는 노고가 기특하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나중에 후배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오히려 놀라고 말았다.

“그 천둥번개가 왕들이 “너희들 왔느냐?”고 하는 소리 같았어”

일기를 알아보니 서울과 경기 일대는 천둥은커녕 비 한 방울 오지 않았다. 오직 동구릉 일대만 쏟아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6년 9월 책을 발간했다. 1월에 다시 동구릉에 갈 기회가 생기면서 나는 책부터 챙겼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이 나왔음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태조 건원릉에 올라 책을 바치고 절을 올리고 난 뒤, 소리 내어 고했다. “조선의 위대하신 왕이시여, 조선왕조는 사라졌지만 먼 훗날 현재, 미천한 후배가 조선왕릉의 책을 내게 되어 여기에 고합니다. 부족하나마 조선왕릉과 역사의 진실을 쓰려고 노력했으니 예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바람 한 점 없던 능 위로 머리카락이 흩날리게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 아무도 관심을 안 갖던 조선왕릉에 발이 닳도록 오르내리고 밤새 자료를 뒤지고 글을 쓴 정성을 알아주시는구나. 불던 바람은 이내 잠잠해졌고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능상을 내려오자 동행했던 후배가 말했다.

“한 기자님, 조금 전에 위에서 말을 다 하자마자 바람이 불었잖아요. 마치 “오냐, 알았다”고 하는 거 같던데요”

또 하나,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는 연산군 묘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연산군(1476~1506) 500주기에 청명제를 지내던 그날 하늘은 구름이 잔뜩 껴 있어 어두웠고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추운 바람이 불었다.

제가 시작되자마자 매서운 겨울바람이 거세게 불어와 모두 덜덜 떨면서 손이 시려 카메라를 들고 있지 못할 지경이 됐다. 연산군의 한이 이렇게 깊은 것일까. 청명제를 마치자마자 포근한 봄 날씨로 돌아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따뜻한 햇볕이 쏟아졌다.

내가 처음 ‘연산군 독살설’을 제기 한 걸로 안다. 조심스러운 역사적 접근이었지만, ‘조선왕릉의 비밀’ 만화서평을 그린 한 만화가는 내 생각을 읽듯 마지막 컷에 연산군의 말을 남겼다.

“한 기자, 고맙소”

다시 한 번 연산군의 무덤에 가서 술잔을 올려야겠다는 마음이다.

 

가호 아래 마무리 된 조선왕릉

조선왕릉을 연재할 당시, 운전을 못 해서 수도권 각지에 흩어져 있는 왕릉 답사하기에 난처한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은 기름 넣기가 무섭게 한 손으로 운전대 슬슬 돌려대며 신나게 잘 밟고 다닌다.

그런데 왕릉 연재를 하면서 생긴 팬이 운전기사를 자처하면서 도시락까지 싸들고 나를 데려다 주시는 바람에 무사히 모든 왕릉 답사를 마쳤다.

생각해보면 글을 쓸 동안 생각지도 않은 도움이 사방에서 뻗쳐왔으니 글은 내가 썼지만 내 힘으로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선왕의 가호가 임한 게 아니겠는가.

당시 지독하게 가난했던 나는(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때는 최악이었다) 여기저기 찾아오는 팬들과 문화답사회 같은 데서 오라는 초대에도 가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돈과는 별 인연이 없어 포기하고 살지만 그래도 ‘조선왕릉의 비밀’ 출판 이후 조금은 여유로워진 것도 그 음덕이 아닐까 싶다.

 

조선왕릉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왕조의 멸망과정이 눈에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역사와 조선왕릉의 겉모습 보다 아직 파헤치지 못한 ‘조선왕릉의 비밀’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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