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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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평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4.02.2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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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설 부문 응모작은 17편이었다. 예년과 비슷한 편수이지만 무학과 학부생부터 박사과정 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이 작품을 보냈고 예년의 경우 대부분이 습작이었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품을 들여 작품을 쓰는 훈련을 해온 흔적이 엿보여서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우선 작품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하여 하승웅의 「Hello, World」, 김창대의 「과학 논문 작성 과정에 대한 고찰」, 안예진의 「고목나무 이야기, 혹은」, 권나영의 「기묘한 동거」를 골랐다.

카이스트 문학상 응모작들은 보통 크게 세 경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상의 시공간을 넘나들거나 현재로서는 상상으로만 가능한 과학기술의 세계를 설정하는 에스에프, 카이스트 안에서의 학업과 일상을 소재로 이공계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소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젊은 시절의 연애와 사랑, 가족 이야기 등.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중 에스에프는 전통적으로 카이스트 문학상 응모작들이 매우 애용하는 방식이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특성에 컴퓨터 게임 속에서 만나는 가상현실에 그만큼 익숙해진 세대적 특성이 부가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소설’의 모습으로 독자와 만나고자 할 때는 그런 가상의 시공간 혹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상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필연성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설정된 가상의 시공간 안에서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진행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그럴 듯하게’ 전개되면서 문명비판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승웅의 「Hello, World」는 인공 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스스로 진화해 나가면서 벌어질 만한 일을 다룬 것으로 이런 계열의 응모작 중에서 제일 정리된 편이었다. 다만 좀 더 디테일을 치밀하게 제시하고 주제의식을 뚜렷하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수상작에서 제외하였다.

김창대의 「과학 논문 작성 과정에 대한 고찰」은 단독 저자 논문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논문을 쓰는 행위가 자신이나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하는 물음, 즉 학위 취득의 수단이란 것 외에 자신은 왜 논문을 쓰는가, 자신의 논문이 의미는 있는 걸까를 묻는 작품이다. 카이스트 안에서의 학업과 일상을 소재로 이공계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계열의 작품으로서 보통 이 부문의 작품이 제일 디테일이 살아 있고 진정성도 전해지곤 했다. 과학 논문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 고통 앞에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초록부터 참고문헌까지 과학논문의 구성 형식에 맞춰 써낸 김창대의 작품은 재기 발랄하고 뚜렷한 주제의식을 보여주어 신선했다. 즉 가벼움을 가장한 형식 속에 작가 자신의 진지한 고민이 배어 있는 작품이었다.

안예진의 「고목나무 이야기, 혹은」은 아버지의 존재를 고목나무에 비유하여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아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썼다. 처음에는 나무와 참새와 소년 각각을 화자로 하여 한 토막씩 발화하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식물인간 상태인 아버지, 떠나버린 어머니,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들의 이야기로 밝혀지고 마지막에는 소년이 다시 아버지 나무로서 발화하는 구성을 취했다. 구성의 세련됨에 비하면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되어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주제는 너무 상투적인 것이었다. 궁벽한 한자를 활용하여 인물의 이름을 지을 정도의 정성이니 제목의 ‘고목나무’가 큰 나무(古木)인지, 죽은 나무(枯木)인지는 함께 밝혀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덧붙여 둔다.

권나영의 「기묘한 동거」는 일단 소설의 분량이 다른 작품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았을 뿐 아니라 소설을 여러 번 써본 듯하게 인물 성격 및 심리 묘사가 능숙하고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도 있어 제일 눈에 띄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여성이 환자들의 연애사를 상담하면서 자신의 연애의 상처를 계속 떠올린다는 구성, 그 과정에서 스스로 치유해간다는 주제 모두 상당히 익숙한 것이지만 현실과 의식 사이를 오가면서 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필치의 능숙함과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는 응모작 중에서 발군이었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에 비해서 소재의 전개 방식이 너무 익숙하고 주제 의식이 미약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심사위원들 사이에 약간 이견이 있었다. 의사인 화자의 연애사에 좀 더 작품이 집중되어 고유의 인간관 혹은 연애관을 드러내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카이스트 문학상인 만큼 역량의 가능성을 높이 사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리고 김창대와 안예진의 작품을 가작으로 올렸다.

수상의 기쁨을 안은 이들에게는 축하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을 들여 작품을 쓰고 다듬었을 모든 투고자에게 더 깊은 마음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상경 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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