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시는 응모작이 풍성했다. 박영근 시인은 “가다가 가다가/ 울다가 일어서다가/ 만나는 작은 빛들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 <서시>)라고 하는데, 아마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만난 “작은 빛”을 드러내고 싶었나보다. 이처럼 작은 빛을 포착하고 이를 표현하는 일에 도전하는 모든 시도들에 박수를 보낸다.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자체도 소중하며 자신만의 말을 갖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기도 하다.

시의 형식은 곧 시의 내용이기도 하다. 문득 떠오른 시상을 “A는 B다”라고 표현한 순간 그 형식에 갇히고 만다. 시는 조금 더 집요하게 사물을 들여다보는 일이며 그 가운데 일상을 뛰어넘는 깊은 사유에 도달하는 일이다. 생생하게 구체적이며 동시에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시가 최상의 시일 것이다. 아쉽게도 이번에 수상작을 내지 못한 것은 여러 겹으로 싸인 현재·이곳의 현실을 빛나게 드러내면서도 깊은 사유를 담은 시가 없어서이다. 하지만 장석환의 시에서는 빛나는 묘사가 김장근의 시에서는 깊은 사유가 보인다.

장석환의 투고작 5편 중 <눈>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다른 시의 이미지나 표현이 단선적이고 상투적인데 반해 눈에서는 비약적으로 발전된 이미지와 표현을 보여주어서다. 눈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설렌다. 장석환은 눈의 구조를 밝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눈의 소리, 눈의 모양, 눈의 풍경, 눈의 기억들에 집중하여 그 설렘을 드러내고 있다. “금빛 부서지는 소리,““아득해지는 세상,” “내 기억의 파편”을 통해 눈은 우리 모두에게 펼쳐진 현상이지만 동시에 시인의 눈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왜 다른 투고작과 <눈>이 다른지를 곰곰이 살펴보면 장석환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하리라고 생각한다.

김장근의 <어른 동굴> 연작시에서는 잠재되어 있는 사유의 깊이를 보았고 이를 격려하는 의미에서 가작으로 선정했다. “나가지 못하는 바깥”은 “나가기도 들어가기도 어려운 바깥”이 되고, 나아가 “바깥은 여기”(<동물>)가 되는 사고의 진행과정에서 사이 공간을 형상화해내는 시인 특유의 긴장된 사유의 힘을 느꼈다. 이러한 힘은 드물고 귀한 재능이다. 다만 어둠, 동굴, 눈, 얼음의 이미지가 생경하여 사유에 대응하는 이미지가 되지 못했고 따라서 보편적인 울림을 얻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구체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를 화두로 삼아 고민한다면 김장근이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리라고 믿는다.

플라톤의 공화국에서 장인은 시 쓰기를 금지당한다. 하지만 발칙한 장인들은 계속 시를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이 겨울 응모자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여러 겹으로 싸인 현실에 천착하는 발칙한 시인들과 만나고 그들의 깊은 사유를 즐기기 바란다. 

 

조애리 KAIST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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