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부문 가작/ 고목나무 이야기,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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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부문 가작/ 고목나무 이야기, 혹은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4.02.2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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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 이야기, 혹은

 생명화학공학과 11 안예진

 

1. 고목나무

 

고목나무. 당신이 보고 있듯, 오직 그것만이 소년의 집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소년이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에 서있었던, 말 그대로 고목(古木)이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오늘도 오도카니 한 곳만을 바라보고 서있지만, 그 시선 끝에 닿는 것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쓸쓸할 정도로 황망히 펼쳐진 하늘이 전부. 담 너머로 낯선 이들의 이야기라도 들려오면 적적함이 덜 하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운이 좋을 때의 이야기다. 구름 한 점의 느릿한 발자국을 바라보는 것조차 감지덕지니까. 오늘처럼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것이 서러웠다. 슬프고 무미건조했다. 지루한 일상에, 나무는 지쳐간다.

 

멋대로 끝장낼 수 있는 생이었다면. 그런 생각마저 나무에게는 달콤했다. 허나 부질없는 생각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서글프다. 함부로 매듭지을 수 없는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안쓰럽다. 사무치도록 불쌍해, 견딜 수가 없어지곤 한다.

 

무료한 그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것은 그의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 어린 소년이다. 나무는 소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물론이고, 나이, 습관, 그리고 그가 더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모습까지도. 소년보다 족히 20년은 넘게 그 곳을 지키고 있었으니, 모르는 것이 있을 리 없다. 나이는 올해 열일곱이고 이름은 '서준(藇㻪)’, 아름다운 옥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름 뜻과는 달리 소년은 다소 투박한 생김새였다. 제 나이 또래보다도 작은 키니 나무보다 클 리는 만무했고, 체중이 적게 나가는 탓에 고작 중학생 정도밖에는 되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평범하다 못해 희미한 인상이고, 까무잡잡한 피부에는 상처가 가득하다. 특별할 것 하나 없지만, 나무는 이 소년을 사랑한다. 매일처럼 저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씩 그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소년이 참으로 좋다.

 

소년의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그는 나무를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아니, 소년은 나무가 싫었다. 앙상하기 그지없는 그의 가지와 제멋대로 굽어있는 기둥이 못나 보였다. 까슬한 나무의 껍데기는 제게 상처를 입힐 것만 같다. 또 손은 어찌나 많이 가는지. 뿌리가 얕아 자생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나무다. 그런 나무가 행여나 말라 죽을까, 서준의 할머니는 늘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그것 역시 싫다. 항상 저를 '준'이라 부르는 할머니가 나무에게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심사가 뒤틀렸다. 정말이지 쓸모없어, 몇 번이고 그렇게 험한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모든 이유를 납득한다. 그의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 심술까지도 포용한다. 장난기 많은 어린 소년이라면, 집에 떡하니 자리 잡은 제게 매달려도 보고 올라가보겠다고 떼를 쓸 법도 하다. 허나 소년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것조차 시도할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른 나무였다. 그것이 오히려 미안할 따름이었다. 곧게 뻗어있는 듬직한 모습이었더라면, 그렇게 바랐다. 청승맞게 집 한가운데를 차지하지나 말 걸, 그렇게 후회했다. 모든 것은 그저 제 탓일 뿐이다.

 

그래도 서준은 꼬박꼬박 나무를 찾아온다.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제 기분을 털어놓는다. 나무 아래 몸을 누인 채 두런두런 말을 하는 것만큼은 그리 싫지 않은 모양이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은 꽤나 근사한 안식처였다. 비록 몸을 누이고 있을 때조차 소년은 나무에게 눈길을 주지 않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제 못난 모습을 알기에 괜찮다. 아니, 그마저도 행복하다. 소년은 당분간 제 곁에 있어줄 것이 분명하고, 그 시간만큼은 마음 편히 소년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거면 좋다. 아무런 말도 못하겠지. 아무런 몸짓도 전하지 못할 테지.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나무는 그저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2. 고목나무 이야기 上

 

지루한 하루다. 나무는 오늘도, 멍하니 서있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기 시작하니 길은 부쩍 한적해졌다. 한창 가을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에는 이 정도로 따분하지는 않았는데. 낙엽이 잔뜩 쌓여있던 가을길이 떠올랐다. 그 길을 걷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 하지만 지금 제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이 겨울에 가까워지니, 길가는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다. 웬일인지 평소에는 잘만 떠들어대던 새들도 소식이 없다. 그저 널따란 하늘을 올라다볼 뿐이다. 오늘 하루가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미 해가 짧아진 탓에 바깥은 벌써 어두컴컴했다. 저녁 공기는 서늘하고, 서준이 없는 이곳의 공기는 더욱 차갑다.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끔찍하다. 쓸쓸하고 춥다. 이렇게 하루를 혼자 보내야 할 때마다 속이 썩어 들어간다. 눈물은 물론이고 구역질이 난다. 애써 밝은 생각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이 아득한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줄 생각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괜찮다.

 

소녀.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서준이 꽤나 재미난 일을 이야기해줬더랬다. 그 일을 떠올리니 한층 기분이 나아지는 듯하다. 제가 좋아하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더랬지. 그 모습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소년의 모습이라 웃음이 났다. 소녀를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무는 소녀에게 감사했다. 서준에게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려준 소녀가 고마웠다.

 

갓난아기였던 서준이, 어느덧 사춘기 소년이 되어 첫사랑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다. 문득 나무는 제가 언제까지 그를 지켜볼 수 있을까 궁금증이 인다. 아무리 오랫동안 이 집을 지키고 서있었다지만 마냥 여기에 버티고 서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원하지 않더라도 떠나야 할지 모른다. 이별은 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모른다. 제가 사라지더라도 소년은 점점 청년이 되어갈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감정들을 배워나갈 것이다. 때로는 그 감정이 굉장히 달콤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감정의 파편에 베여 눈물로 밤을 지새울지도 모른다. 나무는 자신이 가까운 미래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는 생각보다도, 그렇게 하루하루 어른이 되어갈 서준을 지켜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슬프다.

 

짹짹.

 

뜬금없이 날아 들어온 참새 한 마리가, 음울한 기분을 날려준다. 나무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겨우 제 한 몸 부지하고 있는 나뭇잎만큼이나 작고 보잘 것 없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쉴 새 없이 짹짹거리는 것이 시끄럽긴 하지만 싫지는 않다. 별 의미 없는 지저귐일 테지만,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저를 가엾게 여겨 날아 들어온 것만 같다. 홀로 덩그러니 서있는 제가 그렇게나 불쌍해 보였던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슬슬 하루를 마친 소년이 돌아올 시간인데. 아까부터 명랑한 목소리로 지저귀는 참새가, 해맑은 얼굴로 소녀에 대해 재잘대던 서준과 닮아있다. 괜스레 그가 더 그립다.

 

 

 

3. 안부

 

오랜만이야. 못 본 사이에 더 앙상해졌네. 이러다 정말 부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서준이는 많이 컸더라. 아직 또래 애들보다 작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한창 성장기라 좋은 거 많이 해먹여야 하는데, 엄마로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 않네. 철이 빨리 든 것도 속상해.

 

친구랑 싸웠는지, 얼굴에 상처도 났더라. 남자 애들은 왜 그리 험하게들 노는지 모르겠어. 그게 자연스러운 거지마는.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몰라도 혹시나 흉이 지면 어쩌나, 나는 그게 걱정이야. 하필 다른 데도 아니구 얼굴에 상처가 나가지고는. 그래도 인상은 많이 밝아진 거 같더라.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생겼나? 왜, 누굴 좋아하게 되면 얼굴이 핀다고들 하잖아. 애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구나, 싶더라. 나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기분인데 말이지. 이러다 나중에 찾아오면 못 알아보는 거 아닐까 무섭기도 해.

 

자주 못 보니까 소소한 변화들이 죄다 눈에 들어 와. 키는 얼마나 컸는지, 살은 얼마나 빠지고 쪘는지, 머리는 어떻게 잘랐는지, 친구랑 싸우다 어딜 다쳤는지. 그런 거 하나하나가 요즘엔 마냥 신기하고 소중해. 지나고 난 후에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참 많더라구.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 돌아보니 바보같이 놓치고 산 것이 많아 서럽더라. 어쩌면 서준이가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퍼. 안쓰러워. 그리고 미안해.

 

어머, 나 좀 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가봐야겠다. 나 없는 동안 우리 서준이 잘 지키고 있어줘. 또 올게. 건강히, 시들지 말고 있어야 해.

 

 

 

4. 동정

 

힘들겠다. 예전부터 늘 생각한 거지만, 그렇게 한 곳만 바라보고 서있는 것도 지루할 거야. 나무로 사는 것도 힘든 일이겠네. 그래도, 역시 나는 내가 더 불쌍한 것 같아.

 

 

 

5. 고목나무 이야기 中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어렵사리 버티고 서있지만, 겉이든 속이든 예전만큼 멀쩡하지 않다. 그저 직감적으로 깨닫는 사실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오롯이 견뎌내야 했던 고독에 지친 탓이다. 서준이 말한대로 나무로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매일처럼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견딜만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거짓말이다. 살아있음이 괴롭고 지루하다기보다, 편히 쉴 수 없음에 숨이 막히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것은 순전히 서준 때문이다. 제가 싫다했다. 이런 나무따위 치워버리자고 생뗴를 부리기도 했고, 저를 한껏 노려보다 폭언을 쏟아 붓기도 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혼나거나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은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훌쩍이며 하소연을 했다. 기분이 좋으면 곧장 달려와 이런저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방글거리며 말했다. 저를 싫다 하면서도 많은 감정을 공유해주었다. 어차피 무슨 말을 내뱉든 상관이 없으니까, 편하게 속마음을 내비쳐주었다. 나무가 미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워할 수 없었다.

 

어제, 서준은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짝사랑하던 소녀와 허무하게 헤어진 날이었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모습으로 그렇게 울었다.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고,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무너지지 않도록 꼿꼿이 서있었다. 너무 큰 슬픔이 그를 삼켜버리지 않도록 감싸줄 뿐이었다. 제 꺼칠한 몸을 붙잡고 한참을 우는 것은 마냥 바라만 보았다. 그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 서준이 찾아와 말한다. 이제 괜찮아. 나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소년은 자신이 내뱉은 말들로도 충분히 성장해나갈 것이다. 나무는 말없이 응원해주는 것 이외에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커다란 교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이 더 큰 안정감을 주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아무리 삶이 버겁다하더라도, 나무는 오직 소년을 위해 큰 하늘을 등질 수 있다.

 

 

 

6. 할머니

 

준아, 이 나무가 네 나이 두 배는 되는 나무다. 너는 이 나무가 싫을기다. 앙상하고 바짝 말라 있어서 물도 머금지 못하는 것이, 꼭 죽은 나무 같아서. 그래도 예전엔 좀 더 크고 늠름했어. 네가 아주 어렸을 때는 너 만한 꼬맹이 서넛이 매달려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했지. 이게 다 이 할미가 잘못 돌봐서 이리 된기야.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겠지 싶다가두, 내 잘못인 거 같아 서글프다.

 

느이 할애비가 이 나무를 그렇게 좋아했지. 가뜩이나 까무잡잡한 것이, 이렇게 비쩍 마르니 저랑 똑 닮아진 거 같지 않냐고 너스레도 떨어댔지. 근데 이 할미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영감이랑 달리 꼿꼿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나무가, 날이 갈수록 더 앙상해지는 걸 고스란히 보면서도 그리 생각했다. 그러면 준이 너도 나무를 덜 미워하지 않았을까, 나도 이 나무에 기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이 할미도 참 나쁘지 않누? 언제든 찾아와 나무에 기대 적적함을 달래놓구, 이리 앙상해진 것을 감싸안아주지는 못할망정 그리 생각하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란 게, 이렇게도 이기적이고 간사하다.

 

그래도 이대로도 좋지 싶어. 예나 지금이나 듬직한 모습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모습도 좋다. 영감 말대로 영감을 참 많이 닮았어. 게다가 변함없이 이 할미 곁을 지켜주고 있지 않누.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내가 뭐가 예쁘다고 이리 버티고 지켜주는지 모르겠어. 아니, 사실은 우리 서준이 보려구 버티고 있는 거려나? 이유야 어찌됐든 감사할 일이지. 감사한 일이야.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말라, 준아. 얼마나 지루하겠어, 생을 살아가는 것이. 쓸쓸하게 서 있다가 늙은 할미 하소연이나 듣는 게 얼마나 곤욕이겠어.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 얼마나 불쌍한 나무냐. 준아, 준아. 너무 미워하지 말그라. 제발 그러지 말어.

 

 

 

7. 제발

 

세상은 불공평해. 나는 아무 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어. 평범한 거면 됐는데, 남들이 가지고 있는 거면 됐는데. 나는 그저 무언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어. 도대체 이 상황을 짊어져야 하는 게, 왜 하필 나일까? 나는 매일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해.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당신에게 화를 내. 끔찍하게 비참하지.

 

정말 내 말이 들리기는 해? 그렇다면 대꾸라도 해봐. 말을 못하겠다면 몸이라도 움직여. 그마저도 못한다면, 나는 당신의 뭘 봐야하는 걸까. 무슨 근거로 당신이 살아있다고 믿어야 해? 정말 살아있긴 한 거야? 아니, 이런 모습도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 지치지는 않고? 나는 이 모든 게 구역질이 날 정도로 지긋지긋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은 해.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다고.

 

그래서 부탁할게.

제발.

제발 죽어줘.

제발, 아버지.

 

 

 

8. 고목나무 이야기 下

 

끝이 보이고 있다. 빈 말이 아니라, 이제 정말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서준이 제게 한 잔인한 소리 때문도, 어머니의 하소연 때문도 아니다. 순리에 따라, 한계에 다다른 시간이 다가온 것뿐이다. 물론 서준의 거친 외침이 상처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라 여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저는 알게 모르게 서준을 힘들게 하고 그의 짐이 되어왔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사춘기 고등학생에게 있어, 이 모든 상황은 견디기 싫을 뿐더러 견뎌야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힘든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제 처지보다도 더 끔찍한 현실에 부딪혀왔을지도 모른다. 나무 역시 이 현실이 끔찍이도 싫은데, 서준이라고 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소년이 철이 없어서도, 좀 더 어른이 되어야 해서도 아니었다.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했다. 그게 전부다.

 

허나 완전히 끝나지 않은 현실이다. 그것이 더 잔인하다. 나무는 매일 정신이 썩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정신이 썩는 기분이 무엇인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것인지,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나무는 차라리 제 몸이 썩어 들어가길 바랐다.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기라도 한다면, 최소한 답답하지는 않을 테지, 그런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 사치다. 아무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기다림이다. 죽음을 향한 기다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하나뿐이다.

 

그래서 정한(正橌)은, 이제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그가 원치 않더라도 머지않아 그리 될 것이다. 못나고 후회스럽기만 했던 마흔 둘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어쩐지 서글프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아마도 살아있는 동안 흘릴 수 있는 마지막 눈물이겠지. 되뇌어보면 아주 지루하고 비참하기만 했던 삶은 아니었다. 서준의 이야기에 내심 화를 낸 적도 있었고, 우스갯소리에 크게 웃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버릇없는 아들에게 머리를 쥐어박아 주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서럽게 울어대는 그를 끌어안아 주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만큼이나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가장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제 존재만으로도 아들의 삶은 평범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늘 서글펐다.

 

아무 것도 해주지 못했지만, 정한은 이런 모습이라 다행이라 여긴 적도 많았다. 자신이 이런 모습이었기에, 서준은 편하게 제 일상을 늘어놓았던 것일 테니까.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를 끌어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저주받은 인생은 아니었다고, 위안할 수 있었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던 정한이었다. 몸이 건강할 때 역시 제 앞가림만 겨우 해내는 정도였지, 그리 대단한 남자가 아니었다. 물려받을 돈은커녕 아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었다. 다달이 날아오는 고지서에 파묻혀 한숨을 내쉬던,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런 제가 가진 최고의 보물이었다. '아름다운 옥'이라는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은 아니었지만, 제 나름의 빛이 있었다. 그 빛 덕분에 제 인생 역시 빛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더 환하게 빛날 수도 있었는데, 자신이 그 빛을 가로막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이제는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게 놓아주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남겨 놓고 떠나야 하는 시간이.

 

준아, 서준아.

 

끝까지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다. 입에 담은 것이 너무나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꿈에서나 겨우 불러보곤 했지. 뼈에 사무치게 애달픈 이름이었다. 이제는 정말, 평생 불러보지 못할 이름이었다.

 

 

 

9. 증후군

 

[감금 증후군(監禁 症候群), locked-in syndrome]

의식은 있으나 전신마비로 인해 외부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 혼수상태와 달리 정신적인 각성은 유지되어 있으나 운동기능이 차단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10. 하늘

 

어제는 미안했어. 반성하고 있어. 그냥,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멋대로 튀어나갔을 뿐이야.

 

이상했다. 쭈뼛거리며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래도 서준이 이야기할 때는 늘 저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던 아버지였다. 한없이 따스한 눈길로 저를 지켜봐 주었는데. 웬일인지 오늘만큼은 평온히 눈을 감고 있었다. 뜰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마치 다시는 뜨지 않을 것처럼 눈도, 입술도 굳건하기만 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서슴없이 다가간다. 점점 서늘한 기운이 서준을 엄습한다. 이유 없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까워질수록 역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만 같다. 이상하다. 느낌이 그러했고, 그것은 본능적인 감이었다. 용기를 내어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소름 끼치는 차가움.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유는 모른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차갑다. 딱딱하다. 나무토막을 만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서준은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온기를 전해주려 더욱 세게 손을 쥐었다. 전해지지 않는 따스함을 억지로 불어넣으려 애쓴다. 거친 느낌이 싫다며 몇 번이고 밀어낸 그 손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이제 정말 나무가 되어 버리기로 한 걸까.

 

거칠고, 까무잡잡하고, 생기 없는. 그래, 아버지는 정말이지 고목나무 같았다. 이전처럼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다. 첫사랑이 끝나버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쓰라림이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싫어했던 고목나무인데. 그 못난 모습도, 딱딱한 껍질도 싫었다. 제 앞을 가로막는 모양새가 거슬리고, 저를 내려다보이는 것이 열 받았다. 버팀목이 아니라 장애물이었다. 그런 나무가 언제까지고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아 구역질이 나곤 했다. 그럼에도 힘이 들면 찾아와 몸을 기댄 나무였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털어놓던, 온전히 제 나무였다.

 

이제는 쓰러져버렸구나.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때가 되었다는 듯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평온한 모습이다. 이전에 본 적 없던, 무서우리만치 넓은 하늘이 소년을 뒤덮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무가 가려주고 있던 아득한 하늘과 마주한다. 두렵도록 깊고, 걷잡을 수 없다. 그것을 오롯이 버텨내기에 소년은 아직 어렸고, 나무가 없어진 지금, 그를 지탱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11. 성장

 

멋있어졌다, 아버지. 기둥도 튼튼하고, 올곧고, 생기도 넘쳐 보여. 참 이상하다. 살아있을 적에는 오히려 마른 장작 같기만 하고 생기 없어 보였는데. 아버지는 이제 여기 없는데, 아버지는 이제야 살아있는 것만 같아.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미워. 여전히 내가 불쌍하고. 당신과의 추억도 없고, 당신이 살아있는 지조차 늘 의심하며 살았어. 아버지 병원비로 생긴 빚 때문에 엄마랑 떨어져 살아야 했고, 밤마다 우시는 할머니를 지켜봐야 했고,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지도 못했어. 열등감 속에 살았어. 가난, 결핍, 공허함.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어. 그래서 많은 걸 포기하며 살았다고 생각해, 아버지 때문에. 그런 생각이 끊이질 않아서 아직도 당신이 밉고, 내가 불쌍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더 많이 힘들었던 건 아버지였을 거야. 집 밖에 나가본 적도 몇 번 없지? 종일 같은 자리에서,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지? 내 투정을 듣는 것도, 할머니의 하소연도 지겨웠을 거야. 심지어 나는 마지막까지도 아버지한테 아주 못된 소리를 내뱉었지.

 

요즘에서야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어. 내가 하는 이야기들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었지? 조언도 해주고 싶었을 거야. 아버지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많이 해주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어 답답했을 거라 생각해.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서러워하다가도 지독한 자괴감에 힘들었겠지. 얼마나 많이 자기 삶을 저주했을까, 스스로가 얼마나 싫었을까. 얼마나 큰 무기력함 속에서 살아가야 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 지금에서야 마음이 아파.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였어. 짐처럼 느낀 적도 많아. 그래도 나는, 당신이 그런 아버지였어도 감사해. 지금에서야 알겠어. 나는 아버지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위로 받고 보호 받았다는 걸. 그래서 아버지가 없는 집은 많이 쓸쓸할 거야. 늘 있던 자리에 아버지가 없어서 공허하고 슬플 거야. 항상 집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고목나무가 사라졌는데, 허전하지 않을 리가 없지. 나는 괘씸하게도 아버지를 많이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나무가 많이 그리울 거야.

 

어쩌면 나는 이제야 조금 큰 건지도 모르겠어. 더 일찍 철이 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게 철이 들어버려서 미안해.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나 봐.

 

 

 

12. 아버지

 

남자는 한 가정의 아버지다. 딱 보기에도, 그리 생기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피부는 거무스름하고, 얼굴 여기저기 난 상처들이 눈에 띈다. 제법 다부진 몸이지만 워낙 왜소한 체격이라, 위압감이 있는 모습은 아니다. 음침하다, 그 말이 훨씬 잘 어울린다. 그래도 눈동자가 맑다. 눈빛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연륜에서 오는 것인지, 선천적인 성격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덕에 그다지 나쁜 인상은 아니다. 남자는 아마도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고목나무를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그러다 자연스레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언뜻 봐도 마흔은 훌쩍 넘어 보였지만, 그는 올해로 겨우 서른넷의 젊은이였다. 아무리 봐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구석은 하나도 없는데, 이름은 ‘서준(藇㻪)’, 그러니까 아름다운 옥이라는 뜻이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시선이 멈춰있다. 무표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헤매는 것만 같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만 나무를 등지고 있는 모습이, 하늘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그리워 보인다.

 

서준은 그렇게 하염없이 하늘만을 바라본다. 오늘다라 유난히 맑고 파란 하늘이다. 청량한 가을 공기를 마시고 있자니, 소년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지만, 제 등 뒤의 고목나무는 소년시절의 제 나무와 꼭 닮아있다. 나무 잎새로 보이는 하늘이 여전히 아득하고 깊다. 바라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하지만 전처럼 저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소년이 있다. 양손뿐만 아니라, 온 몸 여기저기에 온통 흙을 묻힌 소년이다. 한쪽 구석에서 한참이나 흙장난을 하고 있던 어린 소년은, 이제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이 싫증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총총거리는 모습으로 서준에게 달려온다. 아직 어리기 그지없는 모습이, 많아야 다섯 살 정도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있는 힘껏 안는다. 아들은 아무 것도 안 보여서 답답하다며 칭얼거리고 있지만, 그는 꿈쩍도 않는다. 아들이 가을의 쌀쌀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그저 가만히. 그의 등 뒤로 넓은 하늘이 펼쳐진다. 언뜻 그가 하늘을 등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준의 손이 소년의 머리를 감싸 안는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삶이었는지, 다소 거칠어지고 그을린 손이다. 그가 살아온 짧지만 긴 세월의 흔적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품에 폭 안겨있던 소년이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웃음을 짓는다. 커다란 아버지. 그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굳건히 있어줄 것만 같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마치 저 고목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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