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수필평론 부문 가작/ 세월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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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카이스트 문학상] 수필평론 부문 가작/ 세월을 읽고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4.02.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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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을 읽고

물리학과 박사과정 강현구

 

느닷없이 찾아오는 희소식은 바쁜 일상에 여유를 주는 조그만 선물이다.

 

- 현구야, 할머니한테 축하전화 좀 드릴래?

 

할머니가 실버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으셨단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가득 찬 놀라움. 사실 그 누가 보더라도 우리 할머니와 백일장은 제사상에 고급 와인만큼이나 동떨어진 조합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단편적 사건이더라도 그 의미는 각자의 경험에 의해서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내겐 할머니의 수상이 가슴 벅차오르게 다가왔다.

 

할머니, 좋은 일 있으시다면서요?

누구, 형구냐? 하, 그거시 나도 참 어리둥절해브러야. 느그 엄씨랑 현정이(고모)가 공원에 한번 가보자 그래가꼬, 나중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그랬는디. 어째 이렇게 되씨야.

 

할머니가 이렇게 아이마냥 신나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최근에 언제 있었을까?

 

누군가가 할머니의 일대기를 쓰게 된다면, 그가 아무리 능력 있는 서사 작가라 한들 할머니의 인생을 두 장(章)으로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하다. 그 1장은 할머니의 처녀시절이 될 것이고 2장은 시집 온 이후가 되겠다. 물론 시간적으로야 1장에 비해서 2장이 훨씬 긴 세월을 담고 있겠지만, 슬프고 슬프게도 내용적으로는 그 둘의 분량이 엇비슷하리라. 그나마 여기서 2장의 여백을 조금이나마 채워 볼 수 있지 않을까.

 

<<세월/노우례>>-1

금년 내 나이 여든여덟 세월이 아득한데 학창시절이라 함은 60여년 전이라 글씨를 써 본지도 시집온 후로는 처음이라 손이 떨리고 생각이 오락가락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 되어 교원이 되어 활동 하던 중 느닷없이 고향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결혼 날짜를 잡고 음식을 장만 하라고 시켜 놓고 왔다고 하시니 공부도 더 하고 인생도 더 경험을 쌓아 문학계로 가려니 한 내 희망은 산산 쪼각되어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다.

 

유년 시절을 할머니 댁에서 보낸 나에겐 할머니 집이 곧 이 세상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치고는 꽤나 좋은 집이었다. 할아버지 이름의 문패가 걸려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일본식 정원이 나를 반겼다. 각종 대추나무나 석류나무와 같은 유실수며, 돌길을 따라 잘 관리된 동글동글한 향나무, 더 깊숙이 들어가면 조그마하지만 작은 분수가 달린 연못도 있었다. 그곳은 내겐 자연과 직접 접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었음과 동시에 곳곳에 보물이 숨겨진 놀이동산이었다. 아직도 내 책상 서랍 안에는 할머니 댁의 분수 뒤편 비밀 통로에서 주운 푸르스름한 돌멩이가 놓여있다. 그뿐이랴, 동네 유지 역할을 톡톡히 하셨던 할아버지 덕에 할머니 집을 나서기만 하면 동네 사람들은 나를 강 사장님 댁 손자라고 높여 불렀다. 동네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창문이라도 깨서 어쩔 바를 모르고 있노라면, 어느 집 자식이냐? 씩씩대며 소리치며 나오시더라도 금세 아, 강 사장님 댁 손자구나, 조심히 놀거라 하시는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 자라며 할머니 집에 대한 경외는 커져만 갔다.

허나 이 모든 것이 그 어려웠던 시절, 일찍이 홀몸이 되신 증조할머니의 고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 키가 풍채 좋으신 할아버지보다도 더 커진 후의 일이었다.

 

<<세월/노우례>>-2

아무것도 해보지 않는 나로써는 지옥 그 자체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놋그릇 닦고 다드미질하고 허나 일은 그런대로 하는데 내가 인천에서 자라 서울말이라 뭤을 설명하려고 그러니까 하면 그것은 말대답이라고 호통을 치셔 나는 입 꾹 다물고 그저 시키는 일만 하라는 것이다. 쌀이 없어졌다 보리쌀 농속에 배짜투리 돈도 없어졌다고 한다. 사람이 찾아와도 물 한모금 마시고 가라 말을 못했다. 입에 완전히 작구를 채우고 지내는 나로서는 즐거움이나 희망이란 단어는 없었다. 집을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일찍 아이가 태어나 아이를 두고 가면 굶어 죽이지나 않을까 망설어지고 학교에서 수신 도덕을 덕목으로 배웠기 때문에 내가 교육받은 잣대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노적거리를 쌓아놓고도 시래기죽과 시래기밥을 아이들에게 줄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생활은 노예 그 자체였다. 우리 어머니 애써 딸련 공부시켜 시집보내셨으나 사돈도 자기 마음대로 일을 시켰다. 그 시어머니는 내가 63세에 90세에 저 세상으로 돌아가셨다. 남편은 6․25전 군입대하여 40이 넘어서야 제대 하고 집으로 왔으나 어머니께 복종하고 부부간에는 대화조차도 없었다.

 

시상식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게 단출했다. 애초에 구청에서 하는 실버 백일장이었기에, 최우수상 시상이라고 해봐야 구청장실에서 이뤄지는 형식적인 행사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 시상식이라며 구색 맞춰 차려입은 우리 가족이 그곳에서는 이방인 같았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만큼은 할머니가 주인공이었다. 구청 행사 기록용 디지털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구청장과 악수하시며, 할머니는 레드카펫 위에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처럼 좋아하셨다.

 

세월은 사람의 표정을 훔쳐간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어릴 때 사람의 표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유치한 까꿍에도 금세 세상을 다 가진 듯 까르르 웃어제끼고, 손으로 눈만 가려도 하늘이 무너진 듯 울상 지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몇 개 되지 않는 표정으로 바뀌어 간다. 세월은 경험을 통해 사람을 무덤덤하게 만들곤 한다. 우리 할머니 역시 표정이 그리 다양하지 않으셨다. 가족사진의 굳은 표정은 말할 것 없이, 평상시 웃는 표정 역시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라고 느꼈다. 부모님이 할머니 집에서 독립한 이후로도 우리 가족은 할머니 집에 가장 많이 찾아가는 손님이었다. 이젠 할머니 집보다 세상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게 된 내게 그곳은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무뚝뚝하니 말수가 적은 할아버지와 계속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시는 할머니 사이에서 어린 손자가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달력 몇 장 찢어다가 뒷면에 함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거나 그걸로 딱지를 접어다가 같이 놀아주시기도 했다. 할머니도 이때만큼은 입가에 미소가 묻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입꼬리에 살짝 묻어 있는 정도, 할머니의 표정은 항상 그 정도였기에 시상식에 활짝 핀 할머니의 웃음을 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할머니가 이런 표정을 지으시는 걸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딱 한번, 십여 년 전 여름으로 기억한다. 당시 할아버지는 노환과 더불어 찾아온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몸져눕게 되었고, 점차 의식도 희미해져가 주변 사람들이나 겨우 알아보실 정도였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매일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일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 또 쌌소? 쌌으면 쌌다고 말을 하씨요. 응? 애기들도 기저귀 갈 때면 울어제끼고 지가 쌌다고 얘길 하는디 당신은 뉘보고 치우라고 어째 조용히 혼자 일을 보요.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멋쩍으신 듯, 할머니를 보고 헤헤 웃으신다.

 

뭘 잘했다고 웃으요. 아따 내 평생 당신이 그렇게 웃는 거는 또 첨보요. 지금 똥싸질르고 잘했다고 웃으요? 당신이 생각해도 우습지야?

 

어느덧 집안에서 가장 목소리 큰 사람은 할머니가 되었고, 가장 말수가 많은 사람도 할머니가 되었다. 할아버지 생전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이제 할머니는 할아버지 얼굴을 닦으면서, 호스로 음식을 넘겨주면서, 혼자서 말 걸고 혼자서 대답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댁에 찾아간 우리 가족 앞에서 할머니는 실없는,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숨김없는 웃음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느그 할아버지가 어제 있냐……

 

그 날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씻겨드리고 계셨단다. 말이 씻긴다지, 닦는다가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항상 침상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이기에 몸도 좀 돌려드리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드리고 하던 순간, 할아버지가 실로 오랜만에 할머니한테 말을 거셨다는 것이다. 예의 해맑은 웃음과 함께.

 

뉘신지, 참 곱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민망해 하시며 호호호 웃는 할머니의 얼굴이 처음으로 고백받은 처녀처럼 달근해 보였다.

 

<<세월/노우례>>-3

남편은 84세에 7,8년을 병상에 누어 있다가 떠났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누구나 예상했으면서도 예상치 못했다. 계속 누워계셔서 몸 이곳저곳에 생기는 욕창이며 나날이 불러오는 배와 가늘어지는 팔다리. 이미 의식은 저 깊은 곳으로 숨어버려 가끔씩만 안개를 헤치고 대화 아닌 대화를 간신히 이어가며, 당장 내일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병수발을 하기를 수년째였다. 아니 어쩌면 주변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신 것이라 단정 짓고 그저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면역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도리어 할아버지의 죽음은 급작스럽게, 많이 아프시다는 표현도 없이 어느 날 불쑥 찾아왔다. 떠들썩하던 장례식 내내 할머니만은 표정 없는 얼굴로 침상에서 지내셨다. 이제 할머니에게는 아무도 남지 않은 것처럼 힘없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다가 생각에 잠기시길 반복하셨다.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할머니가 비로소 할아버지나 자식들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신 것이. 그날 저녁 할머니는 나를 앞에 앉혀두고 자신의 일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다. 젊었을 때 꿈 많던 학창시절, 시집오셔서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시집살이 일이며, 그리고 지금까지의 할아버지 뒷바라지까지.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 않던 이야기는 슬슬 무한 반복되고 있었고, 점차 지루해진 나는 할머니의 말을 끊었다.

 

근데요 할머니,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살아온 이런 시대와 시대를 잇는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시는 건 어때요?

책? 하이고, 내가 펜을 놓은지가 언젠디 책을 써야.

시집오시기 전에 글도 많이 쓰셨다면서요.

그때는 그랬지, 이제 한 개도 기억도 안나야.

 

<<세월/노우례>>-4

인생은 무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올때 너는 이러이러한 길을 걸어오너라고 예정되여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집은 조그만 아파트로 옮겨졌다. 예전 커다랗던 할머니 집의 흔적은 장식장을 채운 수석 쪼가리들과 텅 빈 거실에 별 의미 없이 걸린 족자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할머니를 쥐어짜던 증조할머니도, 병수발을 해야 할 할아버지도 세상에 없다. 할머니 인생 두 번째 장에서 최초의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시간 속에서 할머니는 어찌할 바를 모르셨다. 항상 집에서 티비를 틀어 놓으시지만 제대로 보시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 회관에 나가보지만 실제로 누구와 친하게 지내시지도 않았다. 수십 년 만에 친구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 별거 아닌 일에도 마음 상해하시곤 했다. 이제 다 커버린 손자가 명절에나마 가끔 찾아갔을 때는 할머니에게 못 보던 입버릇이 생겼다.

 

- 인생은 무(無)여야.

 

애매한 표정이 더 엷어진다.

 

<<세월/노우례>>-5

결국 나는 위, 십이지장, 장궁, 맹장 등 수없는 수술을 했지만 내 앞에서 5남매 건강하게 손자 손녀들 11남매가 하나도 내 앞에서 건강하게 직장도 훌륭하게 삶을 이룩하고 있으니 나는 여한이 없다. 비록 지금까지 정신과 약을 복용은 하고 있지만 고관절이 뿔어지고 어께나 머리는 수술을 했지만 하느님 아버지 이대로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잠들게 하소서 하고 비나이다.

 

할머니는 이곳저곳 많이 아프셨다. 세월은 특별하게 심각하지 않은 병으로도 할머니를 많이 괴롭혔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갔을 때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병을 고치기 위한 입원이 아니라, 괴로움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입원. 할머니는 많이 쇠약해지셨고 그 약함은 육체 뿐 아니라 정신도 갉아 들어가고 있었다.

 

- 어제도 간호사들이 날 두들겨 팼시야. 밤만 되면 간호사들이 몰려와서 온몸을 패가꼬 온몸이 다 멍투성인디, 나 집에 가야 쓰겄다.

 

밤에 그 병동에 할머니를 돌봐주는 간호사는 한명 뿐이고 할머니의 멍은 누워 있어서 생기는 욕창의 초기 증상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할머니를 맑은 정신으로 돌릴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할머니 이번에 백일장 상 타신 거 사진 나왔어요. 한번 보실래요?

 

사진을 보시는 할머니의 얼굴엔 전에 없던 새로운 색깔의 표정이 떠올랐다.

 

- 이때가 내 인생에 전성기였시야.

 

주름진 손가락이 사진 속 말끔하게 차려입은 할머니 위를 자꾸만 덮는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비보는 바쁜 일상의 들뜸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오랜만에 미국에서 찾아오신 큰 고모가 할머니와 밤을 보내고 돌아간 바로 다음 날이었다. 고모가 아직까지도 후회하는 그날은 병실에 할머니 혼자였다.

 

……하느님 아버지 이대로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잠들게 하소서 하고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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