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대한민국은 다사다난 했다. 일제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서구문물이 갑작스럽게 들어와 혼란스러웠다. 국내외로 여러 차례 큰 전쟁을 거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치며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19세기 한국의 회화는 이러한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큰 도약을 이뤘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예술에 무관심해졌으며 미술가의 입지는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당대 화가들은 꿋꿋이 시대상을 화폭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100년의 세월을 더불어 걸어온 한국의 미술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근대미술과의 만남

  우리나라에 외국의 미술이 본격 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외국의 미술은 일본을 거쳐 왔기에 한국의 미술계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화가가 많았다. 또 일본의 기법과 양식을 빌려와서 당시 일본의 화풍을 따라 사실주의가 주를 이뤘다. 대표적인 일본 유학파 화가로 구본웅이 있다. 구본웅은 서양의 화풍인 야수주의를 선도했다. 그의 작품인 <친구의 초상>은 친구인 이상을 모델로 세운 작품이다. 꿰뚫어보는 듯 날카로운 눈, 파이프 담배를 문 채 꾹 다문 입은 이 상의 내면을 드러낸다. 한편 일본을 벗어나려는 노력도 보였다. 배운성의 <가족도>는 사실주의를 한국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전통회화의 백묘법을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대가족의 모습을 표현했다.

새로운 표현을 모색하다

  광복 후 한국 미술계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일본의 영향을 부정하고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사회적 혼란과 한국전쟁에도 불구하고 화가들은 작업을 이어나가 피난생활 중에도 전시회는 꾸준히 개최되었다. 어두운 시대를 담았기에 그림의 분위기는 대체로 어두웠지만, 한국 미술계를 위한 화가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화가 박수근의 <빨랫터>는 낮은 채도의 거친 느낌이지만, 내용은 거칠지 않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아낙네들의 뒷모습이 익숙하면서도 가슴에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은 밝지만 표정이 보이지 않아 왠지 모를 불안감이 떠오른다. 당시 가족을 그리워하던 이중섭의 가정사와 한 국 사회의 분위기를 모두 담아낸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광복 이후 미술가들은 다양한 화풍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입체파나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서양의 기법을 전통적인 기법과 함께 사용해 독특한 화풍을 구성했다. 이응노의 <향원정>은 사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적 관점이 모두 들어있 는 반추상적인 작품이다. 점과 선으 로 나무의 모습을 표현하고, 그 뒤로 향원정의 사실적인 모습이 살짝 드러나도록 표현했다. 이 시기에는 김기창의 <아악의 리듬>, 천경자의 <길례언니>와 같이 서양의 현대미술이 융합된 작품이 많이 등장하며 점차 한국미술의 면모가 변화했다.

추상미술의 전개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안 정되었다.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어 미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늘어났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젊은 미술가들의 활동이 늘었고, 미술가들은 과거의 사실주의적 표현에서 벗어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 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 화단의 분위기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최영림은 1950년대 이전에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그렸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토속적 분위기를 띠는 그림을 그렸다. 최영림의 <경삿 날>에서, 신랑과 신부는 마치 한 사 람인 것처럼 표현되어 부부의 친밀한 느낌이 한층 살았다. 또 사람의 얼굴을 양쪽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 입체파의 영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기간 | 10월 29일 ~ 3월 30일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시간 | 화, 수, 목 : 10:00 ~ 19:00

           금, 토, 일 : 10:00 ~ 21:00

          월요일 휴무
요금 | 성인 5,000원 / 학생 3,000원

문의 | 02) 318-5745

           www.koreanpainti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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