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죽화로 이뤄낸 조선 남종화, 표암 강세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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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죽화로 이뤄낸 조선 남종화, 표암 강세황전
  • 김하정 기자
  • 승인 2013.11.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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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월 김홍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표암 강세황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풍속화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김홍도의 스승이 바로 표암 강세황 선생이다. ‘조선남종화’라고 불리는 화풍을 정립한 표암 강세황 선생의 탄생 300주년을 맞은 전시회가 성암 미술관에서 열린다.

  유성구 갑천변에 위치한 성암 미술관은 국내 최초로 옛 그림과 유물을 모아놓은 고미술관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원으로 일컬어지는

‘3재 3원’ 중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의 후손이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지었다.

표암 강세황의 작품

  표암은 어릴 적부터 당시 명필로 이름 높던 윤손에게 글씨를 칭찬받기도 하고, 이익과 교류하며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현재 심사정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심사정은 중국의 사대부들이 여가활동으로 그렸던 남종화를 조선풍으로 그리려했던 화가다. 남종화는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리는 진경산수화와는 달리 상상 속 풍경을 그리는 그림이다. 표암의 그림은 여백이 많고 여유로운 신선이 많이 등장한다. 표암은 젊은 시절에는 산수, 화훼 등 다양한 소재를 남종화로 표현했으나, 노년에는 묵죽화를 고집했다. 표암의 수준 높은 묵죽화는 조선 풍의 남종화를 확립했다고 여겨진다.

표암의 전성기

  표암은 조선 후기의 최대 문화부 흥기라 일컬어지는 영조와 정조시대의 중심에 있었다. 영조는 어릴 적부터 진경산수를 대표하는 겸재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래서 진경산수에 후원을 아끼지 않으며 겸재에게 도화서의 종장(宗匠)을 맡게 했다. 그런데 겸재가 죽고나자 화원을 이끌 사람이 필요했다. 표암에게 자리를 맡기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이 든 영조는 천거를 미루고 표암의 명예를 위해 절필을 권한다. 그러자 표암은 그림에 평을 하기 시작했다. 깊은 학문적 지식과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던 표암은 최고의 서화감식가로 이름을 떨친다. 이후 정조대에 이르러 과거 시험을 열고, 표암이 장원급제 하게 된다. 도화서를 관장하게 된 표암은 정조시대 문예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 역할을 했다. 그림을 즐겼던 정조는 표암을 ‘높은 경지의 예술’이라 이르며 칭찬했고, 정조의 그림에서도 조선남종화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표암의 제자, 김홍도와 신위

  김홍도는 7세 때부터 표암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이후 표암과 함께 도화서에서 일하면서 때로는 스승과 제자로, 예술적 동료로 평생을 함께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제자로는 신위를 꼽을 수 있다. 신위는 14살이 되던 해 표암을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후에“표암에게 죽석(竹石)만 배운것이 한스럽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다. 표암과 제자들의 활동은 조선 후기 미술의 흐름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미술관에는 혜원 신윤복 등 조선 후기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그들의 작품으로 강세황이 당대에 미친 영향이 무척 컸음을 느낄 수 있다. 올 가을, 조선 미술에 ‘조선 남종화’라는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표암 강세황의 작품을 만나보자.

사진/성암미술관 제공 

기간 | 9월 10일 ~ 11월 30일
장소 | 성암미술관
시간 | 10:30 ~ 17:00 (월, 목 휴관) 요금 | 성인 4,000원 / 학생 3,000원 문의 | 042) 822-7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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