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페라 극장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오재석 동문

지난달 3일과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바그너의 대작 ‘파르지팔’이 막을 올렸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들과 가수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 동문을 만날 수 있었다. 공학도에서 성악가로 화려하게 변신한 오재석 동문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공학도에서 성악가로
오 동문은 어려서부터 비행기 만들기를 좋아했다. 꿈을 좇아 신설된 우리 학교 항공우주공학과에 진학했고 한국항공우주연구소(KARI)에 입소해 초음속연습기 T-50과 스마트 무인기 개발에 발을 들였다.

이때까지도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오 동문의 목표였다. 공학자로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비행기 제작보다는 관리를 맡거나 프로젝트 수주에 매달리면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성악으로 진로를 바꿨다. 오 동문은 “항공우주 산업은 덩치도 크고 국가 시책에 좌우되기도 해서 내가 원하는 항공기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라며 “운이 좋아서 이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을 더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쉽지 않은 성악가의 길
오 동문이 성악과로 진학해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노래하다가 저지르는 실수가 다른 사람들 앞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과학을 공부할 때는 과제나 시험,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해결하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음악은 노래를 부르며 작은 실수까지도 실시간으로 보여 부담감이 컸다. 오 동문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KAIST를 나와 편입한 특이한 경력의 저를 주목하는 것 같아 긴장해서 식은땀도 비 오듯 쏟아졌고 허벅지 살도 떨렸다”라고 말했다. 모든 것을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며 자괴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


노래 아닌 오페라하는 성악가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오 동문은 독일에서 했던 마스네의 돈키호테를 꼽았다. 오 동문이 맡은 산쵸는 돈키호테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돈키호테가 비현실적인 이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공감하고 마지막에 가장 슬퍼한다. 이 오페라를 경험하기 전까지 오 동문에게 성공적인 공연은 노래를 기교적으로 잘 부르는 것이었다. 이 오페라를 통해 오 동문은 노래를 배역을 소화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길 수 있었다. 오 동문은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페라를 하는 사람이라는 면허증을 받은 느낌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내한 공연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공연했다는 오 동문은 평소에 즐겨듣던 바그너의 작품을 공연하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첫 번째 공연에서 가수들이 볼 수 있도록 설치된 모니터로 지휘자가 서곡을 지휘하는 것을 보고 있을 때 가장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하는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인생관, 특히 종교관이 구체적으로 투영되어있는 바그너 작품의 정수로 꼽힌다. 파르지팔의 초연을 한국에서 한다는 점과 유명한 성악가나 지휘자 등과 같이 무대에 선다는 점에서 더욱 감정이 북받쳤다고 한다. 오 동문은 “성악을 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가 아니다”라며 “음악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모든 이를 치유하는 성악가가 꿈
오 동문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사면 100년이 지나도 소리가 안 변하지만, 사람의 목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고 나이가 먹으면 성대의 음역도 달라진다”라며 “우리의 악기는 계속 변해 악기 연주법을 끝없이 찾아야한다”라고 운을 뗐다. 지금의 가장 큰 목표는 어떤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오 동문은 “어떤 역할, 어떤 노래를 할지는 모르지만 제 오페라를 본 사람이 극장에서 나갈 때 마음이 치유될 만큼 노래를 잘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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