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학교는 과학과 공학을 마음껏 공부하고 이를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세운 학교라고 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듣고 이 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학교를 다니면 가난해도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준다고 들었다.

# 작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되면서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큰 환호를 보냈다. 드디어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중요한 정책으로 ‘창조경제’의 실현이 꼽혔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복합으로 한국의 애플, 구글과 같은 회사가 창조적인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창조경제란다.

# 홍보실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성악을 하고 있는 동문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오재석 동문(관련기사 4면) 흔치 않은 선택이고, 대단하다고 생각해 취재하기로 했다.

# 우리 학교 학부과정에 기술경영학 주전공이 신설된다. 이공계적인 지식을 가진 ‘경영자’를 키우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관련기사 1면) 

# 지난달 22일, 우리 학교에 대해 국정감사가 열렸다. 2008년부터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이지만, 이번에도 이공계 인력 유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강성모 총장은 ‘로스쿨은 장학금 환수를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을 내놨다. 관련 조항을 찾아보니, 내년부터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 대해 장학금을 환수할 수도 있단다.

만약 우리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나중에 우리나라 대통령을 하면 장학금을 다시 내놔야 할까. 오재석 동문과 같은 사람들은 앞으로 장학금을 토해낼 작정으로 인생을 개척해야 하는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융합의 시대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어째서 우리는 인문학을 하면 안될까. 창조경제의 실마리는 인문학에 있는데. 판검사는 과학기술을 몰라도 될까.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기술경영학 주전공이 생겼는데 과연 경영자라는 직함에 기술을 붙이면 이공계 관련 직종이 되는걸까. 어떤 직업까지 이공계 관련 직종에 포함되는지는 어딜 가야 알려줄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던데.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선은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걸까.

왜 우리들은 의치전을 가고싶어 할까. 처우가 괜찮으면 계속 이공계에 남아있을텐데. 무엇보다, 우리는 장학금을 받고 있는 것일까, 노예계약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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