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TV 뉴스와 신문에서 시시각각 쏟아지는 보도만이 과학 저널리즘의 전부는 아니다. 시의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과학 도서는 더욱 깊고 풍부한 소통을 이끈다. <과학 저널리즘 3부작> 마지막 연재에서는 최재천 교수와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필명 하리하라)를 만나 과학 저술의 현황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들었다

과학 저술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는

미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한때 미국과학재단은 연구비 일부를 반드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는 데 사용하도록 규정했습니다. 제 지도교수도 학술논문을 쓰는 와중에 대중 과학서를 저술하셨습니다. 그걸 보며 공부했던 저는 귀국해서 제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을 때 거의 주저하지 않고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과학 저술을 하려고  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 대덕 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미있었고, 남들에게도 그걸 이야기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99년 당시는 블로그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고, 과학이라는 콘텐츠가 독특해서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줬습니다. 3년쯤 지나자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첫 책을 낸 후부터 출간 요청이 막 들어오기 시작했죠.

과학 저술이 중요한 이유는

저는 일찍이 과학 저술이 이뤄야 하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과학의 대중화’라며 과학의 흥미만 잔뜩 강조하고 어려운 내용은 알려주지 않는 것은 오히려 (대중과 과학자 모두의)  불이익을 초래합니다. 과학 저술의 진정한 목적은 시민들이 더욱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바로 과학마인드를 갖게 하는 일이지요.

먼저, 현상을 인식하고 가설을 설정해 실험을 통해 증명한 후 법칙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살면서 아주 중요한 문제조차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의심하라고 배우잖아요. (대중도)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을 몸에 체득시킨다면 살아가는 데에서 현명한 방법이 되겠죠.

두 번째로, 현대사회는 과학적인 사회잖아요. 과학자들은 연구하고, 대중은 가져다 쓰기만 하면 안 됩니다. 과학자들도 연구에 내몰리다 보면 윤리적인 문제를 간과하기 쉬워요. 원자폭탄을 제작할 때 분명히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만들어서 쓰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살아갈 때 좀더 과학에 대해 고려해야 처음부터 사회에 도움이되는것을만들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전문 과학 커뮤니케이터, 왜 필요할까

소통에 대해 공부해 과학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터도 전문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과학자들이그 역할까지 겸하려고 하는데, 사실 효율이 굉장히 떨어져요.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지식 수준과 대중의 수준이 격차가 많이 난다고 생각하다 보니 과학자들이 대중을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생겨요. 예전 광우병 사태 때도 촛불시위 하는 분들의 지식 수준이 낮지 않았어요. 그러나 대중은 병에 걸리는 건지 안 걸리는 건지 알고 싶은데 과학자들은 광우병의 특성만 말하니 토론은 제자리 걸음이죠. 중간에서 서로 필요한 부분을 말하며 과학 전달이 아닌 과 학 논의를 이끄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해요.

과학 저술을 전문으로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경우에는 과학 전반에 걸쳐 폭넓게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읽고 취재를 하고 글을 써야 합니 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 스스로도 언젠가는 글감의 부족을 느낄 것입니 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전문 연구자 중 기꺼이 과학 저술에 시간을 할애 하려는 사람이 과학 모든 분야에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은희 제공

한국 과학 저술가 사회를 평가한다면

한국에는 저술가그룹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진입 장벽이 없다는 게 장점입니다. 특별히 교육을 받거나, 관련학과를 나와야 하거나 아니면 소설가처럼 등단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에는 개인 블로그 같은 것이 많이 발달해 있어서 온라인에 글을 잘 쓰면 연락이 옵니다. 그런데 단점은 철저하게 개인 활동이기 때문에 협력하거나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과학 저술은 아직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는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데 급급한 전형적인 주입식 저술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과학의 알맹이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흥미 위주로 쓰는 저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은 태생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흥미롭게 써야 하지만 흥미롭게 쓰기 위해 과학 그 자체를 훼손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둘을 다 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해야 합니다.

대중성 있는 소재는 어떻게 선정하나
소재는 보통 영화를 보거나 신문 기사를 읽으며 대중 속에서 찾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자 신문에 어떤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누가 무엇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 그 출처를 찾아갑니다. 외국사이트나 외국 신문기사를 번역한 것이라면 원본을 찾아가고 논문을 읽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합니다.

전문 연구자로서 과학 저술을 병 행하는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나 자 연스럽게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에서 글감을 찾습니다. 제 경우 광활한 대자연이 글감의 보고인지라 소재의 빈곤을 느끼지 않습니다. 

 

▲ 최재천 제공

독자의 흥미를 잡으면서도 과학을 올바르게 설명하는 방법은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일반적인 성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합니다. 글을 쓸 때도 그 정도 수준을 맞추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한테 ‘이게 왜 이상하지?’를 이해 시켜야 해요. 질문만 잘 던져주면 그 다음부터는 호기심이 생겨 오히려 쉬워요. 예를 들면 대학교 때 조교가“개나리꽃 봤 죠? 그런데 개나리 열매는 봤나요?” 라는 물음을 던졌어요. 이처럼 늘 일 어나는 것인데 이것이 왜 이러는지 모르고 있었네, 라는 의구심이 생겨 야 해요. 다만 과학자들이 하는 것처 럼 깊지 않고 일반적이거나 흥미 있 는 주제로 접근하는 거죠.

과학 저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흔히 과학은 진리라고 해요. 그런데 진리는 변하는 않는 것인데, 과학은 발전하잖아요. 약간 모순이죠?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은 스스로를 계속 해서 개선하는 유일한 진리라고 표현했어요. 불완전하다고 인정하지만 언제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용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해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과학의 모습이고, 이것을 전달하고 싶어요.

시사성을 지닌 특정 사회문제를 과학의 객관성으로 분석해왔습니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호주제 폐지에 기여했고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정부의 고령화 정책 기본 골격 일부가 되었습니다.

 

<약력>

▦ 하리하라 

◆ 과학칼럼니스트
◆ 대표작
하리하라의 생물학 까페 /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 KAIST학우들을 위한 추천도서

생각의 탄생(미셸 루트번스타인 저) /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저)

▦ 최재천 교수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 대표작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과학자의 서재 / 개미 제국의 발견 / 지식의 통섭
◆ KAIST 학우들을 위한 추천도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고래들의 동료애 '/ <알이 닭을 낳는다>의 벌레 먹은 과일 주세요’/ <통찰>의 ‘피카소와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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