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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322호] 2009년 09월 09일 (수) 김은희 기자 hou-hou@kaist.ac.kr

나의 인생에는 두 개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하나는 빨갱이 콤플렉스였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는 콤플렉스이었다. 빨갱이 콤플렉스는 비교적 젊었던 30대에 해결했으나, 50대까지도 해결이 좀 어려웠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안 돼” 콤플렉스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요사이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려서 선생님들께 “우리나라 사람들은......”하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내용은 대강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부족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 나에게 선생님의 그런 말씀은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왜 나는 왜 이런 한심한 나라에 태어난 것인가?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나?
KAIST에서 학위를 받고 나서, Bell Labs.에서 1년간 podoc을 하며 미국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혹시 그곳은 대단한 사람들이 살고 있나? 우리는 도저히 그들을 따라갈 수 없는가?
결론은 그곳도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좋은 사람도 있었고 나쁜 사람도 있었고, 부지런한 사람도 있었고 게으른 사람도 있었다. 다만, 우리보다 조금 더 선진 혹은 과학화 되어 있었던 미국의 1980년대 중반 시스템이 조금 부럽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까지 말하기는 조금 심하다고 보았다. 우리의 환경이 좀 더 열악하다는 차이뿐이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우리를 가르치신 선생님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교육받으신 분이었다. 일본은 그 당시 탈아입구(脫亞立歐)를 외치고 있을 때였다. 아시아를 떠나서 유럽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의 서양인에 대한 콤플렉스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에게도 강요한 모양이다.
자신에 대한 과도한 비하도 비굴하지만, 지나친 교만도 보기 좋지 않다.
해방 후 우리는 민족상잔의 잔인한 6.25 전쟁을 거치며, 세계 최빈국자리까지 들어갔었다. 그러나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경제 12위의 대국 대한민국을 마련했다. 그것은 서양의 과학문명을 적절히 배워서 그런 것이다. 내가 졸업한 모 대학 전자공학과에서는 IC는커녕 트랜지스터도 아닌 진공관을 배우며 졸업하였다. 그러나 졸업 후 입학한 KAIST에서는 microprocessor를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서양의 앞선 과학문명을 배우기에 바빴지만, 진공관밖에 못 배운 선후배들이 반도체 왕국을 만들었고, IT 강국으로 우리를 이끌어 왔다.
1971년 과학원을 설립하기 위한 Terman 보고서에는 우리는 세계의 지식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2009년 KAIST의 목표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 과학 문명을 배워서 따라 하는 것을 넘어서 세계에 전달해야 할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꾸던 나의 조국일 것이다. 우리가 만든 문명이 온 세계 사해동포 백성에게 이익을 주는 그것 말이다. 앞으로 KAIST에서 그런 일들을 할 인재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또 나올 것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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